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늦여름부터 2025년의 초입까지 예술구역 두 곳과 미술관 여섯 곳을 직접 다녀오고, 중국이 좋아하는 숫자 6(liù) 편의 글을 남겼다. 그 첫 시작이었던 ‘798예술구’편에서 나는 ‘기약은 있어도 명백한 '거주함'’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믿었다. 인생의 60분의 1정도를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지낸 것을 두고 스쳐 지나간다,가 아닌 살고 있다,라고 여긴 게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이제서야 깨닫는다. 그래도 그런 착각 덕분에 공부만 했으면 하지 못할, 관광만 했어도 하지 못할 일상에 덧난 예술을 누릴 수 있었다.
최소 2주에 한번, 홀로 예술공간을 찾았다. 거기에 국가대극원에서의 발레 공연과, 무대 장치가 인상적이었던 무용극 금면왕조, 경극 스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전통극 공연까지 망라하면 기대보다 더 중국의 예술과 친밀한 사이를 유지했다며 뿌듯해하는 나다.
기획 배경
중국에 와서 공부를 하게 되었을 때 머무는 동안 이곳에 관해 연재를 하는 게 좋겠다고 일찌감치 생각은 해두었다. 마침 ‘현대카드 다이브’ 앱에서 ‘영감의 도시’라는 포스트를 꾸준히 챙겨 보고 있었고, 그처럼 베이징의 숨겨진 스팟을 찾아 소개하면 좋지 않을까 했던 게 첫 번째 발상이었다. 후통 골목골목에 자리 잡은 찻집, 알아볼 수 없는 책들과 익숙한 냄새의 서점, 맛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노포들. 이런 숨은 공간을 소개하기에 베이징은 확실히 블루오션이다. 하지만 영업시간을 쓰고, 가격을 쓰고, 위치정보를 표기한 후 짧은 감상을 더하는 걸 아트인사이트에서 하기는 아쉬웠다.
![[회전][포맷변환]KakaoTalk_20250209_184432494.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2/20250209185949_praeliou.jpg)
무엇보다 글 하나를 기고하려면 최소 대여섯 군데의 장소를 가보고 대표 메뉴 두어 개는 맛보는 게 도리라 생각하는데, 그건 불가능했다.
그럼 고궁(과거 자금성)이나 이화원, 만리장성 같은 랜드마크를 소개하는 건? 특별히 역사적 야화를 추가해 쓴다면 나쁘진 않을 텐데, 이 분야는 전문가도 너무 많고 여행으로 이곳을 다시 찾았을 때 더욱 적합한 주제 같았다.
그래서 예술공간이 됐다. 사실 관광명소를 소개해서는 안 될 이유를 찾기 전에 미술관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는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다만 ‘언론통제’가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바, 예술의 외침이 사회에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예술을 잘 모르는 (더 알아가고 싶지만 통성명밖에 하지 않은 존재) 나 역시도 전체주의 사회에서 예술성을 특별히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이 생각은 180도 뒤바뀌지는 않았어도 상당 부분 변화했다. 유일하게 들어는 보았던 798예술구에서 기분 좋은 충격을 받은 후부터다. 그래서 연재의 제목에 중국 ‘도’라는 보조사가 붙은 것이다. 편견과 새로이 엿본 희망을 담아.
취재 과정 서치-가보기-해석하기
나름 취재라는 이름을 붙여 갈만한 곳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서치를 해봤으나 최신 후기는 좀처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동시에 인터넷 서점에서 참고할 자료들을 물색했다. 한국이라면 도서관을 가장 먼저 찾았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곧이어 ‘북경 예술 견문록’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목차를 뜯어보며 대강 영향력 있는 미술관들의 이름을 익혔다.
중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서는 로컬 SNS 샤오홍슈(小红书)를 이용해 종종 ‘北京美术馆’등을 검색하며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서핑했다.
그렇게 수집한 미술관들 중 건축물과 환경의 조화가 탁월한 곳들 위주로 가고 싶은 곳을 추렸다.
작품과의 교감만큼 미술관에 간다는 행위 자체, 그 정적을 즐기러가는 사람이라 오피니언 카테고리 또한 [공간]으로 정했다.

그런다음 수업을 마친 평일 오후나 주말 오전 직접 방문했다. 새로운 전시가 예정되어 있으면 부러 개막날에 맞춰가기도 했다.
