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방 안에는 사실 DJ가 산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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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비밀인데, 난 사실 내 방 안에 음악을 틀어주는 DJ를 따로 두고 있다. 이 DJ는 제법 여러 명이다. 날마다 바뀌기도 하고, 노래를 대체 어디서 디깅해오는 것인지 그 비법이 궁금해질 만큼 모든 노래가 거를 타선 하나 없이 다 좋은 편이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통해 여러분에게도 공유하고자 한다, 나의 DJ들을.
내가 말하는 이 DJ들의 정체,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다. 바로 유튜브 속 플레이리스트 채널들! 그 채널의 주인장들이 바로 나의 방 속 작은 DJ들인 것이다.
난 워낙 음악 취향이 마이너한 편이라, 내가 직접 찾아서 듣는 노래들이 아니고서야 대체로 끌리지 않았다. 항상 들었던 노래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닳을 때까지 듣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나를 바뀌게 해준 것이 바로 이 플레이리스트 채널들.
그 사람들이 직접 디깅한 노래들을 하나의 주제나, 테마로 모은 플레이리스트는 꼭 정말 알차게 구성된 명절 선물 같다. 포장지, 즉 썸네일부터가 참 호화롭고 먹음직스러운 데다가 상자를 열면 이런저런 요소들이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참 예쁘게 구성되어 있다. 이게 명절 선물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 말에 ‘에이, 고작 플레이리스트인데?’라고 생각하다가는 큰코다친다. 나의 새로운 취향을 발굴해 줄 은인이 될지도 모르니까.
1. 평범 미도리
독보적으로 귀여운 컨셉의 플레이리스트가 꾸준히 업로드되는 채널.
이 채널의 주인장, 즉 DJ분은 작은 소품샵을 직접 운영하고 계신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플레이리스트 하나하나가 소품처럼 정말 귀엽다. 마치 그 가게를 유튜브 버전으로 재해석한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워낙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계신 사장님의 센스가 유튜브 채널에서도 어김없이 돋보인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 오직 이 채널에서만 할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 하나도 꾸준히 올라온다. 바로 ‘미도리 작업실에서 흘러나오는 ~의 노래’라는 플레이리스트. 실제로 운영하는 소품샵의 이름이 ‘미도리 작업실’인데,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라는 컨셉으로 특정 가수의 노래를 큐레이션 하여 들려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참 똑똑한 컨셉이 아닐까. 미도리 작업실을 아는 이들에게는 청각과 함께 시각적으로 상상할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고, 모르는 이들에게는 미도리 작업실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커질 수 있으니까.
대부분이 다 직접 촬영해 제작한 정성 가득한 썸네일인 점도 마음에 쏙 든다. 물론 플레이리스트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사진을 어디선가 저장해서 썸네일로 설정하는 것도 좋고 그것도 센스이다. 하지만, 정성들여 촬영한 것을 플레이리스트의 썸네일로 사용할 정도라면 그만큼 하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정성을 들였고, 직접 찍은 사진을 대체하지 못할 만큼 컨셉이 확고하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채널이 좋다.
또, 지금껏 본 적 없던 독특한 컨셉의 플레이리스트까지 겸비하고 있다. 바로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듣는 음악을 들려주는 플레이리스트! 실제로 작품 속에서 그들이 듣는 음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 라이프스타일에서 유추하여 하나의 플레이리스트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직접 들어보면 그럴싸하다. 정말로 주인공들이 들을 법한 노래들 같아 괜스레 작품에 대한 여운도 스멀스멀 다시 느껴진달까.
2. 세훈인서울
‘~의 사랑 노래’ 플레이리스트의 시초인 채널.
