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세상의 모든 프라블러미스타들에게 [영화]

영화 ‘프라블러미스타(PROBLEMISTA)’
글 입력 2024.12.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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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BLEMISTA, 프라블러미스타. 한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쉬운 일을 꼬고 꼬아서 어렵게 만드는 사람. 그래서 자기 팔자를 자기가 꼬고 또 꼬게 되는 사람. 영화의 두 주인공 알레한드로와 엘리자베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프라블러미스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난감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회 초년생 ‘알레한드로’. 지금은 너무나도 멀리 있는 꿈이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뉴욕에 거주하는 엘살바도르 출신 이민자로서 취업 비자 때문에 항상 전전긍긍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며 하루하루를 겨우 보낸다. 남들이 보는 그는, 제 발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심한 곳으로 걸어 들어와 힘든 일만 족족 찾아다니는 사람. 느리디느린 행동, 어딘가 얼빠진 표정을 한 채, 언제나 홀로 작은 공책에 무언가를 끼적이기 바쁜 아웃사이더다.

 

예술 비평가이자 괴짜 중의 괴짜 ‘엘리자베스’. 급한 성격과 신경질적인 성향으로 주변 사람들을 질리게 만드는 나르시시스트다. 문제 하나를 던지면 여러 개로 응수해서 별명이 히드라다. 쉬운 문제도 어렵게 만든다. 그녀와 대화가 통하던 유일한 존재이자 무명 예술가인 남편 보비는 병으로 인해 몸을 얼렸고, 엘리자베스는 다시 괴팍하고 예민한 외톨이가 된다. 그림의 가치를 인정받는 미래를 꿈꾸며 냉동 수면에 빠진 보비를 위해, 그가 그린 13개의 달걀 작품으로 전시를 열고 칭송 받아야만 한다. 지금은 아무도 달걀들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다.

 

영화 속 알레한드로와 엘리자베스의 삶은 가는 길마다 문제투성이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도 불안해질 정도로 미완성에, 엉망진창에, 불확실하고, 위태롭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각자가 반드시 이뤄야 하는 것이 있기에 가시밭길을 자처한다. 비자와 전시회, 더 크게는 인생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잠시 손을 맞잡고 삶의 문제들을 헤쳐 나가기 시작한다.


 

 

예술계 아웃사이더들의 전시회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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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는 비교적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 돌로레스는 아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예술가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넓은 숲속에 오직 알레한드로만이 누릴 수 있는 꿈의 요새를 구축했다. 그가 보호의 울타리를 벗어나 미지의 세상으로 향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기저에 깔린 행동이다. 무한한 경쟁 속에 내던져져서 끝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현실로 나가지 않길 바랐지만 꿈꾸는 아이를 막을 수는 없다. 알레한드로는 돌로레스가 만든 세상을 벗어나 위험이 도사리는 사회의 동굴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렇게 그는 장난감 디자이너의 꿈을 품은 채 뉴욕에 도착한다. 세계 최고의 장난감 회사 해즈브로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의 이력서만 받는 탓이다. 그는 취직을 준비하며 재미에만 치우친 장난감보다는 삶의 다양한 양상을 담은 장난감을 구상한다. 재밌고 아름답기만 한 인생은 없으니, 보다 현실적이고 복잡한 일상의 면면을 담아 어린이들에게 긴장감과 흥미를 전하고자 한다. 세상에 없는 장난감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다. 야망 넘치는 기획안으로 해즈브로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리지만 감감무소식이다.

 

장난감 디자이너로서 취직하는 일은 둘째 치고, 뉴욕에 머무르는 일만으로도 버겁다. 그가 마주한 뉴욕은 예상보다 훨씬 더 험난한 곳이다. 일을 해도 공식 스폰서가 아닌 사람에게는 합법적인 급여를 받지 못한다. 돈도 연고도 없는 그에게 날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무례한 태도뿐이다. 물론 기회의 땅인 것은 맞지만 예술가를 꿈꾸는 이민자에게 각박한 도시인 것도 사실이다. 자본과 경쟁이 지배한 거리에서 조금이라도 쓸모없는 것은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반짝거리는 조형물과 미술 작품들은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길에 버려져 있다. 알레한드로는 뉴욕 한가운데에서 그 쓰레기 더미의 일부가 된 기분을 느끼지만 자신이 선택해서 온 곳이기에 달리 방도가 없다.

 

꿈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뉴욕에 머물러야만 한다. 겨우 구하게 된 일자리는 예술가 전용 극저온 보관 시설이다. 그곳에서 무명 예술가 보비의 기록 보관을 담당하게 된다. 돈을 벌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업무 실수로 인해 해고당한다. 한 달 안에 다시 비자 스폰서를 구하지 않으면 추방될 위기에 처한다. 마침 그때, 우연인지 운명인지 보비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만나게 되고 스폰서가 되어주겠다는 말에 그녀의 프로젝트에 동참한다. 그렇게 보비가 남긴 13개의 달걀 작품을 추적하고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민자, 삼류 예술가, 그리고 이상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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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의 시행착오를 따라가며 가장 깊이 이입하게 되는 감정은 그가 이민자로서 느끼는 불안감이다. 취업 비자를 위해 스폰서를 구하면 비자 신청비와 변호사 비용이 있어야 한다. 적지 않은 비용을 마련하고 긴 절차를 거친 후에야 합법적으로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겨우 돈을 벌기 시작해도 일방적인 통보로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규칙을 어기지 않는 한 탈출이 불가능한 미로’에 갇힌다는 비유가 상당히 적절하다.

