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멜랑콜리아

글 입력 2025.01.20 19: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오늘 밤 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당장 죽게 된다면,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미루고 미뤄왔던 일을 실행에 옮길 것인가? 아니면 호화로운 향락의 파티를 즐길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것인가?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1)>에서 클레어와 저스틴 자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실제 앞에 두고 있다. 빗겨 날 것이라 예측했던 과학자들의 말은 틀렸다. 시시각각 지구를 향해 행성 '멜랑콜리아'는 다가오고 있고, 그들은 머지않아 다 함께 종말을 맞이할 것임을 직감한다.


이에 클레어는 불안에 떨며 동생 저스틴에게 말한다.


“나는 이 생을 제대로 끝맺고 싶어.”라며 지금 당장 무엇을 하면 좋을지 입속으로 되뇐다. 천문학자인 남편은 이미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대저택에 남아있는 가족이라곤 토끼 같은 아들 리오와 우울증에 걸린 여동생 저스틴뿐이다. 이들과 당장 무엇을 해야 하지?


계속 불안해하다 남편의 죽음으로 행성 충돌을 확실시 한 클레어는 저스틴에게 “우리...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며 노래라도 불러야 할까..?”라며 이 생을 제대로 끝맺기 위한 행동을 제안한다. “그러면 행복할 것 같아.”라는 말도 끝내 덧붙인다. 이에 저스틴은 냉정한 목소리로 답한다.


“다 쓸데없는 짓이야.”

“좋게 끝내고 싶어서 그래...”라고 울먹이는 클레어.

“좋게?”라고 되물으며 비웃는 저스틴. “그러면 화장실에서 보내는 건 어때? 그건 또 싫겠지?”


그건 싫다고 클레어는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누구든 오늘 당장 죽는다 하면, 오늘만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행복해지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클레어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행복해지는지 알지 못한다. 비단 마지막 날이어서 몰랐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크기변환2]캡처2.JPG
왼쪽부터 동생 저스틴, 신랑, 형부 존, 언니 클레어 (출처: imdb 영화 <멜랑콜리아>)

 


동생 저스틴은 형부 존과 언니 클레어가 준비해 준 호화로운 결혼식의 새신부이다. 하지만 저스틴은 무언가 잘못된 것만 같고 어디에 있든 자신의 자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히 자신을 위해 과수원을 선물해 준 신랑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결혼식 준비를 성대하게 해 준 언니와 형부에게도 고마워해야 하고, 자신을 승진시켜 준 상사한테도 고마워해야 한다. 그런데 왜 그녀는 그런 감사한 마음이 솟구쳐 사랑으로 가득한 결혼식을 치를 수 없는 걸까? 그런 두려움을 엄마한테 내비치지만 엄마는 딸 결혼식장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는 쓸모없다 생각한다'라고 외치는 양반이고, 아버지 또한 애인 둘을 끼고 딸 결혼식에 술을 마시러 온 양반일 뿐이다.


이런 감지한 형부 존은 처제 저스틴에게 이야기한다.


"내가 이 결혼식에 돈을 얼마나 쏟아부은 줄 알아? 남들은 상상도 못 한 금액이야. 알아?"


이에 저스틴은, "알아요. 형부가 돈을 잘 썼다고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라며 애써 웃어보인다.

그 말에 존은 당장 말한다. "그러면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이요?"

"너는 무조건 행복해야만 해."


무조건 행복. 행복은 이처럼 무언가 꼭 담보로 한다. 행복은 그 자체로 온전할 수 없는 걸까? 무엇을 해야만 꼭 행복하고, 무언가 꼭 조건을 걸어야 행복해지는 걸까?


이 지경까지 질문하다 보면, '행복'이란 현대인이 만든 실체 없는 무언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지만, 막상 열심히 하다 보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시작했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많이들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는가.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그러나 이대로 허무주의에 빠지기에는 인간은 꽤나 단순하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인간은 꽤나 만족하기 때문이다. 먹고 살 걱정 없이 잠자리가 따뜻하면 인간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등 따습고 배부르면, 다른 걸 찾기 시작한다. '의미'. 의미는 곧 '행복'이 되고, 행복은 곧 '목표'가 된다. 무엇을 할 때 우리는 행복한가? 무엇을 하면 우리는 행복해지는가? 이렇게 또다시 우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시작한다.

 

 

[크기변환2]캡처.JPG
이상기후로 눈이 내리는 것을 행복히 바라보는 저스틴과 클레어 (출처: imdb)

 


언니 클레어는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 천문학자 남편과 대저택과 집사, 그리고 토끼 같은 아들을 두고 있다. 그녀의 부모님은 바람 잘 날 없었지만, 자신은 자연 속 대 저택에서 안온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클레어는 겁이 많다. 천문학자 남편이 멜랑콜리아는 절대 지구와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 그녀를 안심시키지만, 클레어는 기어코 약을 사서 자신의 서랍장에 숨겨놓는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런데 우울증이 있고 남들 보기에 정상처럼 보이지 않는 동생 저스틴은 오히려 태평하다. 그녀는 지구의 생명체가 모두 사라질 것이라 직감한다. 그리고 클레어에게 말한다. "지구는 사악해. 없어져도 아쉬울 것 없어." 이에 클레어는 저스틴의 말을 전혀 이해 못 한다는 듯, 눈을 감는다. "리오는 아직 어린데...". 그녀는 다만 어린 아들이 더 좋은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클레어는 자신의 집에 오랫동안 일한 집사에게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가 말도 없이 출근을 안 할 양반이 아닌데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를 걱정하기 보다는, 점점 확실시 되는 죽음의 그림자에 불안해 한다. 그녀는 비단 대저택의 안주인이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자신만의 성을 쌓아놓고 안전하다 생각하며 살아온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 채.


행성 멜랑콜리아가 하늘 위에 크게 떠오르자, 어린 리오도 불안해한다. "행성이 충돌하면 엄청 무서울 것 같아요. 아빠가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다고 했어요."라고 말하는 리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진다.


이에 저스틴은 대답한다.

"아빠가 모르는 게 하나 있네. 우리에겐 마법의 동굴이 있잖아."

"마법의 동굴이요?"

"누구나 다 만들 수 있어요?"

"그럼. 강철소녀 이모가 만들어 줄 수 있지."


그렇게 저스틴과 클레어, 리오는 마법의 동굴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마지막 날. 죽음을 기다린다.

 

 

[크기변환2]캡처4.JPG
영화 <멜랑콜리아>의 마지막 장면 (출처 : imdb)

 


옛날에 영화 <멜랑콜리아>를 봤을 때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우울증을 시각화한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보니 아니었다. 영화는 우울, 죽음을 통해 희망, 행복에 관해 묻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코앞에 죽음을 맞닥뜨린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니. 행복이 뭐길래 우리는 죽기 전까지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저 막대기 몇 개로 지은 마법의 동굴 하나로도 우리는 평온해질 수 있는데. 왜 우리는 기를 쓰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단 하나의 완벽한 성을 지으려는 걸까? 그러면 우리는 정녕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면, 다시 한번 영화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 <멜랑콜리아>는 우울한 영화가 아니다. 행복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민지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5.02.0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5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