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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겨울의 삿포로는 하얗고 조용하다. 일본이 으레 그렇지만 소복이 눈이 쌓인 삿포로는 특히나 적요하다. 포슬한 눈이 모든 소리를 먹먹하게 만들어버리려는 듯이, 눈을 실은 매서운 바람이 저보다 더 큰 소음은 집어삼켜 버리려는 듯이. 사람들은 소리를 내지 않고 사박사박 눈을 밟으며 거리를 걷는다. 그 하이얀 거리를 걸어들어와 하루를 마무리하려 차를 한 잔 마신다.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지만 쉽사리 써지지는 않는다. 여기서, 이 조용한 곳에서 조용한 글을 쓸 때가 맞는가. 창밖에 흩날리는 눈을 보다가 손바닥 안의 뉴스를 또 들여다본다. 뉴스의 한쪽 면에서는 대통령의 담화가, 다른 쪽 면에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이 발표되었다. 올해의 조국은 왜 이리 어수선하고도 다채로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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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모호해지기 위해서라도


 

이병률 작가의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 나온 삿포로에 대한 유명한 구절이 있다. 함께 삿포로에 가자는 수줍은 마음을 담은 고백이다.

 

 

미끄러지는 거예요. 눈이 내리는 날에만 바깥으로 나가요. 하고 싶은 것들을 묶어두면 안 되겠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절망한 것을 사과할 일도 없으며, 세상 모두가 흰색이니 의심도 서로 없겠죠. 우리가 선명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모호해지기 위해서라도 삿포로는 딱이네요.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왜 좋아한다는 말을 삿포로에 가자는 권유로 대체하였는가. 눈이 가득 쌓이는 이 도시에서는 세상 모두가 흰색이니 사과할 일도 의심할 일도 없다. 그러니 우리 함께 같은 색으로 모호해져 보자는 권유다. 모호하다는 건 지문이 묻은 안경알이나 성에가 낀 유리창같이 무언가 불분명한 회색지대의 느낌을 준다. 어느 한쪽을 고르라는 질문에 선뜻 편을 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어린아이같이.

 

차갑게 언 몸을 온천수 속에 뉜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몸이 공존하는 것은 노천탕만의 특권이다. 너무 뜨거워 숨 막히지 않게, 또 너무 차가워 멈춰버리지 않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미덕이랄까. 어느 한쪽을 고르지 못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머리카락 위로 눈이 흩날리듯 내려온다. 저 거리에는 또 눈이 알음알음 쌓이고 있겠지. 오늘 하루 동안 바삐 움직인 발걸음들은 내일이 되면 하얗게 사라질 것이다. 이 곳은 그런 도시니까. 어제의 실수도, 영광도 내일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삿포로에서는 어떤 선명함도 모호해진다. 또한 어떤 모호함도 특별나게 모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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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갑고도 고요한 도시에서는 그렇기에 자연과 사람이 느슨하게 엮인다. 무엇 하나 형광색으로 튀는 일 없이, 선명해지는 일 없이. 선명해진다는 건 '너'와 '나'를 구분하는 행위이다. 사진의 선명도를 올리는 것도 흐림을 덜어냄으로써 경계선을 강조하는 원리가 아니던가. 경계를 나누는 것은 많은 것을 명료하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피아를 식별하는 시작이 된다. 하지만 모호함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선명히 구별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함께할 뿐이다.

 

 

 

모든 '너'를 '나'로 1인칭화 하는 경험


 

삿포로 바로 근처의 비에이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다. 넓게 펼쳐진 눈 언덕 위에 한 그루 나무만이 우뚝 서 있는 기묘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 언덕 위에는 이 특별한 나무 한 그루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많다. 그 날은 정말로 심한 눈보라가 쳤다. 사진을 연신 찍어대던 사람들마저 카메라를 거두고 몸을 움추릴 만큼. 사진을 찍더라도 나무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특별한 선택지가 없었으리라.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눈보라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 거대한 자연 앞에서 사람들은 강제적으로나마 하나가 되었다. 눈을 뜰 수 없는 강풍에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지라도 이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음은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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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는 이 같은 순간을 '일인칭의 관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처마 밑에서 다 함께 비를 피했던 경험을 시작으로 한마디 한마디 천천히 말을 이어가는 한강 작가의 수상소감은 눈이 소복이 쌓이는 소리처럼 정갈하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길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수많은 일인칭의 관점들은 경험한 것은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문학을 읽고 쓰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와 반대에 서있다.

 

- 노벨문학상 수상소감, 한강 작가

 

 

한강 작가가 말하는 '너를 나로 인식하는 것'이란 너와 나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모호함의 과정이다. 그 모호함은 폭력의 반대편에, 그리고 문학과 같은 편에 서 있다. '너'가 또 다른 '나'라면 우리는 폭력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을 넘은 동일시. 타자이기에 가능했던 수많은 몰이해의 탈을 쓴 폭력은 그 경계를 허묾으로써 눈 녹듯 사라지고 만다.

 

또다시 눈이 내리는 삿포로의 어느 밤. 폭력의 반대에 서 있는 모든 문학과 모호함과 너와 나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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