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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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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환>이라는 소설은 고등학생 때 잠깐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저 문제풀이를 위해 몇몇 개의 장면만 읽었다면 이번에는 소설 속 중심인물과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읽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중편소설을 다 읽고 <겨울의 환>이라는 작품이 한 여성의 삶에 관한, 삶을 이루는 운명에 관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인물들의 더 깊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밥상차림에 관한 중심인물의 생각이 결국 삶 그리고 운명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게 가장 인상에 남은 부분이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과연 나는 어떠한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는 조금 어려운 장면도 있었지만 ‘내가 추구해야 하는 삶’에 대해 떠올려볼 기회를 마련해준 소설이었다.

 

 

 

1. 밥상


 

소설은 중심인물이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동시에 항상 그녀의 곁에 있던 어머니와 할머니의 과거도 떠올리며 전개된다.

 

할머니의 삶과 어머니의 삶은 다르다. 하지만 두 인물은 본인의 방식대로 여성의 삶을 살아온 존재이다. 중심인물은 두 인물의 삶을 떠올릴 때마다 그들이 차렸던 밥상을 함께 떠올리곤 한다. 그들이 차린 밥상은 곧 그들의 정체성이자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 중심인물은 어머니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 하지만 나이를 먹고 인생을 돌이켜본 중심인물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며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을 때는 몰랐던 감정을 중심인물은 자신이 어머니를 모신 후에야 이해하게 된다.

 

중심인물은 어머니의 밥상을 떠올리며 과거 결핍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각자의 고통을 겪으며 밥상을 차린 인물이다. 중심인물, 어머니, 할머니는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고통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려 하며 삶을 살아간다. 중심인물은 결핍했던 과거에서 수십 년이 지난 현재가 되어서야 결핍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중심인물이 남편에게 밥상을 차렸을 적에는 중심인물 스스로 밥상을 차려야겠다고 마음  먹은 게 아니라 아내이기 때문에 밥상을 차린 것이다. 남편의 밥상을 차릴 때는 자신을 위한 밥상이 아니었고 정체성을 깨닫기 전이었기 때문에 중심인물의 삶이 변화하기 전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중심인물은 남편과 이혼 후 자기 자신을 돌보며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아 중심인물이 차린 밥상의 의미는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누구인가 제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고 끝까지 기다려주었으면 하는 저의 소망의 마음을 이제 제 편에서 누군가에게 해주는 사람으로 자리잡은 때문입니다.”] 김채원, 『겨울의 환』, 문학사상사, 1989, 72쪽.

 

결정적으로 나는 위 문장을 읽으며 중심인물의 삶이 변화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 소설에서 ‘밥상을 차려준다는 것’은 단순히 의식주에서 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할머니가 인민군들에게 밥을 지어주며 지냈다고 했듯이 누군가를 아무런 조건 없이 따스하게 맞이하고 정성껏 보살피는 일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위한 따뜻한 밥상은 곧 그들을 향한 진심과 걱정, 위로 혹은 사랑 같은 감정으로 보일 수 있다.

 

소설에서는 여러 여성의 삶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남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존재로 나타나는데 지금껏 밥상을 기다리기만 했던 중심인물이 그러한 여성들의 삶을 기억하며 자신의 의지를 갖고 밥상을 차리는 여성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중심인물은 여기서 ‘운명’을 언급한다. 나이 들어가는 어머니를 담당하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긴다. 나는 운명이 삶을 구축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운명을 개척하는 대로 삶이 시시각각 바뀌듯 중심인물도 본인이 운명을 개척하는 대로 삶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중심인물과 어머니의 손금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운명이 비슷하다 하더라도 할머니의 삶과 어머니의 삶이 달랐던 것처럼 어머니의 삶과 중심인물의 삶 또한 다르게 흘러갈 것이다. 중심인물은 어머니처럼 밥상을 잘 차리진 못하더라도 정성을 다한 따뜻한 밥상을 차릴 것이다. ‘밥상’의 의미를 깨달은 중심인물에게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결핍을 채워나가고 고통을 이겨내는 행위다. 밥상을 차림으로써 중심인물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것이고 자신이 찾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2. 눈


 

고백하는 듯한 문체로 전개되는 소설에서 ‘눈’의 이미지는 중심인물의 마음을 대변하는 자연물이라고 보았다. 중심인물의 과거는 항상 ‘’과 함께였다. ‘눈’이 내렸기 때문에 중심인물의 과거가 더 잘 연상되었고 중심인물이 독자에게 건네는 듯한 고백이 더 감정적으로 다가온 듯 했다.

 

중심인물의 삶 속에서 ‘눈’은 계속해 내린다. 중심인물의 먼 과거서부터 ‘눈’은 ‘순백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 나는 ‘눈’이 가진 순백하고도 고요한 이미지가 소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중심인물의 과거는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허전하기도 했으며 결핍되어 있었고 쓸쓸했을 것이다. 그러한 과거 속에서 내렸던 ‘눈’을 중심인물은 조용히 관찰했고 바라봤다. 중심인물은 ‘눈’을 통해 ‘세상’을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중심인물의 인생과 그 인생을 이루는 찰나의 순간들. 중심인물은 이러한 순간들이 영원으로 이어지는 가능성을 떠올리며 ‘눈’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백의 이미지인 ‘눈’은 삶을 파괴하고 생명의 씨앗을 빼앗는 전쟁과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다.

 

중심인물은 자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마주하고 변화하려 한다. “그때 일어나서 들창을 열고 눈의 세계를 아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라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통해 이제 중심인물의 세상에 새로운 눈이 내리고 또 그 눈을 바라보는 중심인물이 서 있을 것이라는 장면이 그려졌다. 나는 눈의 이미지를 통해 <겨울의 환>이라는 작품이 환상적이고 신비함을 갖는 소설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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