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 로트렉이라는 이름이 내게 처음으로 인상을 준 순간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침대에서>(1893)라는 작품을 보았을 때이다. 마음에 들어 엽서를 사 왔기 때문에 이 그림은 지금도 내 방을 장식하고 있다. 이 그림 때문에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가 우리나라에서 열렸을 때 고민 없이 전시를 보기로 했고, 또 그 그림 때문에 예상 외의 정보를 마주하기도 했다.
이제껏 침대에서 잠든 두 소년의 그림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조금 찾아보았더니 서로를 바라보는 두 여자란다. 신체장애를 가져 어느 한구석에서는 항상 소수자여야 했던 로트렉은 다른 소수자에게도 많은 애정을 가진다. 그 소수자에는 <침대에서>의 작품 속 두 여자처럼 동성애자도 포함되고, 그의 작품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등장인물, 매춘부 또한 그 대상이리라.
내년 봄까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되는 <툴루즈 로트렉: 몽마르트의 별>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되며 보헤미안, 휴머니스트, 몽마르트의 별, 프랑스 아르누보 포스터의 순서로 진행된다. 대상화되기만 했던 매춘부의 일상을 담은 것이 로트렉의 특징이다. 한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술집 여자’에 불과했던 그들을 사람으로 그려냈다는 데서 의의가 있다.
내가 처음 본 그의 작품이 침대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인지 이번에 전시를 관람하면서도 침대에서 편안한 모습을 취하는 인물의 그림 몇이 기억에 남았다. 침대 위의 매춘부 그림이라고 하면 흔한 춘화집처럼 외설적인 모습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그의 그림 속에서는 그저 평화롭다. ‘침대 위’라는 공간적 배경은 같지만 침대 위 ‘매춘부’에서 침대 위 ‘사람’으로서 그들을 다시 볼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의 역할.
이처럼 침대 위 그들의 새로운 모습을(실은 지극히 당연한 모습을) 포착한 것은 의의가 있지만, 정작 로트렉도 매춘의 고객이었던 마당에 그 작품들에 과연 성적인 시선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 그리고 정말 담백하게 그려진 작품일지라도 결국 다른 남성 고객들에게로 돌아가 성적으로 소비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일상까지도 훼손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1부부터 3부까지는 로트렉의 작품으로 채웠지만, 마지막 4부에는 로트렉이 아닌 프랑스 아르누보 예술가들의 작품이 모여 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쥘 세레와 알폰스 무하를 포함해 13명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다양한 작품이 한데 모이면 눈과 마음이 더 즐거운 것은 당연하고, 서로의 차이를 알 수 있어 유익하다.
로트렉의 작품만 볼 때는 큐레이션에서 그의 특징을 아무리 서술해도 와닿지 않았는데, 아르누보 석판화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지만 결국 제각각의 매력을 가진 다른 작가의 작품까지 보고 나니 로트렉 고유의 영향력이 무엇인지 더 잘 보였다.
4부가 전시의 마지막 부분이지만, 그 이후에도 조금 더 준비된 것이 있다. 전시장을 나서기 전, 왼쪽 벽면에서는 유럽 사회사 및 문화사, 유럽 미술사,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의 삶, 이 세 시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연대표를 볼 수 있다. 그 반대편에는 벨 에포크, 자포니즘, 석판술, 아르누보에 관해 더 자세히 설명한다.
전시의 사전 정보가 되어주면 좋을 듯한 이 자료들을 왜 전시의 초반이 아니라 후반에 자리한 것인지 궁금했지만, 나 자신을 예시로 생각해 보니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구역의 설명을 모두 꼼꼼히 읽어보고 나갔는데, 사실 그것은 내가 전시를 보며 이 장르에 관한 관심과 호기심이 최대치로 올라간 상태였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이 부분이 전시의 입구에 구성되어 있었다면 성의 없이 훑고 넘어갔으리라 확신한다. 처음에는 그냥 남은 공간을 처리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관람객을 꿰뚫고 있던 구성이다.
구성 외에도 여러 부분에서 관람자를 배려한 전시라는 것이 느껴졌다. 도슨트와 오디오 가이드는 물론이고, 주요 작품은 옆에 큐레이션을 적어두었다. 큐레이션은 흔한 요소지만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등장인물 관한 설명이다. 로트렉의 작품에는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당대의 스타 연예인이라거나 그와 친분이 있는 관련 종사자 등이 그 주인공이다. 큐레이션은 그들을 단순히 유명 가수, 카바레 주인 등으로 설명하는 대신 어떤 시그니처를 가진, 또는 어떤 성향이 돋보이는 인물로 이야기한다. 덕분에 나도 그림 속에 남은 과거의 인물을 평면적으로 소비하기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 담긴 그림을 더 생생하게 즐길 수 있었다.
소비 대상을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데서 로트렉의 작품과 이 전시의 힘이 겹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