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눈사람 아니 눈토끼

우리의 마음속엔 7살 아이가 남아있다.
글 입력 2025.01.0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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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1월 5일 오전, 푹 자고 눈을 뜨니 밖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눈이 쌓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눈사람도 만들고 눈 내린 풍경을 찍으러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아무래도 뜨끈하고 포근한 이불 속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기란 영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10분, 30분, 1시간.. 시간을 흘려보내다 지인이 꽃을 든 눈사람을 SNS에 올린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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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오늘은 꼭 눈사람을 만들러 나가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목도리를 싸매고 라텍스 장갑 두 쌍을 챙겨서 지하철로 향했다.


지난 12월 초, 눈이 내리고 거의 다 녹아 없어진 눈덩이들을 끌어모아 친구와 함께 작은 눈사람 4개를 빚었다. 그리고 작고 연약한 눈사람들에 아쉬워하며 눈이 오면 다시 큰 눈사람을 만들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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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눈사람 만들러 가는 중인데, 올래?


혹시 하며 급하게 던진 말에 친구는 20살은 집에 두고 출발하겠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중간 지점인 아시아 공원에서 1시간 후에 만났다. 부디 눈이 녹아 있질 않길,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수북히 쌓여 있길 기대하면서.


작은 눈덩이가 몸통과 머리가 되기 위해 두 눈덩이는 공원 이곳저곳에 굴려졌다. 눈 내린 하얀 공원에 누가 지나간 듯 트인 흙길은 눈사람이 되려는 눈덩이들이 지나간 자리였다. 불려진 몸통에 홈을 파고 힘을 합쳐 머리를 들었다. 사실은 굴리다가 돌덩이도 같이 굴렸나 의심이 들 정도로 무거웠던 머리는 여러 번 덜어내어 5번 만에 몸 위로 올릴 수 있었다.

 

토끼띠인 우리는 이 공원에서 가장 귀여운 토끼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귀를 쌓고, 코를 빚고, 눈을 붙였다. 한술 더 떠서 수염과 눈썹, 이빨도 심어주었다. 또또 한술 더 떠서 하트 모양의 단추를 달아주고 헤드셋까지 씌웠다. 눈사람에는 꽤 많은 디테일과 아이디어들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괴상하다며 배를 부여잡고 웃었지만, 여러 번 다듬는 보수공사 끝엔 어느 샌 정이 들었는지 (우리 눈에는) 당돌해 보이는 귀여운 토끼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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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보니 80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빨개진 손은 감각이 없었다.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하니까 내 체온의 일부는 이 눈사람에게 묻어 있을까. 우리가 눈사람을 만들며 즐거웠던 순간과 행복한 감정들까지 여기 함께 뭉쳐져 있을까.


지나가던 어르신은 손녀가 좋아할 것 같다며 사진을 여러 장 찍어 가셨고, 공원을 나가는 길에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눈사람을 직접 만들어보니 사람들이 눈사람을 보며 미소 짓는 이유는 만든 이의 뿌듯한 감정과 재밌었던 경험까지 전달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눈사람도 지나가던 이들을 잠시라도 웃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눈사람이길.


겨울의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참 많다. 바삭하고 촉촉한 붕어빵을 한입 크게 베어 먹을 때, 미각으로 겨울을 자주 느끼곤 한다. 이번에는 내 손을 마비시키는 부드럽지만 아주 시린 촉감. 이 감각으로 겨울을 조각하고 형상화하며 1월의 겨울을 제대로 맛보았다.


공원에는 우리 말고도 쓰레받기와 플라스틱 통을 가져와 이글루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일 출근길을 걱정하며 예쁜 쓰레기라고 해도, 주말에는 눈사람 만들러 나온 어른들에게 여전히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면모가 남아있다는 걸 실감한다. 하얗고 깨끗한 눈을 통해 맑고 순수했던 유년 시절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눈이란 참 신비로운 것이 아닌가 하고 또 감탄한다.


차가워진 손을 달래기 위해 뜨끈한 차를 마시며 우리는 우리가 만든 토끼가 남아있길 소망했다. 모순적이지만, 눈사람을 그토록 재밌게 만들던 우리는 겨울이 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눈사람은 몇 시간 후에도,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잘 살아 있는지 안부를 물어주는 게 또 하나의 묘미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 동네가 아닌 처음 와본 공원에서 만들었으니 확인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 겨울이 싫다던 두 사람은 눈사람이 그저 잘 있길, 그러기 위해선 되도록 겨울이 지속되길 염원할 뿐이었다.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추운 계절이지만 눈사람을 생각하면 어쩌면 조금은 천천히 지나가도 되지 않을까.

 

 

[이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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