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1990년의 조나단 라슨이 연말의 우리에게 – 뮤지컬 ‘틱틱붐’

글 입력 2024.12.26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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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틱틱붐>이 coex신한카드artium에서 내년 2월 2일까지 관객을 만난다.

 

<틱틱붐>은 <렌트>를 만든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인 뮤지컬로,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다루며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1990년 라슨이 처음 <틱틱붐>을 쓰게 된 계기부터 그의 죽음을 지나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를 짚어본다.

 

 

 

멈추지 않는 초침 소리를 들으며



[2024뮤지컬틱틱붐] 존(이해준).jpg

 

 

째깍째깍… 초침 소리는 우리의 시간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흘러간다고 속삭인다. 연말은 그 소리가 유난히 더 크게 들리는 시기다. 가끔은 초침 소리가 폭탄의 심지가 타들어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초침 소리, 무언가가 터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조성되고, 펑! 뮤지컬 <틱틱붐>은 그렇게 시작되는 작품이다. 첫 넘버 30/90의 첫 소절은 ‘시계를 멈춰라 (Stop the clock)’. 이 작품의 주인공,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한 ‘존’의 심경이다. 마땅한 대표작이 없는 가난한 예술가인 그에게 서른은 불안해지는 나이다.


1990년,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은 조나단 라슨도 그런 기분이었던 걸까. 20대의 8년을 쏟아부은 작품 <슈퍼비아(Superbia)>가 다소 난해하다는 평을 받으며 브로드웨이 진출에 실패하고 라슨은 좌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굴하지 않고 이 경험을 담은 작품을 만들기로 하는데, 그게 바로 <틱틱붐>이다. 그는 당시 브로드웨이의 흥행 공식을 따르는 대신 ‘락 모놀로그’라는 새로운 형식의 1인극으로 이 작품을 구성했고, 자신이 직접 출연해 여러 차례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틱틱붐>의 존에게서 여러 차례 라슨의 모습을 겹쳐볼 수 있다. 라슨처럼 존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라슨 주변에 많은 친구들이 에이즈 진단을 받고 투병했던 모습은 극중 존의 친구 ‘마이클’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틱틱붐> 자체가 서른 무렵 조나단 라슨의 고민과 불안이 고스란히 담긴, 그의 인생의 한 풍경인 셈이다.

 

 

 

<틱틱붐>과 <렌트>의 연결고리


 

[2024뮤지컬틱틱붐] 존(배두훈).jpg

 


<틱틱붐>은 <렌트>를 본 관객이라면 훨씬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전망이 불투명한 꿈을 좇아야 할지 현실에 적응해 다른 업을 찾아야 할지 갈등하는 예술가, 에이즈와 투병하는 청춘들의 모습은 <렌트>의 주된 요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렌트>는 <틱틱붐>을 쓰던 라슨이 에이즈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면서 <틱틱붐>을 잠시 중단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보다 사회문제와 현실에 좀 더 중점을 둔 작품을 만들어 보고자 새롭게 만들기 시작한 작품이다.


비슷한 듯 다른 두 작품은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신화나 전설,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들을 내세운 작품은 우리의 일상과 현실을 담은 작품도 뮤지컬이 될 수 있으며,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락 느낌이 두드러지는 넘버도 두 작품의 개성이었는데, 이는 라슨이 기존의 뮤지컬 관객을 넘어서 늘 새로운 관객을 상상하고 그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을 고민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라슨의 죽음과 <틱틱붐>의 부활


 

[2024뮤지컬틱틱붐] 존(장지후), 수잔(김수하), 마이클(김대웅), 앙상블.jpg

 

 

<틱틱붐>은 무대에 오르기까지 긴 여정을 거쳤다. 처음 라슨이 <틱틱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서른 살인 1990년이었다. 그래서 작품 제목도 ‘30/90’, 1990년에 서른 살이 되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의미였다. 그러다 <렌트>를 쓰며 창작이 미뤄지자 제목이 'BoHo'로 바뀐다. 자신이 사는 동네인 ‘휴스턴 스트리트 아래에서의 삶’이라는 의미인 동시에 보헤미안적인 생활을 지칭했다. 하지만 관객이 보기에는 의미가 모호할 것이라고 판단해 최종적으로 결정된 것이 ‘틱틱붐’이다.


<렌트> 개막을 하루 앞두고 라슨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으며 <틱틱붐>은 그대로 사장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작품이 묻히는 걸 아쉬워하던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행히 <틱틱붐>은 다시 한번 기회를 얻는다. 이후 <프루프(Proof)>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에번이 이 작품을 검토하고, <틱틱붐>은 1인극에서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형태가 되어 2001년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다. 라슨이 작고한 지 5년이 지난 후였다.


이미 <렌트>가 크게 흥행한 상태에서 <렌트>와 비슷한 감성을 공유하면서도 조금 더 아늑한 분위기로 개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다룬 <틱틱붐>은 수많은 ‘조나단 라슨 마니아’를 형성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2021년, <틱틱붐>은 넷플릭스 영화로도 제작되며 다시 한번 그 제목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1990년의 라슨이 2024년의 우리에게


 

[2024뮤지컬틱틱붐] 존(배두훈), 수잔(김수하), 마이클(양희준), 앙상블.jpg

 

 

<틱틱붐>이 20년 넘게 공감받는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서른이라는 나이가 늘 고민으로 가득한 시기여서일 것이다. 존과 비슷한 나이대의 관객은 청춘의 끄트머리에서 기로에 선 존의 모습에 자신을 대입해 본다. 또, 두려움과 불안감 속에서도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그에게서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틱틱붐>은 끝까지 자기의 꿈을 따라가는 존의 삶만이 정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꿈을 택한 존이 막이 내린 후에 예술가로서 성공했는지 여부도 알려주지 않는다.

 

사람마다 서른의 풍경은 다양하다. 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긴 하지만 <틱틱붐>에는 존과 헤어지고 사랑이 아닌 커리어를 선택한 수잔의 삶도, 꿈 대신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을 받아들이는 마이클의 삶도 있다. 옳은 선택이란 없다. 모든 선택은 불확실하고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틱틱붐>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두려움을 무릅쓰고 삶을 ‘실제로’ 사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아도 무엇이든 부딪혀 보고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렌트>의 성공을 보진 못했지만, 자신의 삶을 거기에 온통 쏟아부었던 라슨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서른 살의 초조함을 토로하는 '30/90'으로 시작한 작품이 ‘Louder than words’로 끝나는 이유는 그래서가 아닐까. 이 넘버는 묻는다. “왜 우리는 불장난을 할까? 그것이 고통스러울 것을 알면서도. (Why do we play with fire? / Although we know we're in for some pain?)” 여기까지 다다르면 초침 소리는 더 이상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도록 부드럽게 밀어주는 소리로 다가온다. 라슨은 <틱틱붐>을 만들며 불안한 자기 자신에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지금, <틱틱붐>을 보는 관객은 그 말을 들으며 내년으로 건너갈 힘을 새롭게 얻을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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