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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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엔 왠지 모르게 차분하게 세상을 돌이켜보게 된다. 따라서 장마가 오는 기간에는 한동안 사색하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도, 장마가 왔다.
윤흥길의 <장마>를 좋아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는 멈추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전쟁으로 인한 '나'의 가족이 겪는 갈등 또한 어둡고 흐릿하다. 결코 깔끔하고 행복하게 끝나지 않는 결말, 마치 장마의 빗줄기처럼 '나'의 가족들도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전개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 장마 기간이 시작되면서도 나는 내 삶을 성찰하고 있었다. 먼저 내 안의 세상을 마주하며 돌이켜보고, 그 다음엔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내 밖의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유독 이번엔 스스로의 성찰을 빨리 끝냈다. 장마가 오기 전부터 발생했던 내 안의 소용돌이를 일찍이부터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정작 소용돌이는 내 밖의 세상에서 발생했다.
<장마>는 삼촌의 죽음이 매개체가 되어 시작하는 이야기다. 죽음만큼 장마같이 어둡고 빗줄기가 내리는 것이 있을까. 나 또한 죽음을 주변에서 겪어봤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어둡고 흐릿한지 너무나도 잘 느껴진다. 해마다 소리 소문없이 찾아오는 장마처럼 내 마음에도 떠나버린 사람들에 대하여 흘러내리는 빗줄기가 어느 순간 거세진다.
이 빗줄기가, 한꺼번에 내리게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
며칠 전까지 서울역 근처로 출근했다. 외근을 나가면 을지로입구 근처로 가곤 했고, 버스를 타고 남대문부터 서울의 중앙을 가로질렀던 적도 있었다. 온전하고 평온한 하루들이었다. 사람들은 얼굴에 가지각색의 표정을 띄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만의 알 수 없는 생각을 가지고 길을 걸었다. 그것이 당연했었다. 직장인들이 많은 곳이고, 그렇기에 직장인들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이치였으니까.
왜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
생각해보면, 내가 '평온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에 어긋난다. 휴전 국가에서, 여전히 끊이지 않는 도발을 맞닥뜨리면서, 전쟁이 멈춘지 100년도 안 됐는데, '안전하지 않은 나라'라고 이 나라를 생각한 적이 없다. 치안이 세계적으로 우수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다. 그러면 안됐었다. 언제든지 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주의를 살피며 살았어야 했다.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후,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걷는 길에서 발생한 소중한 생명들의 바스라짐에 빗방울이 빗줄기가 되었고, 장마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하고 눈물을 흘린다. 장마 기간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장마는 언제 그치게 될까. 보통 장마가 8월까지 지속되고 올해는 9월까지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하지만 우리 마음 속에 내리는 장마는 언제 그칠지 모른다. 특히나 남겨진 사람들에게 장마는 아주 깊게, 천천히, 장마를 넘어선 하나의 만성적인 빗줄기로 시작되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 일기 예보를 보니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 당분간 나의 마음에도 장마가 지속될 것 같다.
[윤지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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