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열정적인 축제 그 속으로 -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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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란도트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가 카를로 고치의 희곡을 바탕으로 작곡한 3막 오페라이다. 작곡 도중 푸치니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았으나, 프란코 알파노가 그 뒤를 대신 완성하며 푸치니의 죽음 2년 뒤인 1926년에 초연이 이루어진다. 중국의 황궁을 배경으로 하는 투란도트는 실제 고대 중국을 역사적으로 고증했다기보다는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동양 판타지에 가깝다. 따라서 다양한 국가의 문화가 통합된 형태로 나타나며, 동양에 대한 이상적인 오리엔탈리즘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극의 주인공인 투란도트는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냉철하고 자비가 없는 공주이다. 그녀는 결혼할 상대에 대하여 공개적인 조건으로 수수께끼 3개를 내걸고, 이에 응한 많은 왕자가 찾아와 그녀에게 도전한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를 해결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선조의 복수를 위해 이국의 왕자들을 모두 죽음에 몰아가는 투란도트는 이후 망국 타타르의 왕자인 칼라프를 만난다.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칼라프는 3개의 문제를 모두 통과하며 죽음과 사랑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결국 투란도트의 사랑을 쟁취하고 만다. 다가오는 상대의 목숨을 모조리 앗아가는 투란도트는 자칫하면 악역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고전적이면서도 전통적인 사랑이라는 결말으로 향하며 투란도트와 칼라프의 결혼을 위한 극적인 장치로 작용한다.
지난 2024년 10월 12일부터 19일까지 자코모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의 투란도트 디 오리지널 공연팀의 첫 내한 공연이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펼쳐졌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수교 140주년을 맞아 100년만의 외출을 한 오리지널 팀의 소식으로 공연의 시작 전부터 많은 마니아층의 기대를 모았다.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투란도트 오리지널 오페라를 볼 수 있다는 흔치 않은 기회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올림픽 체조 경기장은 지하 1층과 지상 3층을 포함하여 15,000여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원형경기장이다. 그 큰 공간을 가득 메울 무대 장치와 오페라의 웅장한 음향 효과를 기대하며 아리아가 들려올 올림픽 체조 경기장으로 향했다.
화려함에 압도되는 무대
입장한 직후 보이는 무대는 굉장히 평면적이고 직관적이었다. 긴 직사각형 모양의 무대에 중국의 군중 역할을 맡은 수많은 무용 단원이 등장했고, 안무를 선보이며 오페라의 시작을 알렸다. 어떤 대사나 음악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침없는 모션이 겹쳐지며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집중하게끔 만들었다.
1막이 시작되고,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한 페르시아 왕자의 참수형 명령을 내리기 위해 투란도트가 성에서 등장한다. 무대의 끝에 설치된 고층의 건축물에서 얼굴을 내비친 투란도트는 제한된 무대에서 자신의 권위를 최대치로 과시하며 등장했다. 마치 그 모습을 보고 반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듯한 당연한 자세였다. 비록 1막에 등장하는 시간이 매우 적지만, 짧은 순간 속 강렬한 기세와 위치적인 대립감이 더해져 칼라프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순식간에 매료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2막이 시작되고, 무대의 배경은 중국의 황궁으로 옮겨진다. 낮고 평면적인 목재 구조로 평민들의 투박하고 비루함을 상징했던 1막의 무대와 달리, 무대의 뒤편이 열리며 금빛으로 가득한 2막의 본 무대가 공개되었다. 황금빛이 쏟아져 내림과 동시에 주위에서 경탄 섞인 관객의 탄식이 들려왔다. 중국의 호화로운 왕실을 표현한 본 무대는 마치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환상이 최대치로 부풀려진 모습이었다. 현실에 존재하는 황궁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낙원에 존재하는 이상향 그 자체를 그려낸 듯했다. 끝을 알 수 없는 높은 천정과 층마다 높아지는 단차는 쉽게 황제에게 닿을 수 없는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는 듯했다.
