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는 교육 과정을 통해 역사를 접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한국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며 역사를 공부했다. 돌이켜보면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대개 연표를 펼쳐 놓고 시간순으로 큼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맥락을 이해하거나, 왕이나 과학 발전의 역사에 기여한 과학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장군처럼 역사 속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을 기억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역사의 양은 방대하고, 건조하게 서술된 사건들과 연도로 표기된 숫자들은 반복하지 않으면 쉽게 잊히기 마련이었다. 이처럼 내가 태어난 한국과, 인접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르는데, 먼 서양의 역사에까지 손이 가지 않는 현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이런 사람들에게 박신영의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서양사에 접근하는 데 있어 보다 쉽고 재미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 책이 제안하는 방법은 바로 안데르센 동화나 그림 형제 동화 같은 세계 명작 동화를 활용하는 것이다. 저자는 2013년, 이 책의 초판 출간 이후 “왜 문학이나 명작동화, 설화 등 이야기의 배경을 놓고 역사를 쓰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역사와 이야기는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라틴어로 역사와 이야기는 둘 다 ‘히스토리아(Historia)’ 라고 부릅니다.”라고 답했다.
저자는 동화 속에 질문을 던진다.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피리 부는 사나이는 어디로 간 걸까’, ‘플랜더스의 개는 어느 나라 개일까’ 등. 어린 시절 한 번쯤 읽어본 익숙한 작품들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배경이나 설정에 신선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역사 속에서 발견해 해설한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세계사의 악당, 조연, 그리고 마녀’, 2부 ‘잘난 영웅, 억울한 영웅, 이상한 영웅’, 3부 ‘욕망이라는 이름의 역사’, 4부 ‘역사는 비슷한 운율로 반복된다’로 나뉜다. 저자는 고대나 중세 유럽의 민담이나 설화에서 비롯된 여러 동화들의 역사적 배경을 짚으며, 늘 나쁜 짓을 일삼는 캐릭터들에 대한 오해를 풀기도 하고, 현대에 맞게 이야기를 재해석한다. 또 역사 기록으로는 온전히 남기 어려운 당대 서민들의 생각과 생활을 동화를 통해 더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특히 1부의 ‘왜 숲 속에서 길을 잃으면 괴물과 마주치게 될까’가 기억에 남는다. 명작 동화에서 숲은 흔한 배경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숲 한가운데에서 잠들고, 헨젤과 그레텔은 계모에 의해 숲에 버려진 뒤 뿌려놓은 빵 조각을 따라서 또는 달빛에 의존해 어두컴컴한 숲속을 빠져나온다고도 한다. 빨간 모자 역시 심부름을 하기 위해 숲을 가로지른다.
유럽 고대사에서 숲은 다름 아닌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헨젤과 그레텔』은 실제 독일어로 ‘검은 숲(Schwarzwald)’이란 이름이 붙은 독일의 ‘슈바르츠발트’ 숲을 배경으로 한다. 당대 로마인들은 그곳에서 그들의 적이자 사나운 야만족이라고 여기던 게르만족을 만날까 두려워했으며, 이를 막기 위해 게르마니아 방벽을 쌓았다고도 한다. 그리고 이 검은 숲에 대한 경계심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도 남아 숲은 위험하고 불길한 장소로 여겨졌다.
고대와 중세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도 흥미롭다. 오래 전 사람들은 세상을 소우주와 대우주 두 개의 우주로 나누어 보았다. 안전한 집 안이나 마을이 소우주로 여겼고, 그 바깥은 신과 초월적 존재, 악마가 인간에게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대우주라고 생각했다. 숲도 그들에겐 대우주였으며, 소우주에 균열을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숲으로 내쫓기도 했다. 저자는 동화 속에서 숲에 살며 아이들을 잡아먹거나 악행을 일삼는 마녀들은 알고 보면 그저 약초에 대해 잘 알고 이를 잘 다루는 할머니는 아니었을까, 질문을 남긴다.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는 ‘다른 이야기 다른 역사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2권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는 같은 서양사의 심화편으로 이어지고, 이어 3권은 동양사, 4권은 한국사, 5권은 여성사로 시리즈가 이어질 예정이다. 앞으로 이 시리즈가 들려줄 새로운 역사 이야기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