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나는 어떠한 공간에 가면 심장이 뛰는지 질문을 받았다. 질문을 받고서 어느 장소가 있지 싶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떠오른 장소가 2곳이 있었다. 우선 내 심장이 뛰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답은 책에 파묻혀서 읽을 수 있는 곳이거나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나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에는 책을 읽겠다고 밤을 샜던 적도 있고, 중학생 때에는 점심시간에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싶어서 점심을 걸렀던 적도 여러 번이다. 중학교 3학년 말에 놀 때 영화를 보거나 톰과 제리와 같은 영상을 볼 때도 많았지만 나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을 때도 많았다.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더니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져서 점심시간에 빌린 두 권의 책을 모두 읽어도 집에 가기 전에 다 읽거나 거의 다 읽었기 때문에 다른 시간에는 또 놀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책을 읽는 걸 좋아하게 된 것에는 아마 가정환경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나 오빠와 함께 책을 읽었고, 도서관에도 자주 갔다. 또 집에도 엄청난 양의 책이 있었다. 서재에 들어가면 책상과 피아노를 제외하고는 사방이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방에도 합쳐서 6개 정도의 책장이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책에 둘러싸여 크다 보니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레 책을 접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전부터 그런 공간에서 살고 싶었다. 먹고 사는 것 걱정 없이 사방이 책인 곳에 파묻혀서 책만을 읽고 글도 써보고, 영화도 볼 수 있는 그런 공간. 물론 이루어지기 힘든 꿈인 것은 알지만, 꼭 그러고 싶었다. 정말 시선이 닿는 곳마다 책이 있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가져와야 할 정도로 높은 책장에 둘러싸인 곳.
언젠가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집을 지으면서 바닥으로 내려가서 사방을 책장으로 채운 다음 그 모두를 책으로 가득 채우신 분의 이야기가 나왔다. 많은 책의 무게 때문에 올릴 수가 없어서 내려왔다고. 나도 그런 장소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든지 가볼 수 있는. 내가 원하는 책으로만 채울 수 있는.
또 나는 모든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역사서부터 개념서, 인공지능에 대한 글 등 수많은 종류들을 다 좋아할뿐더러 소설을 읽을 때에도 경찰, 소방, 법학, 운동(야구, 축구, 배구, 농구 등), 군대, 대체역사, 음악, 미술, 헌터물, 로판, 요리, 번역가 등 그저 나의 흥미를 끌거나 재미있어 보이는 소설이라면 거의 모두 읽는다. 그래서 좋아하는 책도 여럿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해도 어느 정도 잘 통한다. 이런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몰랐던 개념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또 새로운 분야에 흥미를 느끼게 만들어주기에 나는 어떤 책을 나에게 주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곳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정확히 어떤 장소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더 설명해보자면 나는 ‘만든다.’라는 동사가 붙을 수 있는 거라면 모두 좋아한다. 가죽 공예, 도장 파기, 도예, 그림 그리기, 글 쓰기, 퍼즐 맞추기, 케이크 토퍼 만들기, 뜨개질, 바느질, 요리, 조립하기 등.
여기에 잘 예상하지 못할 것 같은 것도 말해보자면 기계를 만지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가구를 조립하거나 고칠 때 정말 신나는데, 드라이버와 나사 같은 것들이 있으면 정말 두근거린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나는 자동차나 선풍기와 같은 주변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기계를 보면 해체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근질거린다. 하지만 해체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관찰만으로 끝낸다. 그래도 관찰하면서 이게 이렇게 이어져서 작동한다는 걸 알면 신이 나고, 또 더 궁금하면 관련된 책을 사서 읽어보기도 한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자동차의 구조에 대한 책을 읽어보기도 하였다.
또 나는 실험하는 것도 좋아한다. 화학, 생명, 물리, 지구과학 등.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하는 것 또한 무척이나 나에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해부하는 것이나 표본을 만드는 등의 활동도 나의 흥미를 끈다. 표본 만들기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해본 적은 없지만 책에서 여러 번 방법을 읽었었고, 정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해부하는 건 몇 번 해본 적이 있다. 작지만 개불 등의 동물들을 초등학교 해부 방과후 시간에 직접 해부해 본 적이 있었다. 또 영재원 때 돼지 심장과 폐, 기관지를 직접 자르고 만져보며 해부해보기도 하였다. 처음엔 좀 무섭기도 했지만 비닐장갑을 끼고 실제로 만져보면서 자르고 관찰하다보니 정말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 손으로 만져보면서 기관지로 갈라보고, 심장을 갈라보면서 판막과 심실의 모양, 혈관 등을 직접 오감으로 느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판막이 생각보다 작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너무 크면 피가 흐르기 어렵겠다는 생각(물론 돼지를 해부해봤던 거다보니 사람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을 해보기도 하였다. 직접 해부해보면서 이런 다양한 생각을 해보고 직접 탐구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가슴이 뛰었고, 또 즐겁게 활동에 임했었다.
그러니 다시 칭해볼까 한다.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좀 더 이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이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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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면 알겠지만, 나는 책 읽는 것과 만들기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면서 힘들다는 감정을 느낄 수는 있어도 하기 싫다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을 것 같을 정도로.
앞서 말한 것들은 정말로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들이고, 그런 것들이 갖춰진 공간이라면 얼마든지 심장이 뛴다. 실은 상상만 하는 지금도 설레서 두근거리긴 한다. 진실로 좋아하는 것들이라면 그런 공간이 실재로 존재한다는, 아니 내 상상에서만이라도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심장이 뛰게 만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