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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1920년대 전후로 여성의 교육이 확대되며 글쓰는 여성들이 다수 발생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여류작가'라는 이름으로 문단 내에서 새로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들을 묶는 '여류 작가'라는 이름은 오히려 그들의 '여성성'을 중하게 의식하며 작품 자체가 가진 작품성으로 평가될 입지를 되려 좁혔다.

 

처녀작, 여류 작가와 같은 남성 중심적 명명이 무의미해지고 축소된 현재, 제대로 된 평가조차 미비하였던 그들의 작품이. 1930년대를 관통하며 어떤 세계를 그렸는지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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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경애, 『인간문제』


 

강경애는 1906년 황해도 태생의 일제강점기 여성 작가이다. 그는 1931년 단편 소설 ≪파금(破琴)≫으로 문단에 데뷔했고,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함으로써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남성 중심의 1930년대 문학사에서 여성 문학의 위치를 확립했을 뿐 아니라, 식민지 한국의 현실을 날카롭게 재현해낸 리얼리즘 작가였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인간문제』는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발표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1930년대의 소설사와 당시의 여성 문학사를 회고할 때 노동운동을 다루는 장편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인간 문제』는 1930년대 농촌과, 노동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 계급 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반영하여, 이기영의 ‘고향’과 함께 식민지 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로 평가받는다.

 

 

이 시커먼 뭉치! 이 뭉치는 점점 크게 확대되어 가지고 그의 앞을 캄캄하게 하였다. 아니, 인간이 걸어가는 앞길에 가로질리는 이 뭉치...... 시커먼 뭉치, 이 뭉치야말로 인간 문제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 인간 문제!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를 위하여 몇 천만 년을 두고 싸워 왔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앞으로 이 당면한 큰 문제를 풀어 나갈 인간이 누굴까?

 

강경애, 『인간 문제』중.

 

 

『인간문제』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진다. 용연마을을 배경으로 한 전반부는 농촌 문제의 당시 현실을, 인천을 배경으로 한 후반부는 노동 문제에 대한 현실과 비판을 날카롭게 재현해낸다.

 

소설 초반부 등장하는 ‘장자못 전설’은 흔히 말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나 ‘빈익빈 부익부’와 같은 슬로건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지주와 착취당하는 소작농이나 빈민층 사이의 갈등과 투쟁이 계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을 의미한다.

 

용연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반부에서는 부유층과 빈민층의 대립이 주로 묘사되지만 당시 주인공들은 이를 계급의식으로써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선비, 간난, 첫째 등의 계몽으로 인해 의식 변화가 드러나게 된다. 선비는 자신이 억압당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깨닫지 못한 채로 서울에 오게 되었으나 노동 운동을 하는 간난에 대해 끝까지 함구하고, 사회 현실을 명확히 깨달으며 그들을 지지한다.

 

반면 신철은 나약한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계속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전반부에서 선비를 마음에 두면서도 끝까지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했으며, 선비의 손에 대해 질겁하는 등 그의 노동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는 하지 못했다.

 

또한 후반부에서도 신철은 부두 노동에 대한 하루 경험만으로 노동 현실에 뛰어드는 것을 그만두게 되며, 순사들에게 잡혀 들어갔을 때도 전향하며 나오게 된다.

 

반면 계속해 가혹한 노동 환경에 부딪쳐 온 첫째는 신철의 변절과, 선비의 죽음에 분노한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를 지배해 온 인간문제, 곧 계급 대립이라는 문제를 풀 주체는 누구일지 절망한다.

 

 

 

2. 이선희, 『계산서』


 

강경애와 달리 이선희는 자신의 ‘여성됨’을 전면에 내세운 작가였다. 개벽사의 기자로 근무하였던 그녀는 등단 제도를 거치지 않고 단편소설 「불야여인-가등」을 『중앙』에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대 여성 평론가였던 임순득은 이선희의 「계산서」를 “‘소형가정’의 미몽”에서 깨어난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나는 내 남편이 자동차에 치이거나 혹여 뜀박질하는 말발굽에 채여서라도

다리 하나가 없어지기를 바랐다.

그 이유란 지금으로부터 일곱 달 전에

나는 다리 하나를 잃고 훌륭히 절름발이란

이름을 가지고 들어앉게 된 까닭이다.

나는 다리가 하아니데 만일 내 남편은

다리가 둘이 되면 필경 우리 사이에 균형은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균형을 잃은 것은 언제든지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이선희 - 「계산서」 중

 

 

이선희의 단편 「계산서」는 유산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잃게 된 여성이,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며 결혼제도 안에 내재된 불평등을 감지하고, 이를 벗어나 스스로 주체성을 획득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내용의 짧은 소설이다.

 

주인공은 출산 전 한 쪽 다리를 잃기 전까지는 남편과 누가 보아도 단란한 부부였으며 가정이었다. 주인공은 유산 전까지는 남편과 인형과 함께 모조가정 놀이를 하며 스위트홈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유산 후 망가진 몸으로 주인공은 집안에 갇히게 되었다. 주인공은 본래 당당하고 발칙한 자아도취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집’이라는 공간에 갇혀 그 활동 반경이 제한되고, 남편에게만 의지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며 어느 순간부터 불평등을 느낀다.

 

외투를 입고 거울에 선 남편과 주인공은 모습에 놀란다. 머릿속으로 가지고 있던 환상성이 거울 앞에서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활동 반경의 제약이란, 정보의 제약이기도 하며, 세계의 제약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절름발이가 되었지만 아예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자는 장난스러운 물음에 남편은 그 몸으로 어딜 나가냐며 주인공을 방안에 가둬두고자 한다.

 

주인공은 자연스럽게 그의 눈치를 보게 되며 점점 그와 자신의 관계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편의 외도가 의심됨에도 물어볼 수도, 그 현장을 쫓을 수도 없는 자신의 현실에 분개한 주인공은, 여태 ‘스위트홈’이라고 믿어왔던 집을 벗어나 만주로 떠난다.

 

춥고 고달파도 자신의 다리로 직접 걸으며 남편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것이 주인공이 진짜 자신으로, 주체성을 획득하게 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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