이제는 유튜브만 틀면 흔히 볼 수 있는 ‘~의 사랑 노래’ 플레이리스트. 그 플레이리스트의 시초가 바로 세훈인서울님이다. ‘악동뮤지션의 사랑노래’, ‘지드래곤의 사랑노래’는 어느덧 몇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하나의 작품이 되었는데, 그도 그럴만한 것이 플레이리스트에 디테일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짝사랑 노래로 시작해 이별 노래로 마무리되는 곡 진행 순서 하며, 썸네일 속 풋풋한 악동뮤지션의 사진까지. 깨알 같은 부분에서 그의 센스를 엿볼 수 있다.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상 나는 이런 디테일을 찾는 재미로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의 강점이 하나 있는 데 바로 90년대 유행했던 음악들을 셀렉하는 능력이다. 그 시절, 추억의 노래들을 어쩜 그렇게 쏙쏙 골라 오는 것인지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면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듯 그때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댓글에도 다들 각자의 추억 이야기가 한창이다. 분명 90년대 노래들을 들려주는 플레이리스트는 많지만, 유독 이 채널에는 흔한 듯 흔하지 않은 그런 추억의 노래가 가득한 것이 참 신기하다. 이런 한 끗 차이로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게 바로 이 채널의 매력. 또, 마치 라디오처럼 라이브로 방송을 진행하며 그날의 기분과 느낌에 따라 노래를 들려주는 것도 정말 매력 있었고, 그의 일상과 사담이 올라오는 블로그마저 참 좋다. 또, 워낙 장르 구분 없이 다양한 노래를 즐겨들으시다 보니 나도 몰랐던 장르에 내 취향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아, 이쯤 되면 ‘세훈’이라는 사람 자체가 가진 매력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려나.
최근에는 알엠 앨범의 A&R을 맡고, 다양한 매거진에 글을 기고하며 더 많은 갈래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아무튼 난 이 사람의 다음이 기대되니까, 아마 그의 모든 다음에 함께하지 않을까.
3. 오드스튜디오
에디터의 최애 DJ.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편집으로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 채널은 사실 편집 실력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다.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만이 이러한 플레이리스트 채널들의 본분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좋은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플러스로 편집 실력과 채널주만의 미감이 더해진다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오드스튜디오라고 볼 수 있겠다. 그저 완벽한, 삼위일체 채널의 탄생이다.
별거 아니지만, 이런저런 요소들로 꾸며진 썸네일과 오프닝 속 짧은 편집 기술을 통해 이 사람의 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딱 내 취향에 들어맞았다. 플레이리스트는 화면을 띄워두고 재생해 둔 채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많이 사용하는데, 그럴 때면 오드스튜디오가 만든 플레이리스트에 저절로 손이 갔다. 너무 예쁘니까…. 자연스레 손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노래까지 완벽하니까 기분이 두 배로 좋아지는 거지.
특이하게도 이 채널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재즈에 강한데, 테마에 따라 모아둔 재즈 플레이리스트들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절로 재즈의 매력에 빠져든다. 비 오는 날 미술관의 재즈, 가을이 담긴 재즈, 해피 런치 재즈 등 테마도 참 다양하다. 재즈 자체에 관심이 없더라도 분명 어떠한 테마 하나는 당신의 취향일 것이다. 그 취향에 따라 하나의 테마를 선택한다고 생각하고 우선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해 보길 바란다. 사실 나도 재즈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재알못’이지만, 이 채널 속 영상만 보면 ‘아, 나 재즈를 사랑하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이 셋이 내가 가장 자주 찾는 DJ들이지만, 그 외에도 유튜브에는 너무나 재능 있는 DJ들이 많다.
4. 밴드 붐은 온다
'밴드붐이 뭔데?' 하는 사람들은 이 채널만 보면 된다. 최근 떠오르는 밴드들을 주로 하여 업로드 되는 채널. 각 밴드별 음악을 선별하여 만든 플레이리스트가 가득해 영상 하나를 보고 나면 해당 밴드에 푹 빠져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 단점 아닌 단점이다.
5. 나체 박물관
나만 알고 싶은 보석 같은 채널이다. 주로 옛날 프랑스 영화의 한 장면을 썸네일로 쓰는데, 흔치 않은 썸네일 덕인지 유독 감성이 독보적인 느낌이다. 셀렉하는 노래들도 왠지 남다르다.
6. 브로드 플레이
구독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채널. 특이하게도 이 채널의 경우, 구독자가 어떤 장소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제작해달라며 신청서를 제출하면 해당 장소에 브로드 플레이가 직접 방문하여 촬영을 진행하고, 그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제작해 주는 채널이다. 너무 신박한 채널이라, 대성하였으면 하는 마음.
이곳저곳, DJ들이 마련해 둔 공간에 가서 자리를 잡고 한 번 즐겨보자. 그러고 당신의 마음에 들어왔다면 그 DJ는 그날부로 당신의 방에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정한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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