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5년의 새로운 문화를 기다리며. – 오아시스와 쿨 브리타니아 [문화 전반]

어쩌면 모두가 희망을 찾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글 입력 2025.01.1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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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전설적인 브릿팝 밴드 오아시스 Oasis가 데뷔 30주년, 해체 후 15년만의 재결합을 선언하며 문화예술계를 들썩였다. 공식적인 발표 전, 형제가 재결합한다는 소문만으로도 앨범 스트리밍 횟수가 전세계적으로 160% 이상 증가하는 등,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어린시절을 보냈던 X세대들은 물론, 이례적으로 “Gen-Z”들 (Z세대, 1990년대 중/후반생 – 2010년 초반생) 역시 오아시스에게 열성적인 환호를 보내왔다. Z세대는 어째서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전성기를 누렸던 밴드에게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선행연구에 따르면 Z세대들의 29%가 90년대의 음악을 가장 즐겨 들으며, 23%가 00년대의 음악을 주로 즐겨 듣는다고 한다. (Futra Tech Labs, 2024) 부모님 세대가 트는 음악을 듣고 자라난 세대의 무의식에 뿌리내린 향수, 그리고 인터넷 알고리즘과 스트리밍 시장의 발달이 이들을 브릿팝의 세계로 이끈 것이다.


현 세대는 유래 없는 기후위기, 경제의 불황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 AI 등 기술에 대한 불안을 겪고 있는 중이다. 또한 COVID-19를 정통으로 겪으며, 인터넷 세상 속 허구의 자극적인 콘텐츠만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이러한 소년들을 가슴 뛰게 한 것은 90년대 중 후반 영국에서 강렬하게 솟구쳤던 날것의, 쾌락주의적이고 급진적인 자유로운 문화였다. Z세대들은 90년대의 날뛰는 자유를 음악과 영상으로 접하며 크게 갈망하게 되었다. 60년대의 비틀즈가 90년대의 소년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Z세대가 그들이 선망하는 90년대 후반을 풍미했던 전설적인 브릿팝 밴드들의 열성적인 팬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Young people have a longing for the kind of connection that is romanticized when we talk about the 1990s." – Neil Ew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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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tt Anderson of Suede, Damon Albarn of Blur, Jarvis Cocker of Pulp and Noel and Liam Gallagher of Oasis

 

 

위는 “The Big Four”라고 불렸던 브리티쉬 모던 록 밴드 오아시스 Oasis, 블러 Blur, 스웨이드 Suede, 펄프 Pulp의 사진이다. (The Telegraph, 2023) 오아시스를 비롯한 당대의 밴드들은 밝고 경쾌한 복고풍의 음악을 연주하고, 도드라지는 영국식 발음으로 삶에 대한 의지와 야망 그리고 반항을 노래했다. 비틀즈의 ‘미국 침공’에 이은 3차 침공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적으로 브릿팝 열풍은 가히 엄청났는데, 이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당대 영국 정부의 전폭적인 대중예술계 지원과 국가적 소프트 파워 마케팅, “쿨 브리타니아 Cool Britannia”이다.

 

쿨 브리타니아, 말 그대로 ‘멋진 영국’이라는 이 구호는 1979년부터 이어졌던 보수당의 장기집권이 막을 내린 후, 신노동당의 40대의 젊은 총리 토니 블레어 Tony Blair가 이끄는 새로운 영국의 키워드이자, 문화국가로의 도약을 꿈꾸는 국가 계획의 일부였다. 언론과 대중의 주목 아래 몸집을 키우고 있던 브릿팝은 신노동당의 정권 교체 시기에 날개 단 듯 저항 문화의 상징으로 급부상했다.

 

"Some might say we will find a brighter day," – Oasis,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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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은 그들의 캐릭터성과 음악, 대중들의 열기를 영국의 문화적 활기를 불어넣어줄 불쏘시개로 보아 적극 지원했고, 언론은 ‘브릿팝 전쟁’, ‘미국 침공’ 등의 대내외적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 불을 지폈으며, 대중들은 이에 열광했다. 위는 유니언 플래그가 그려진 기타로 연주하고 있는 노엘 갤러거 Noel Gallagher (Oasis)의 사진이다. 그는 특히 그들 스스로를 보통의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던 노동자 계급이라고 정의하고, 공식석상에서 블레어 정부를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쿨 브리타니아’라는 구호 아래, 유니언 잭은 더 이상 우파의 상징이 아닌 활기를 띤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기쁨의 상징이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이 시기의 영국 문화 산업은 전세계 총 경제의 3퍼센트를 차지했을 정도로 눈부시게 빛났다. 브릿팝이 선도한 대중음악은 물론, 정부의 문화 융성 정책에 의해 성장한 공격적이고 자유로운 미술, 패션, 영화, 스포츠 등은 현재까지도 영국 경제의 핵심에 속한다. 다만 모든 정책이 그러하듯, 명과 암은 함께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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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브리타니아의 성공적인 발돋움과 함께, 브릿팝 본래의 저항정신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제3의 길’을 택했던 블레어 정부의 자본과 지원에 길들여져 상업화되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당선 축하 파티에 초대되어 그와 함께 샴페인을 마셨던 노엘 갤러거의 사진은 쿨 브리타니아의 상징적 장면으로 역사에 남았다. 브릿팝의 도약은 기득권에 맞서 노동계급의 하위 문화가 주류를 차지한 현상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2017년 더 가디언 지의 기사에 따르면 여전히 모든 자국 문화계를 이끌고 선도하는 것은 기득권층 (ns-sec 1-2)으로, 계급주의는 공고했다. 노엘 갤러거는 후일 이 날 파티에 가서 샴페인을 마셨던 것을 후회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총리의 초대를 거절했던 블러 Blur의 데이먼 알반 Damon Albarn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와 같은 예술가나 연예인은 그들에게 의견을 나누고자 하는 상대가 아닌 선전도구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BBC News, 2005).”

 

누가 쿨 브리타니아와 영국의 문화적 성장에서 이득을 보았는가? 정말 문화는 철저히 특정 계급에 의해 기획되고 판매되는 것일까? 예술가들과 대중의 진심이 시너지를 발휘해 선도해 나가는 것이 문화일까? 쿨 브리타니아와 브릿팝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오아시스의 재결합으로 다시금 쿨 브리타니아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민족적 자긍심의 고취를 바라기엔 당시와 많이 다른 상황과 자본시장의 변화를 이유로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그들의 음악에서 위로와 희망을 얻었던 대중들의 진심, 그리고 일관적으로 그들의 대중을 위해 노래했던 오아시스의 진심이 폄하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오아시스의 음악이 세대를 넘어 크게 사랑받고 환호 받는 것은 결국 그들의 거칠고 단순한 가사와 멜로디 속에 담긴 날것의 진정성, 그리고 "가장 보통의 희망" 때문 아닐까.

 

경제, 문화, 정치는 결코 단순히 분리될 수 없는 복잡한 틈바구니 속에 어지러이 얽혀 있다. 다만 그 속에 녹아 든 한 방울의 농도 짙은 희망을 찾기 위해 우리 모두는 2025년의 다가오는 새로운 문화를 기꺼이 기쁘게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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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sis looked like us, dressed like us, talked like us and wrote songs for us. And I don't think anyone else ever came along after and did that again. (오아시스는 보통의 우리처럼 생겼고, 입고 말하며, 곡을 쓴다. 그리고 나는 그들처럼 할 수 있는 뮤지션이 다신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 Mark Kn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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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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