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가가 선택한 한 프레임이 우리 삶의 한 컷이 되기까지 - 결정적 그림

글 입력 2024.06.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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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순(瞬), 사이 간(間), 말 그대로 눈을 한번 감았다 뜨는 찰나가 영속성을 가지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 바로 예술이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매분, 매초,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 중 어느 한 프레임이 선택받는 다는 것은 셈을 해보지 않아도 한 줄 짜리 로또가 당첨될 확률보다 희박한 일이다. 그리고 수억 초를 건너 예술가들이 포착한 프레임을 우리 삶의 한 컷으로 끼워넣는 건 굉장히 멋진일임이 틀림없다.

 

영원의 무게감과 순간의 발랄함의 의외의 조합을 생각해봤을 때, 이원율의 <결정적 그림>, 그리고 '영원한 예술로 남은 화가의 순간들' 이라는 부제는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순간은 시간의 흐름 따위는 개의치 않는것인지, 이 책의 챕터는 미술사를 곧이 곧대로 따르지 않는다. 각 챕터의 모멘트와 그것을 포착한 예술가들은 다음과 같다.

 

moment 1 고개 빳빳이 들고 맞선 순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폴 고갱,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oment 2 마음 열어 세상과 마주한 순간: 라파엘로 산치오, 디에고 벨라스케스, 알폰스 무하

 

moment 3 나만의 색깔을 발견한 순간: 제임스 휘슬러, 에드가 드가, 에곤 실레, 르네 마그리트

 

moment 4 내일이 없는 듯 사랑에 빠진 순간: 오귀스트 르누아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마르크 샤갈, 이중섭

 

moment 5 삶이 때론 고통임을 받아들인 순간: 렘브란트 반 레인, 프란시스코 고야, 추사 김정희, 카미유 클로델

 

moment 6 그럼에도, 힘껏 발걸음을 내딛은 순간: 에드바르 뭉크, 툴루즈 로트레크,  프리다 칼로


예술에 문외한이더라도 모를 수가 없는 단골도 있는 한편, 예술계 여담을 다루는 책을 몇 차례 접해본 이들에게는 익숙한 비운의 사나이들,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지금도 같은 시간 다른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 동시대 예술가 등 정말 다양한 군상의 예술가들이 수록되어있다.

 

 

결정적그림_표1_띠지.jpg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유난히도 공부가 하기 싫은 날에 한해 동류의 예술계 야화를 묶어놓은 책을 몇 십분 꺼내보며 키득대곤 했다. 노래를 듣고 쉬이 심연에 빠져드는 것과 달리 그림을 보고 감동을 느끼는 건 좀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미술과의 감정 교류는 미적 관조의 대상이던 작품들 보다는 예술가들과 나누었던 것 같다.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 밥을 먹는 시간, 샤프심을 갈아끼우는 시간 하나 하나 타이머로 재가면서 일생을 조각내던 시절, 답도 없는 인생이라고 한탄하는 순간 정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기구한 인생을 살다간 예술가들의 삶이 큰 위안이 되었다. 그들의 불행을 위안 삼았다는 파렴치한 말은 아니라 말도안되는 불행을 호방하게 넘긴 그들에 대비돼 내가 너무 쪼잔해 보이고, 그래서 너털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작품'보다는 '예술가'에 포커스를 둔 책을 두어권 읽은 적이 있는데, 특별히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이다. 대체로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피카소에 이르면 작별을 고하는 책들과 달리 아직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전사가 돼야 한다.' 라는 말을 그녀가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그녀를 절대 회군하지 않는 강철의 여전사로 인식했을 것이다.

 

리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필립파레노의 <보이스(VOICES)>의 기억이 떠올라서 더욱 인상이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리움 미술관 지하에서는 동료 작가 티노 세갈 (Tino Sehgal)에게 의뢰하여 탄생한 관람객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비물질 미술을 관람할 수 있다. (티노세갈을 인도/독일계 부모 사이에서 1976년에 태어나, 독일에서 자란 아티스트로 2013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이런 진보(This Progree)" 등을 진행한 바 있다.)

 

이는 내가 인지한 첫 행위예술의 체험이었는데 설령 이해를 못했을지언정 가장 짙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이렇게 행위예술에 대한 관심이 촉발된 와중에 행위예술의 대모격인 아브라모비치의 이야기를 알게되었고, 나름대로 행위와 메시지의 알레고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 관심을 이어갈 수 있는 가교가 되었다.

 

언젠가의 나처럼 그림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면, 이 책을 통해 어느 한 인간의 이야기에 먼저 귀기울이면서 농담이나 주고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임지영.jpg

 

 

[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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