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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아침


 

일어나서 하루를 맞이하면 시작되는 아침에 그날 하루 일정을 점검하고, 무얼 먹을까 고민하고, 뭘 하며 시간을 보낼지 여러 생각은 다 해도 정작 아침에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한 정신과 전문의의 말에 따르면 진짜 우울증은 새벽보다 아침을 맞이하기 힘들어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새로운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는, 그 하루에 대한 무게를 견디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이다.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삶은 전쟁이고, 나그네가 잠시 머무르는 곳이며, 죽고 나면 명성은 잊힌다.”라고 말했다. 살아있는 순간에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하고 높이 올라가도 죽은 뒤 누군가가 말하는 찬사는 어떤 것도 들을 수 없다. 사후의 명성 따위는 아무 가치가 없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해서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학자들은 늘 말해왔다. 살아있지 않음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한다면, 태어나기 이전도 슬퍼하거나 두려워해야 한다고.


죽음에 대해 논하는 다양한 말은 삶의 허무함에 중점을 둔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죽고 나면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만, 아침부터 죽음을 생각하자니 나는 죽음에 대해 그리 가볍게 느끼지는 못했다. 정말 가까운 주변 이들이 아니더라도 매체에 나오는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잠을 못 이룬 적도 적지 않다.

 

 


점심


 

다만 그 죽음이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있게 만든다면 죽음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게 지나고 나서야 그때가 어땠는지 돌아볼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늘 어떤 일이든 끝이 있는 것처럼 미래의 불안과 다가올 일들로 인해 목전의 즐거움을 놓쳐 버리는 것들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학생들은 졸업해 학교를 반드시 떠나야 하고, 압박감 속에서도 시험 날짜는 다가와야 하며 오래 일한 누군가의 정년퇴임도 꼭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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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다음은? 끝이 있음을 자각하고 목전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삶의 어떤 의미를 찾아 나가야 하는가.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삶이 더 불안해진다는 말도 널렸지만, 작은 하나하나의 행동과 일상이 모여서 우리는 살아가는 기쁨과 힘을 찾아낸다.


인간 세상은 고통과 무의미의 세계라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는 것들을 많이 보고 읽어왔다. 극장에서도, TV에서도 그리고 책에서도 이 세상 것이면서 이 세상 것이 아닌 세계와 인물 속에서 사람들은 영화 하나 드라마 하나에 몰두하고 열광한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넓혀나가는지는 예술의 진정한 의미 발현이 된다. 잘 만든 예술 작품 하나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을 본 이들의 마음이 어떻게 고양된 삶의 형태로 변하는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삶의 의미는 이런 거다. 때론 이해할 수 없고 불분명한 것들을 해내는 것. 영화 하나 드라마 한 편 끝났을 때 그것은 다 허구이기에 지나치게 빠지지 말라는 충고에도 계속해서 그런 작품을 보는 것, 설거지 귀찮으니 그릇 다 내지 말라는 말에도 예쁘게 플레이팅한 정갈한 음식으로 상을 꽉 채우는 것, 어차피 내가 쓸 건데도 자신만을 위해 선물을 포장하는 행위도. 이런 것들이 모두 유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의 일상은 예술의 환상이 시작되는 장소 그 자체가 된다.


사는 것이 때로는 모순적이고 비루하고 추워서 우리는 여전히 꿈을 꾸고 현실에서 조금은 벗어날 것들을 찾아 나서지만, 막상 그것이 현실이 된다는 희망에는 이전보다 회의적임을 느낀다.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눈앞에 놓인 것들의 불가능성을 진단해서 일을 처리해나가는 것이 성취 전부는 아닐 것이다. 때론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을 믿어보는 것도, 그래서 주어진 시간을 기꺼이 낭비하며 희박한 가능성에 헌신하는 것도 죽기 전에 삶의 의미를 확정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저녁


 

이 책은 이런 내용이다. 책 제목도, 작가의 프롤로그에도 그가 언급하는 주된 내용은 죽음이다. 작가는 여러 선학의 말을 인용하며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얻게 될 자유로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그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걸 느꼈기 때문이랬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는 삶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목소리를 높인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건 죽음에 대한 감각이라고 했으면서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는 예술과, 좋아하는 것과 여러 재치있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자신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숙고했고, 책과 만화를 읽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 논했다. 죽음만큼이나 삶에 대한 의지도 누구보다 굳건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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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황제 마르쿠스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삶은 나그네가 잠시 머무르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곧 죽어서 재가 될 것이지만, 살아가며 지켜낸 성실과 염치와 정의와 진리는 아주 오랫동안 신의 세계로 너를 데려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쩌면 이 책은 삶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을 뿐, 외려 독자가 삶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다져내길 바라지 않았을까. 작가의 말대로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건 죽음에 대한 감각이지만, 삶의 확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하루, 그렇게 나타날 우리의 존재 그 자체다.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며 하루의 부담감을 조금은 덜었다면 정신이 조금은 멀쩡해지고 슬슬 활기가 되살아날 점심, 하루를 마무리하며 해방된 소소한 자유를 즐길 저녁에는 산다는 것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떤가. 그 생각에서 시작될 세상 사람들의 삶이라는 풍경을 더없이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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