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ADHD - CAT 검사라니 고양이 검사인건가요? 멋지네요! #2

2N살의 ADHD 검사 기록
글 입력 2024.10.2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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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검사 전에는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했다. 몇 개는 '이것이 내가 얼마나 충동적인지 알기 위한 질문이구나' 싶을 정도로 뻔한 것도 있었고, 몇 개는 '이건 왜 묻는거지' 싶은 것들도 있었다. 하지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내가 쉽게 쉽게 대답할만한 것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나의 단점의 대부분이 설문지에서 적혀있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뒷심이 부족한 편이어서 무언가에 꽂히면 그걸 하자고 금방 뛰어들고, 심지어 그것의 제일 어려운 부분까지 해내지만 막상 가장 간단한 뒷처리를 하기에는 귀찮아한다.  '이미 제일 어려운 부분까지 감을 잡았는데 마무리까지 볼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어 어떻게든 그것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에서 '아깝다'는 말을 해도 나는 굳이 그것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설문지에는 이런 나의 글러먹음을 너무나도 잘 아는 듯이 아래의 질문이 포함되어있다.

 

1. 어떤 일의 어려운 부분까지 끝내 놓고 그 일을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지

 

검사지가 아니라 길거리에서 사이비 종교가 나눠주는 설문지인건 아닌가 싶었다. 왜, 그런 설문지도 듣다 보면, 그리고 보다 보면 '어 이거 내 이야기 같은데 어떻게 알았지?' 싶지 않은가.

 

그리고 이 질문을 보며, 솔직히 말하자면, MBTI 검사와도 흡사한 면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재미있는 부분 (혹은 체험해보고 싶었던 부분)이 지나면 귀찮은 일은 하기 싫어하지 않은가. 질린다는 것, 귀찮아진다는 것은 보통 다 그런 거다. 그런데 마치 '사람을 만나서 노는 것을 선호합니까?' 라고 물어봐놓고,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럼 당신은 외향적이군요!' 라고 대답하는 MBTI와 이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지, 진심으로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는 뇌파/맥파검사와 CAT 검사를 했다. 뇌파검사는 마치 SF 영화에서 볼 법한 기기를 착용하고 세 번 반복하여 깊게 숨을 쉬면 되는 간단한 검사였다. CAT도 마찬가지로 여러개의 쉬운 검사들로 이루어진 간단한 검사이었다. 어떻게 보면 어릴 적에 순발력을 기르겠다고 기획해놓은 모 플랫폼 어린이 플래시 게임과 비슷했다.

 

나는 이름이 'CAT'라는 사실이 재미있어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검사라고 내심 신나했고, 처음부터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귀찮다고 그냥 시작해버렸다. 덕분에 뒤늦게 검사를 하는 내내 '설마 고작 이런 실수로 내 돈이 증발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내심 했다. 그 와중에 하나 하나의 검사가 끝날 때마다 들리는 알람음이 정말 플래시게임의 효과음과 비슷할 정도로 경쾌해서 작게 웃음이 터졌으며, 뒤에 있던 검사원에게 '이렇게 하는거 맞나요'라고 물어봐도 그 검사원은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해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다.

 

검사가 너무도 반복적이면서도 지루한 나머지 중간에는 생각이 딴 길로 새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설마 이 실수들로 오진이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불안해하기도 했다.

 

*

 

검사가 끝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4년 동안 같은 병으로 줄기차게 드나들었던 진료실에 또다른 병을 진단받으러 들어가게 되자 새삼스럽게 떨리고 민망했다. 의사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나를 맞이해주셨고,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오늘 집중도는 어땠던 것 같아요?"

"그냥...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요"

"충분히 잘 집중한 것 같아요?"

"어... 글쎄요..."

"본인은 본인이 충분히 능력을 잘 발휘해서 잘 집중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오늘 정도면 나름 잘한 것 같은데..."

"평소와 비교했을 때는 어때요?"

"평소요...? 음..."

 

의사 선생님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집중도에 대해' 꾸준하게 물어봤지만, 나는 솔직히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귀찮다고 규칙도 잘 안읽었다가 헷갈려 하기도 했고, 중간에는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까. 즉 내가 대충 읽고 넘기지 않고 조금 더 꼼꼼하게 읽었거나, 더 딴생각을 안하려고 노력했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이야기 하기에는 평소에 비해서는 정말 잘 집중한 편이었으니, 이것은 과연 집중을 잘 한 것일까 아닌 것일까 계속 헷갈렸다.

