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소중한 순간의 기억을 어떻게 보관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눈앞으로 불러일으키는가?

 

핸드폰 갤러리를 위로 올려보면서 옛 사진과 동영상들을 정독하면, 생생하게 내 눈앞에 그 기억들이 다시 재생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에 대해 느낀다.

 

최근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순간의 조각들에 대해 느꼈다. 그렇게 기억을 마주하게 되면, 더 깊게 기억의 순간들을 밟아간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여운처럼, 기억을 마주한 뒤의 여운이 더 선명하게 퍼진다.

 

예술이라 함은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책이 될 수도 있고, 특정한 향기가 될 수도 있다. 사실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오늘은 나의 개인적인, 예술을 스쳐 마법같이 나의 앞으로 다가왔던 기억의 조각들에 대해 조금 공유하고 싶다.

 

 

[크기변환]ontario.jpg

직접 찍은 교환 학생 시절의 노을

 

 

첫 번째 매개체는 음악이다. 미국으로 교환 학생을 갔을 때, 켄드릭 라마의 ‘Love.’라는 노래를 많이 들었다. 특히 여행을 갔을 때 많이 들었는데, 무작위로 재생한 노래 목록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뉴욕시티와 LA의 전경이 자동으로 눈 앞에 펼쳐진다. 가끔은 내가 미국에서 다녔던 학교의 눈 오는 전경, 혹은 노을이 뉘엇뉘엇 지는 호수의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처음 노래를 통해 기억의 조각들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난데없이 떠오르는 기억을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맞이하여 참 당황했다.

 

사실 나는 기억을 계속 소환하고 소환하면 그것이 닳아버려서 소중함을 잃게 될까봐 걱정을 한다. 그래서 이 노래가 나오면 한동안은 그냥 넘겨버리기도 하였다.

 

두 번째로는 책이다. 작년 여름,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청춘의 여름과 참 잘 어울리는 책이다.

 

그 여름, 나는 실제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고, 이 책이 건네는 위로를 오롯이 태양 아래에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실도 여름과 같아서 가버리기도 하고,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뜨거운 태양 아래의 6개월 어린 나의 모습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경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우연히 상실의 시대의 구절을 정리해 놓은 게시물을 마주했을 때, 이상하게 나는 와타나베의 모습보다는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었던 내자신과 마주했다.

 


tonka 25.jpg

 

 

세 번째로는 향이다.

 

이 글을 구상하며, 과연 향도 예술인가에 대한 고민을 잠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느꼈던 예술과 아름다움에는 정의가 없다는 그 교훈이 떠올라 넣기로 하였다.

 

향과 향수 또한 누군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글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깨달음과 감정을 불어넣는다. 예술가는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본인들의 경험에 의거하여 다양한 요소들을 조합한다.

 

향수 브랜드 르라보의 ‘통카 25’를 뿌리면, 미국 교환 학생으로 가서 만난 학교의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향수는 미국에서 사서, 학기 내내 친구들과 함께할 때 자주 뿌렸기 때문이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다시 그 향수를 뿌렸을 때의 괴리감 때문에 다시 이 향을 뿌리기가 어렵다. 나는 분명 한국에 있고, 함께했던 친구들은 미국에 있는데 그 향이 불러오는 내 추억의 조각들이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통카 빈의 우디함과 섞여 바닐라의 묵직함이 섞여 있는 이 향은, 오로지 그 시절을 살고 있는 나를 위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현재의 나와는 왜인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든다. 누군가가 다가와 그렇게 말해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크기변환]no swimming.jpg

직접 찍은 노을 2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다. 기억에는 정답이 없다. 기억을 마주하는 태도, 기억을 다시 소환하여 추억을 판다는 그 행위의 방식,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까지도.

 

여러분들은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걸어가는가? 그리고 어떠한 기분으로 그 기억들을 마주하는가?

 

상실감인가, 아니면 행복감? 그 중간의 어디, 아니면 정의할 수조차 없는 새로운 감각?

 

모쪼록 여러분들이 더욱 예술적으로 본인의 기억들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와 어울리는 예술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내가 그 예술을 다시 꺼내보도록 하는 것이다.

 

미화라고 해야 하나. 예술과 함께하면 순간은 언제나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모든 슬픔은 젊음이라는, 혹은 순간이라는 이름 아래에 잠식되어 버린다. 그러한 경험을 여러분들도 해보기를 바란다.

 

2025년의 1월을 살아가는 그대들에게 어울리는 예술은 무엇일까? 미래의 내가 이 순간을 어떤 예술로서 기억하면 좋겠는가?

 

모든 것은 우리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그 루프를 창작하는 것, 그리고 루프를 다시 돌아가 기억을 밟아가는 그 모든 과정이 또 다른 하나의 예술이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언젠가는 기억의 조각이 되어버릴 현재의 어느 순간들을, 예술을 통해 아름답게 기억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