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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AI의 부상과 기술의 도입으로 인간다움을 그리워하고 인간의 가치를 질문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동안은 잘 보이지 않았던 시간과 노동의 가치, 사람의 시선이 AI를 통해 더욱 가시화되는 것이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더라도 아마 AI가 영원히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들이다. 마음과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진 피조물이 주는 감동과 창작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공명의 순간을 AI의 작품을 볼 때는 느낄 수 없다.

 

물론 사람이 창조한 것들이 반드시 유쾌하거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진실함이 있다면 함께 울거나 분노하는 등 높은 수준의 공감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 또한 감동이라면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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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사진전을 방문했을 때 충격과 슬픔을 머금고 전시장을 나오며 감동마저 느꼈던 이유에는 사진들이 지닌 진실함이 있었다. 전시에서 보았던 사진들은 보고자 하는 세상만을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아니었다. 세상 어딘가에 필요한 애도와 관심을 불러오는 한 발의 셔터음 끝에 남은 한 장 한 장의 역사였다.

 

 

 

인류애를 모으는 신호탄, 카메라



피켓라인- Alamy Stock Photo.jpg
출처: Alamy Stock Photo

  

 

퓰리처상 사진전에서 본 사진들은 그저 어느 순간을 기념하거나 특종이 될 만한 절호의 순간을 포착했다는 느낌과는 괴리되어 있었다. 모든 사진들이 결코 평면적이지 않았고 한 프레임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토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언론사와 기자들이 때로는 목숨을 걸어가며 찍은 사진들은 과거의 어느 순간에 정박해 있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관람하는 내내 이미 흘러가버린 역사의 궤적을 쫓아가면서 경험해본 적 없는 순간으로 돌아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런 경이는 사진이 담아내는 현장감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순간의 의미를 귀중히 여긴 어느 언론인들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시에서 봤던 사진 중 AP 통신의 '르완다의 절망'은 그 어떤 사진보다도 슬펐다. 이미 죽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르완다 사람들의 시신을 본 카스텐 시엘커의 회고는 사진 속 누워 있는 한 르완다 여인의 텅 빈 눈동자를 적확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 세상의 비극을 몸으로 겪는 순간, 타인의 고통이 그들의 고통으로 전이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전시장의 사진은 온통 사람이었고 사람 뿐이었다. 사진이 포착한 것은 결국 인간에게서 시작해서 인간으로 회귀하는 비극과 희망의 순간들이었으므로 당연할지도 모른다. 사람을 피사체로 한 직관적인 이미지가 뇌리에 박히면서 당장 마음에 드는 이물감이 무엇인지 그 감정을 정확하게 헤아릴 필요가 있었다. 그를 위해 사진이 그려내는 외부 세계의 진실과 그것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드는 감정을 번갈아 들여다 보았다. 보는 이가 주체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 포토 저널리즘의 저력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잭 루비 오스왈드를 사살하다  - Alamy Stock Photo.jpg
출처: Alamy Stock Photo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들은 이런 방식으로 사람이기에 잊어서는 안 되는 순간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과 사람으로서 최소한 가져야 하는 양심 같은 것들을 일깨워주었다. 그것은 사진 한 장을 통해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진 한 장의 탄생을 가능케한 모든 배경과 사람을 거쳐 피부로 전해졌다.

 

망원 렌즈로 찍었는지 하늘에 뜬 태양과 유독 가까워 보이는 고장난 보트와 그 보트에 타고 있는 난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봤을 때는 난민에 대한 편견을 벗겨내고 그들의 본질적인 입장에 집중하게 되었다. 사안의 중요성과 그 중심에 자리한 살아있는 사람의 존재를 혼탁하게 흐려버리는 것들을 사진들이 말끔하게 치워준 것이다. 사진 하나 하나가 복잡한 이해관계에 휘말린 이들은 그저 세상에 단 한 명씩밖에 없는 사람들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인격을 잡아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드는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 당연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세상을 수치로 설명하면서 이것이 공정하게 문제를 보는 방법이라고 우기고 있지는 않은가? 냉철한 태도를 빙자한 무관심으로 일관해도 괜찮은가?

 

어떤 이유를 붙여도 총알 한 발이면 꺼져버리는 생명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그렇기에 우리는 더 슬퍼하고 더 분노해야 한다는 것을, 최전선에서 목숨을 바친 기자들의 생애에서도 읽어낼 수 있었다. 긍정적인 감정으로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삶을 살아내게 되지만, 누군가의 생을 연장해주는 것은 분노와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그랬기 때문에 더 많은 눈물과 분노를 위해 쏘아올린 한 발의 셔터음을 외면하지 않는 한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시장을 나오면서, 시원하지 않은 맘을 억지로 달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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