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소리 – 틱틱붐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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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유미의 세포들’과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세포 또는 감정이 생각보다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많은 세포와 감정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한다. 그리고 비상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나’를 위한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쉬운 신호조차 못 듣는 사람이 있고, 변장한 신호도 용케 알아채는 사람도 있다. 또는 신호를 외면하기도 한다. 뮤지컬 ‘틱틱붐’의 존은 신호를 들었지만, 의미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유망한 젊은 작곡가이다. 거창한 타이틀에 비해 존의 현실은 끝없는 터널과도 같았다.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작곡하는 나날들을 보내던 중 서른이 된다. 극의 배경이 1990년대 뉴욕이라 당시의 서른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잘 키우고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존은 뭐 하나 이룬 것 없는 상태에서 서른이 되어, 다가오는 생일마저 달갑지 않았다. 그 시점에 존은 ‘틱, 틱, 붐!’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시도 때도 없이 존의 귀에만 들리는 소리에 고통스러워한다.
반면, 존의 오랜 친구 마이클은 배우의 꿈을 접고 회사에 취업하여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 외제차에 좋은 집까지 소유한 마이클을 보며 존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런 존을 알기에 마이클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자리를 제안하면서도 존의 삶을 존중하고 재능을 인정하고 있다. 존은 마이클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회의에 참석했지만, 틀에 박힌 생각만 하는 직원들과 맞지 않아 회의 도중 쫓겨난다.
한편 존의 여자 친구 수잔은 뉴욕생활에 지쳐가던 중이었다. 존을 위해 치열하고 복잡한 뉴욕에서 무용수를 하며 버텨왔지만, 이제는 현실과 타협하며 평화로운 곳에서 살고 싶어졌다. 그것도 존과 함께. 하지만 존은 준비 중인 작품 워크숍 생각밖에 없었다. 수잔은 그런 존의 곁에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혼자 떠나기로 한다.
5년 동안 준비했던 워크숍이 드디어 열렸고, 사람들의 반응도 평소보다 좋았다. 하지만 브로드웨이 극장에 올리는 건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존의 두려움과 불안은 ‘붐!’하고 폭발하고, 존은 무너져 내렸다. 모든 걸 포기하려던 순간, 마이클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슬픔을 주체하지 못한 채 피아노 앞에 다가선다. 며칠 전만 해도 수잔에게 피아노 치는 법을 까먹었다고 말했던 존은 피아노 연주를 하며 슬픔을 쏟아낸다. 그리고 마이클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제대로 부를 수 있을 때까지 노래 연습을 한 후, 밖으로 나온 순간 느꼈던 행복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한 후 느꼈던 행복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생일날, 마이클과 수잔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고 있던 존은 이제 ‘틱, 틱, 붐!’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친구들과 자신의 생일을 즐기던 중, 전화가 온다. 존이 그토록 기다렸던 연락이었다. 자기 작품에 대해 제안할 거라고 직감한 존은 느닷없이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생일파티를 즐기는 존의 모습에서 막이 내린다.
원작은 비운의 천재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유작이라고 한다. 1990년, 자신이 직접 출연하여 모놀로그 형식의 극을 보여줬다. 당시에는 새로운 형식이었고, 여러 번의 워크숍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지만 죽음을 맞이했다. 그 후, 그의 친구들이 마이클과 수잔이 일인 다역을 하는 구성으로 다시 기획하였다. 조나단 라슨이 세상을 떠나고 5년 후, 오프브로드웨이 Jane Street 극장에 올라갔고, 2002년 1월 6일까지 공연되었다고 한다.
국내로 온 이 작품은 이지영 연출, 황석희 작가, 오민영 음악감독 등 실력 있는 제작진에 의해 한국인의 취향과 성향에 맞게 만들어졌다. 특히 위트와 공감이 느껴지는 대사와 가사가 많았다.
넘버는 공연을 본 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흥얼거리게 될 정도로 쉽고 중독성이 있었다. ‘Therapy’는 존과 수잔이 사소한 일로 말다툼하게 되는데, 두 사람의 생각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넘버였다. 말맛이 잘 살아있고, 핑퐁 대는 가사는 톡톡 튀는 멜로디, 리듬과 잘 어울렸다.
