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나비 소곡집 2: 초록을 거머쥔 우리는
오랜만에 시집 공책을 꺼내보았다. 20대 초반, 초여름에 썼던 시들이 한가득, 열자마자 초록빛이 와르르 쏟아졌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빛이 나기도 하는 시 한 다발을 안고서 회상해 본다.
참으로 고통스럽게도 아름다운 순간들을 지날 수밖에 없는 계절, 청춘이라는 이름 하에 보이는 것들, 그리고 그 이름의 그림자에서 볼 수 없는 것들.
어쩌면 나이대별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확실한 것은, 신이 내린 축복일 지도 모르겠다.
시기 별로 다른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안고 살아가며, 다채로운 인생을 만들어 나가라는 뜻일 지도 모르겠다.
어린 나를 동경하는 마음, 그리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던, 초록을 너무 세게 거머쥐어버린 어린 나를 마주하는 방법은 바로 몇 년 젊은 내가 창작한 예술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예술 작품이라 함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끄적인 낙서, 짧은 일기의 구절, 독후감, 그리고 하루 끝에 느지막이 새겨 본 시조차도 나중에 돌아보면 예술이 되는 것이다.
과거의 나 자신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현재의 내가 창작하는 예술을 모아놓자. 그리고 1년 뒤, 5년 뒤, 10년 뒤에 다시 꺼내보아서 이상하고도 신비한 영감과 색채를 마주해보자.
그렇게 하면 우리는 살아갈 방향성을 다시 설정할 수 있게 되기도, 내가 성장했다는 사실에 뿌듯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내가 마주했던 나의 젊음과 스무살의 색채가 담긴 시들을 공개한다.
©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무제 1
인내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느껴야지. 그것은 마치 무더운
여름의 계절 속 황홀한 초록밤,
락 페스티벌에서 사람들이 느낀느 바,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시구,
나무의 속삭임과 인생에 꽁꽁 숨어있는
몇 가지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대의 눈동자가 말하는 바이다.
무제 2
잿빛과 푸름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나열해놓은 것이
그 본질인 노래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것처럼,
나는 잿빛으로 물들어있지만 언제나 초록을 갈망하고
초록을 갈망할 자격조차 없다고 느껴질 때,
잿빛마저 암흙으로 변했을 때,
나를 구원해 줄 어떠한 색깔이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의 색깔을 중화시키기 위해
끝없는 시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