 

영화는 만화적인 연출과 경쾌한 톤의 음악을 통해 의도적으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이민자의 현실을 바라본다. 그들은 영원히 반복되는 계단식 미로에 갇혀, 당장이라도 지낼 곳이 없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법률 사무소에서 풍선 바람이 빠지듯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만화의 한 컷 같지만 실재하는 현실이다.

 

그는 대부분이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회에서 주어진 시간 내에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은 차별적인 대우와 숱한 모멸적인 순간들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꿈을 위해, 삶을 위해, 간절히 바라는 것을 위해 쉽게 떠날 수는 없다.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렇다. 결국에는 아무 성과도 없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고 해도, 많은 것을 포기하고 굳은 결심을 품은 채 먼 길을 떠나온 지금은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이렇듯 영화는 이민자의 끝없는 불안감과,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두려움을 고스란히 담는다. 그런데 사실 프라블러미스타가 특별해지는 지점은 따로 있다. 이민자로서의 고난을 껴안고 살아가는 알레한드로와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엘리자베스의 내적 고통을 겹치는 순간, 영화는 남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민자와 추방된 예술가라는 각각의 틀을 넘어, 현실적인 길을 택하지 않고 도달하기 어려운 꿈에 몰두하는 ‘이상주의자의 내적 혼란’으로 감정의 범위를 합일한다. 그리고 이내 그 감정에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현실적인 가능성을 배제한 채,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향해 공상하기 바쁜 이들은 종종 이런 참견을 듣곤 할 것이다. ‘너무 멀리 있는 꿈 아니냐, 더 쉬운 길이 있지 않겠냐,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게 낫지 않겠냐’. 주변 사람들에게 수없이 듣게 되는 조언인 동시에, 자신에게 던지는 자조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문제인 것 아닐까, 내 팔자는 내가 꼬고 있는 것 아닐까, 이제는 정말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것 아닐까’.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던지는 공격적인 질문에서도 이와 같은 내적 갈등을 엿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는 알레한드로에게 캐묻는다. -다른 나라들 다 제치고 경쟁이 가장 심한 뉴욕에 제 발로 찾아온 이유가 뭐냐고. 눈을 조금만 낮추면 되는데 왜 그러지 못하냐고. 의사나 소프트웨어 디자이너처럼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직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장난감 디자이너를 꿈꾼 네가 문제라고.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뤄질 거라는 헛된 희망을 갖고 너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낸 건 바로 너라고.-

 

이에 맞서 알레한드로가 엘리자베스에게 따진다. -당신은 뛰어난 예술 비평가이자 상류층 여성이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 도피한 사람일 뿐이라고. 예술계에서 쫓겨난 별 볼 일 없는 나르시시스트일 뿐이라고. 남편을 얼릴 돈마저 부족하지만 자존심만 세서 유명 미술관이 아니면 전시를 하지 않겠다는 고집불통일 뿐이라고. 아직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작품들로 대단한 전시를 열 수 있다고 믿는 공상가일 뿐이라고.-

 

상대를 향한, 어쩌면 자기 자신을 향한 두 사람의 넋두리 속에 숨겨진 진심을 읽는다. 그들에게는 아무리 포기하려고 애써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것.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기에 조금 더 쉬운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상 좇기를 멈추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혐오와, 자조적인 말들과, 내적 갈등을 끝없이 반복하게 된다고 해도 꿈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내달려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꿈과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것만이 알레한드로와 엘리자베스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게 솔직한 마음을 모두 쏟아낸 후의 행보는 정해져 있다. 각자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위해 각자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그러니까 전시회를 열고, 비자 스폰서를 얻고, 삶을 이어 가는 것이다. 만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더라도, 그것을 좇아 한 계단씩 오르는 것이 내가 숨 쉬며 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면 하는 수밖에 없다. 기운이 다 빠지고 쇠하게 된 언젠가는 결국 포기하게 된다고 해도, 지금 당장 견딜 수 있다면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알레한드로처럼, ‘누군가에게 답을 바라기만 하면 나아지는 게 없다’며 동기를 부여하는 엘리자베스처럼. 자신을 굳게 믿으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면서, 부당한 것에는 용감하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산더미 같은 과업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꿈에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는 모든 이상주의자들을 응원하는 영화다.

 

 

 

마음을 가다듬고, 두려움을 딛고, 위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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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라면 굳이 선택하지 마.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무심한 사람들은 그런 선택지를 제시할 거야.

 

좌우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위로 갈 거라고 해.

 

넌 네가 지켜. 그리고 명심해.

 

세상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야. '모 아니면 모(Everything or Everything)'지.

 

 

엘리자베스가 알레한드로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의 내용이다. 여기에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네 모든 것을 걸고 너의 길을 가라는 것’. 결국 세계 제일의 장난감 디자이너가 된 알레한드로와, 보비를 따라 자신의 몸을 얼린 엘리자베스가 다 함께 322년 후의 미래에서 깨어나는 행복한 결말처럼, 감히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보라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프라블러미스타’는 이 세상의 모든 프라블러미스타들에게 바치는 영화다. 삶에는 저마다의 방식이 있으니,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도 꿈을 위해서라면 문제를 일으키고 또 일으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좌우 중에 선택하라고 해도, 위로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성원이 미덥게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동굴 앞에 선 어린 알레한드로의 뒷모습을 기억하며 한마디 덧붙인다.

 

꿈을 향해 가는 길에 위험한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동굴이 있다고 치자. 동굴 앞에 서면 두렵고 무서운 기분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그럴 땐 심호흡을 크게 내뱉고, 마음을 가다듬고, 두려움을 딛고, 괴물들을 어여쁘게 바라보자.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꿈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과감하게 한 발을 내디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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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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