‘Come to Your Senses’와 ‘Louder than words’는 사유를 하면서 듣게 되는 넘버였다. 넘버 중 가사가 가장 공감이 많이 되는 곡이기도 했다.
‘Come to Your Senses’의 ‘마음의 눈을 떠 네 안에 젖은 벽은 진짜가 아니야 넌 알잖아’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이끌어주는 응원의 노래 같았다. ‘Louder than words’는 90년대의 사회 분위기와 당시 사람들의 특성을 그린 곡이었는데, 지금과 닮은 점이 많았다.
"왜 우린 위험한 밤거리에 등불을 걸지 않나, 왜 사고를 겪어야만 진실을 깨닫는 걸까
왜 우린 최선을 다할까 적당히 살아도 되는데, 왜 우린 상사의 억지에도 고개를 끄덕일까
왜 우린 안전한 길을 두고서 험난한 길을 갈까, 왜 우린 무책임한 자를 따를까
말해줘 폭풍을 겪어야 비로소 혁명이 시작되는 이유를, 왜 이 세상엔 아픔이 많은 걸까”
가사에 평소 하고 싶었던 말들이 다 담겨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이 이 가사에 공감과 사이다를 느꼈을 것 같다.
왜 실망할까 두려워 싸움을 피하는 걸까
불안함에 고개 숙인 맘들이 어떻게 날아오를 수 있나
내 앞에 놓인 버거운 현실도 피하지 말고 너의 길을 가
왜 우린 맞지 않는 사람 곁에서 주저할까
왜 홀로 되는 밤이 두려워 고통 속에 살까
행복으로 외쳐 소리 높여 두려워하지 말고
- ‘틱틱붐’ 넘버 ‘Louder than words’
‘틱틱붐’의 시대 배경은 90년대 뉴욕이지만, 21세기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현시대의 서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분명히 변화되었지만, 나이에 대한 압박은 여전하다. 예전처럼 서른을 늙은이로 보지 않는 대신, 나이마다 주어진 일들이 늘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조기교육을 마쳐야 하고, 10대에는 취업까지 정해놔야 하며 20대에는 경력을 쌓고 노후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조건들이 생겼다는 거다. 이 조건들을 충족해야 성공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 그만큼 성공의 벽도 높아졌다. 그러니 어찌 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이 열정이 없고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
‘틱틱붐’은 불합리한 룰에 따르지 말고 각자의 길을 가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마이클이 존에게 “서른이면 어떻고!”라고 말했던 것처럼 나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걸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나 자신일 수 있고, 현실에 묻혀버린 진짜 행복 또는 재능일 수도 있다.
“넌 너의 길을 선택한 거고, 난 나의 길을 선택한 거야.”
- ‘틱틱붐’의 마이클 대사에서
위 대사는 나이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불안과 두려움이 폭발한 존에게 마이클이 했던 말이다. 마이클은 존처럼 꿈을 향해 달렸지만, 안정적인 현실을 선택하여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존에게 그런 말을 진심으로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마이클의 시선과 태도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함부로 평가하고 행복과 성공을 제멋대로 판단한다. 그러면서 본인은 존중받고 싶어 한다. 삶은 도덕적인 부분을 어기지 않는 이상, 정답은 없다. 성공도 마찬가지다. 마이클의 말처럼, 각자의 길을 선택한 것뿐이다.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본인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다.
존은 시계 초침 같은 ‘틱, 틱’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들려서 고통스러워했다. 신호를 들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붐!’ 소리가 다가올 미래라는 것도.
나이의 압박과 사회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을 돌보지 못한 존은 결국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안과 두려움이 ‘붐!’ 하고 폭발했다. 그것도 시한부 선고 받은 친구 마이클 앞에서. 그제야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고, 늦게 깨달아 후회했다. 늦게라도 깨닫고 성장한 존을 보면서 흐뭇했지만, 그동안 아픔을 겪었던 걸 생각하면 안타까웠다.
존처럼 신호는 들었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아예 신호를 못 듣거나 안 듣는 사람도 있을 테다. 한번 ‘나’는 어떤 쪽일지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더 나아가 필자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한 신호를 잘 알아채어 조금이라도 덜 아프길 바란다.
[강득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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