평소라면 잘 찍지 않는 사진도 여러 장 찍는다. 지난 글들을 훑어보면 최악의 사진 실력을 만나볼 수 있다.
평소같이 좋았다,로 끝날 과정이 아니다. 팸플릿이 있는곳이 드물었지만 있었다면 챙겨온 팸플릿과 위챗 공식 계정의 전시 설명, 그게 아니라면 중국 예술지의 기사를 펼쳐놓고 중국어에서 한국어로의 번역, 감각에서 문자로의 번역을 동시에 시도한다. 물론 언어 간의 번역은 나보다 뛰어난 컴퓨터에 팔 할을 의지하지만 그들이 정신 못 차리고 헛소리를 하면, 이를 교정하는 데는 내 약소한 중국어 실력이 톡톡히 발휘되었다.평소같이 좋았다,로 끝날 과정이 아니다. 팸플릿이 있는 곳이 드물었지만 있었다면 챙겨온 팸플릿과 위챗 공식 계정의 전시 설명, 그게 아니라면 중국 예술지의 기사를 펼쳐놓고 중국어에서 한국어로의 번역, 감각에서 문자로의 번역을 동시에 시도한다. 물론 언어 간의 번역은 나보다 뛰어난 컴퓨터에 팔 할을 의지하지만 그들이 정신 못 차리고 헛소리를 하면, 이를 교정하는 데는 내 약소한 중국어 실력이 톡톡히 발휘되었다.
일그러진 객관성
그간의 오피니언의 가장 근 특징을 꼽자면 일그러진 객관성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예술에 객관이 어디 있어,라는 측면에서는 내가 '객관'이라고 칭한 것은 '타인(전문가)의 주관성'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 그 이유는 글을 쓸 때 큐레이터나 작가 자신의 전시 소개 글을 참고하되 내가 이해한 부분, 동감하는 부분만을 옮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송미술관'편에서 참고한 예술지 기사에는 "'천지간’은 미술관 단지 전체를 캔버스로 삼고 잔디에 시간의 자국을 드러내며 우주의 만물, 자연의 회전과 인생의 변화에 대한 추론을 가지고 있다." 라는 문장이 있는데 내가 쓴 문장은 "천지간은 미술관 전체를 캔버스 삼아 잔디에 시간의 흔적을 새긴 것으로 시작한다." 인 것이다. 이 경우는 내가 문장의 뜻을 이성으로 헤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새겨진 잔디밭을 지날때 우주의 만물, 자연의 회전이나 인생의 변화 같은 것을 조금이라도 연상하지 못했기에 소거한 것이다.
감상이 아닌 논평에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당사자의 말을 빌려 왔으나 결국 내 멋대로 첨삭을 통해 오롯이 나의 입맛으로 글을 재구성한 격이 되었다. 이렇게 문장단위로 편집이 된 것도 있고, 전체 맥락에서 아예 빼버린 이야기들도 있다. 누구도 나에게 완전무결한 정보전달을 바란적 없지만, 그럼에도 작가의 의도와 오차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마지막 소회
이제 간단하게 몇 가지 느낀점을 갈무리하면 끝이다.
가장 먼저 "베이징도 예술합니다" 시리즈를 연재하며 좋았던 점은 '예술을 통해 담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세계 어느 곳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직접 목격했던 것이다. 따옴표 안 문구는 내가 침이 마르도록 말하고 다니던 인생의 목표다. 나는 말뿐이었던 것을 진실된 목적지로 삼아 순항하고 있는 공간에 관여할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
아쉬웠던 점은 예술구, 미술관 등을 갔을 때 대치되어 떠오르는 서울의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서울살이도 1년반 뿐이지만 중국에서의 한학기 보다는 훨씬 긴 시간인데 많은 미술관을 섭렵하지 못했고, 그래서 와닿는 비교를 제시하지 못한게 유감스럽다.
중국의 독특한 사회체제하에 예술성이 어느 경지에 가닿을 수 있을까,라는 초기의 물음에는 여전히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나의 단편적인 취재를 통해서 알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의 장막이 예술의 무한한 관심사를 덮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취재 방법에 다른 방향성이 존재했다는 것을 에필로그를 쓰며 깨달았고, 차후 기회가 된다면 실천해 봄직해 코멘트를 남긴다. 바로 공간 위주의 탐색 대신 중국의 예술가를 서치하고 그들의 개인전이나 아틀리에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문보다 에필로그가 더 긴 이 사태에 대해, 깊고 짙은 무지를 통감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