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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스포일러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글입니다.
들어가며
[체인소 맨]의 작가로 유명한 후지모토 타츠키. 그는 2021년, 단편 만화 하나를 내놓는다. 그 단편은 발표와 동시에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영화화까지 결정되어 2024년이 된 현재, 다시금 우리들에게 찾아왔다. 그 주인공은 만화이자 영화 [룩백]이다.
영화판 [룩백]의 열기도 만화판 못지않다. 저번 달 초에 개봉한 작품이지만 아직도 절찬리 상영 중인 것과 동시에 관련 이벤트도 활발히 열리며 한•일 양국 박스오피스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좀체 사그라지지 않는 [룩백] 열풍. 그 이유가 되는 [룩백]만의 개성을 본 오피니언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룩백]은 만화를 통해 맺어진 두 친구. 후지노와 쿄모토의 관계성을 조망하며 서사가 진행된다. 그들의 첫 만남, 함께 성취하고 놀며 나눈 즐거운 추억. 그리고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 애틋하고 간질간질한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를 즐길 수 있다.
등을 맞닿은 두 친구의 우정 이야기로 생각하고 [룩백]을 관람해도 영화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을 즐기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은가. 필자는 본인의 세계를 영화의 서사와 연관 지으며 관람했고 이러한 사유의 과정 속에서 느낀 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매너리즘엔? [룩백]! -약 광고 아님-
당연한 말이겠지만, [룩백]은 창작자가 창작해낸, 창작하는 과정을 다룬 창작물이다. 같은 단어가 네 번이나 들어가서 가독성이 떨어지겠지만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룩백]을 관람할 때 도움이 되는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모든 창작물은 타인의 세계에 맞닿아야지만 비로소 가치를 지니게 된다. 본인이 만든 글, 그림, 영상, 이외의 다양한 결과물들. 그것들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당연히 얼굴 붉어지고 가슴 졸여지는 행위다. 그러나 창작자들은 이런 불안들을 기꺼이 감수하며 타인의 평가를 기다리는 존재다.
창작을 해내는 과정이 고될수록, 창작물을 접한 수용자의 인정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다. 이는 단순한 감정 변화를 넘어 창작이라는 행위가 존재하는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에서 수반되는 고통과 희열.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난해한 감정이지만 [룩백]은 이를 어린 아이의 솔직한 행동으로 순수하게 담아내었다. 나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닿았을 때의 긴장감. 그리고 이러한 연결로 인해 발생하는 인연과 삶의 경로. 이 정도의 스파크면 삶의 목적으로 삼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극의 두 주인공 후지노와 쿄모토도 만화를 통해 맺어졌고 서로 등을 기대며 목표를 향해 정진한다. 그 우정의 매개체가 창작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각별함은 어떤 관계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진득할 것이다.
당신이 무언가를 고뇌해 빚어내는 창작자라면, [룩백]에 과하게 몰입할 수도 있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보여주었던 순간과 반응을 또렷하게 기억하지 않는가. 삶에 치이고 현실에 가로막힌 기분이 들 때. [룩백]은 당신의 꺼져가는 창작혼에 스파크를 일으키는 부싯돌이 되어줄 것이다. 그래서 [룩백]은 내게 소중했고, 당신에게도 소중할 것이라 감히 예측해 본다.
영화의 새로운 방향인가 혹은 한계인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스포츠와 영화. 펜데믹 시절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은 두 시장이 있다. 펜데믹이 종료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두 시장은 예전의 위상을 다시 되찾는데 성공했을까?
성적표는 극명하게 갈렸다. 스포츠는 웃었고 영화는 울었다. ‘야구의 경쟁자는 축구가 아닌 영화다.’라는 말을 했던 허구연 총재의 발언처럼 야구는 축구와 동반하여 급격한 성장을 이뤘고 대한극장의 폐업으로 대표되는 영화의 침체는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
영화계 내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OTT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하여 플랫폼간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가 눈에 띄기도 했으니까.
그럼에도 갈 길이 멀다. 시장이 부흥하기 위해서는 충성심 강한 소비자와 더불어 합리적 소비를 하는 소비자까지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 원에 세 시간 동안 흥미진진한 경험을 누릴 수 있는 야구와 달리, 영화는 그보다 비싼 티켓 가격에 그보다 적은 시간의 컨텐츠를 제공하기에 스포츠에 비해 후순위로 밀리는 현실에 처해있다.
쉬운 말로 하자면,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영화 시장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런 이유 따위 소비자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문화 소비자 입장에서는 최소 지불로 최대 즐거움을 얻고자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행동 법칙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57분의 러닝타임으로 흥행에 성공한 [룩백]에서 영화 시장 부흥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성공하긴 커녕 오히려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짧은 러닝타임을 지닌 영화가 성공한 것은 좋았으나, 티켓의 가격은 긴 러닝타임을 보유한 영화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다양한 형식과 상영 시간을 지닌 영화를 그에 맞는 가격으로 제공해 계산적인 소비자를 끌어 모은다…. 라는 필자 나름의 해결책을 부질없는 망상으로 만들었다. 물론, 필자가 알지 못하는 영화 업계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화를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영화 시장의 침체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장이 흥해야 제작에 자본이 투자되어 다양하고 훌륭한 영화를 맛 볼 수 있으니까. 여러모로 아쉽지만 영화 산업의 부흥을 위해 힘쓰는 관계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마무리 하고자한다. 뜬금없는 결론이지만 필자가 해줄 수 있는 건 응원과 관람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