의상의 조화와 시선의 분산
끝없이 화려하게 치장된 무대 속에서 주인공 투란도트는 누구보다 눈부신 옷차림으로 등장했다. 자태만으로도 위엄이 느껴지는 의상은 조명을 받아 찬란하게 빛을 냈고, 주인공의 동선에 따라 이목이 집중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과시적인 드레스는 투란도트에 도전하는 칼라프와 대조되며 도드라졌다. 망국의 왕자인 칼라프는 광택이 돌지 않으며 채도가 낮은 의상을 통해 상대적으로 수수한 느낌을 주었다. 이는 공주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수많은 도전자 중 한 명에 불과한 그의 위치를 은연중에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1막에 등장하는 티무르 왕과 시종 류의 옷차림은 군중과 별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티무르 왕과 류의 첫 등장에서는 누가 주요한 인물인지 군중들 사이에서 구분되지 않았는데, 일반 평민의 옷차림과 차이가 적은 투박한 옷을 통해 망명길에 오르게 된 그들의 처지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 왕실의 대신인 핑, 퐁, 팡은 중간 관리자의 역할을 의미하듯 색감이 명료한 의상을 착용했다. 원색적이고 단순한 색채인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을 통해 누구보다 이성적이어야만 하는 그들의 위치를 반영한다. 투란도트의 수수께끼에 의한 여러 부수적인 일로 지친 핑, 퐁, 팡은 낭만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수다스러운 감초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며 재미를 더했다.
다 함께 즐기는 오페라
3막의 시작되고, 곧이어 투란도트의 수수께끼를 모두 맞춘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인 Nessun dorma가 들려왔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 혹은 공주는 잠 못 이루고로 잘 알려진 Nessun dorma는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오페라 중 하나로, 투란도트와의 결혼을 앞둔 칼라프가 자신의 승리에 확신하며 부르는 곡이다.
유명한 테너들의 애창곡이자, 다양한 영화와 광고에서 사용되며 일반인들의 장벽을 허문 곡이 시작되자 거대한 공간이 적막함으로 가라앉았다. 이 아리아만을 위해 방문한 사람조차 기대를 단번에 충족시킬 완벽한 무대였고, 곡이 끝나자 사방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쉽게 끝나지 않는 박수갈채가 드디어 저물어 들자, 지휘자는 앵콜 사인을 보내며 Nessun dorma를 관객이 다시 즐기도록 유도했다. 덕분에 투란도트 오리지널 배우의 아리아를 한번 더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관객의 니즈를 알아차리고 같이 호흡하는 지휘자의 배려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후 오페라가 막을 내린 뒤 커튼콜에서 관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쉽사리 호응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일어서 환호하며 열정을 보이는 관객도 있었다. 놀랍게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인물은 류 역할을 맡은 배우였다. 사랑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던지는 그녀의 헌신에 많은 사람이 아낌없는 동정과 연민의 박수를 보냈다.
서로 다른 위치에 존재하는 배우와 무용 단원, 오케스트라 그리고 관객은 같이 호흡하고 서로의 반응에 상호작용을 하며 하나의 오페라를 이루었다. 무대 아래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오페라의 배경을 형성하고 분위기를 주도하며 무대 위에서는 수많은 배우와 단원들이 오페라의 이야기를 이끄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복합 예술의 경지라고 여겨진 첫 오페라의 관람은 하나의 정열적인 축제처럼 다가왔다.
사실 투란도트 오페라의 관람을 앞두고 우려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이다. 첫 공연의 미흡한 대처로 많은 관객으로부터 여러 평가가 나왔고, 올림픽 체조경기장 역시 오페라를 선보이기에 앞서 음향에 최적화된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영진들의 신속한 대처와 적극적인 조치로 이후 직접 오페라를 관람할 때 방해 요소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완벽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화려하고 웅장한 오리지널의 무대 구성을 최대한 옮기는 것에 초점을 두어 선정한 장소라고 생각하니 전체적인 무대를 감상한 후 흡족하게 만족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의 무대를 직접 감상했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미지의 세계로 남았던 오페라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주어짐에 감사를 표한다.
[조유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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