 

내가 시원찮은 대답을 내놓자 의사선생님은 질문을 바꿨고, 나는 내가 아는 한에서는 성실하게 대답했다. 예를 들어 내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창시절의 생활기록부를 가져오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자 그럼 본인이 기억나는 한 자신의 어린 시절은 어땠던 것 같은지를 물었다.

 

나는 어릴 적의 특징 같은 것들로 나 스스로가 ADHD가 의심 되는 이유들을 말했다. 어릴 적에 금방 질려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시끄러웠으며, 말이 많고 빨랐다고. 금방 신나했고, 변덕스러웠다고. 의사선생님은 '그것이 타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 말인지' 확인하며 종이에 적어내렸고, 결론적으로 아래와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오늘 집중도를 잘 발휘했다는 가정 하에, 그리고 본인의 말만 들어서는 잘 모르지만 어릴 적에 정말 이랬다는 가정 하에, 그리고 현재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아이큐에 이상이 없다는 가정 하에, 오늘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어서 다른 방해 요소가 없다는 가정 하에, 그리고 그 외의 다른 특이사항도 없다는 가정 하에, 이 결과라면 환자분은 ADHD일 가능성이 있어요."


그 외에도 현재 내 우울증이 굉장히 만성적이라 모든 뇌파맥파검사가 전체적으로 약간씩 안좋지만 크게 기복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잘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로 인해 평소 긴장도는 어떻게 유지되는지, 어떤 특징들을 보였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상세하게 설명해주신 뒤 선생님은 질문하셨다.

 

"자, 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어떤 것 같으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점집에 와서 무당이랑 이야기 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능청맞게 농담을 하기에는 지금까지 내가 선생님께 보였던, 울고 슬퍼하고 죽고싶어했던 지난 4년간의 정체성과는 꽤나 안맞는 것 같아 '맞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는 말로 대체하여 대답한 뒤 진료를 종료했다.

 

*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미친듯이 ADHD에 관해서 검색하고 나의 검사 결과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했다.

 

처음 ADHD 검사를 받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성인 ADHD 진단을 받는다면 마음이 후련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우선,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까웠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이다.

 

그 이후에는 선생님께서 그렇게 계속 상황을 가정하여 결과를 내놓은 이유도 궁금했다. 'ADHD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부분도 마음에 걸렸다. 요즘 ADHD 허위 환자가 많다는데 혹시 그런 것으로 의심하신 것일까 싶어 슬픈 마음이 들었고, '내가 검사를 조금 더 꼼꼼히 했어야 했나' 싶어서 암울해지기도 했다.

 

동시에 '그럼 나는 내 단점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다 이것 때문이었나' 싶었다.  만약 이것이 병의 결과라면, 내 진짜 단점은 무엇인가. 이 약을 먹으면 뒷심이 생기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때 숨겨져있던 나의 다른 단점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가. 하지만 그건 너무 말도 안되지 않은가.

 

머릿속이 혼란스럽자 '이런 진단 하나 받았다고 또 바로 내 단점을 다른 것으로 핑계 삼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났고, 그런 나 스스로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의사 선생님은 '전부 ADHD 때문인가 따지다보면 끝도 없으니 그렇게 일일히 생각하지 말아라'라고 이야기했다. 아마 그 말에는 다른 의미가 내포해있었을 수도 있으나,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나에게는 이런 나의 글러먹음을 마치 알고 있으니 핑계대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았다. 정곡을 찔린 느낌이에 다시금 스스로의 진단 결과를 의심하게 되었다.

 

결국 이 모든 생각의 꼬리 끝에 나는 'ADHD가 맞든 아니든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해졌기에 잘 하면 책을 낼 수도 있겠지' 하는 흔히 말하는 '원영적 사고'로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어쨌든 약은 타왔고 이렇게 복잡하게 고민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의 일상 루틴에는 아침약 하루 한 알이 추가되었다. 그 한 알의 약이 내 하루하루를 새롭게 갱신시킬줄은 꿈에도 모른 채.

 

 

[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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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치미
    • 너무 공감하면서 재밌게 읽었어요. 다음편 너무 기다려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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