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위주로 읽어왔던 나는 문득 요즘 글은 어떤 경향인지, 어떤 문체가 눈에 띄는지 궁금해졌다. 이런 경향성을 모른채 과거의 문학만 보면 과거의 사람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가장 따끈따끈한 문학, 제15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샀다. 총 7편의 소설을 한 달에 걸쳐 야금야금 읽어나갔다. 젊은 작가들의 유려하고 단단한 문체가 가득 담긴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보았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놓쳤던 찰나를 확장하고, 색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며 독자들에게 생각의 변주를 주었다. 단편을 읽은 후 나의 생각과 전문필진의 비평글을 비교하고 심사평을 읽으면서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젊은작가상은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2010년에 제정한 문학상이다. 등단 십 년 이내의 작가 작품 중 중·단편 소설을 심사 대상으로 삼는다. 올해 젊은작가상에 이름을 올린 수상 작가는 김멜라 공현진 김기태 김남숙 김지연 성해나 전지영이다. 출간 이후 1년간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더 많은 독자가 읽을 수 있도록 7,700원 특별보급가로 만날 수 있어 더욱 값지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단편 소설 7편은 “곁”이라는 단어로 엮을 수 있다. 첫 작품 김멜라의 [이응 이응]은 다른 이의 몸과 마음이 곁에 머무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켜켜이 쌓인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사건들을 읊어주는 형식으로 주인공이 “이응”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전개하고 있다. 몸과 마음, 가족과 애인 등으로 사랑을 세분화하던 주인공의 여정은 본인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녀는 차차 "이응"을 받아들이면서 본인을 비롯하여 곁에 머물렀고, 머무를 이들까지 사랑한다. 공현진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곁을 내어주는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을 계기로 주인공은 수영을 배우며 숨을 쉬는 방법을 배운다. 물 속에서 호흡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새로운 세계에서의 발돋움으로 보인다. 그들은 다시 처음부터 진실을 마주하는 법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곁을 내어주며 관계를 맺고 세상을 직시하고 있다.
김기태의 [보편교양], 김남숙의 [파주]는 곁의 진실을 응시한다. 곁에 있는 이의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보편교양]에서 선생님은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고 제자는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자기주도 심화학습까지 한다. 모범적으로 공부하던 그들은 서로 무언의 교류를 느꼈을 것이다. 우연히 제자가 대학 입시를 위한 스토리 컨설팅을 받아왔음을 알게 되면서 분명 통했다고 느끼는 지점들이 어긋난다. 자신도 마르크스론을 읽지 않고 가르친 교사였고 서로 필요로 하는 부분을 보여준 것뿐이었음을 인지한 그는 감정을 묻고 일어선다. [파주]는 함께 사는 남자친구의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주인공 ‘나'의 방황을 그린다. 남자친구에게 복수하러 온 군대후임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어떤 일이었는지 궁금하고 입장이 난처하다. 살고 있던 파주에서 벗어났지만 곁에 있는 남자친구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싫고 시시하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주인공은 나름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며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는 평범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방향성을 가진 사람이 되어 나아간다.
성해나의 [혼모노], 김지연의 [반려빚], 전지영의 [언캐니 밸리]는 곁을 맴돌고 있다. [혼모노]는 항상 곁에 모시던 신령님을 잃은 30년차 박수무당의 이야기를 다룬다. 야속하게도 이제 신령님은 앞집 신애기 곁에 있다. 신기가 없어진 주인공은 가짜 굿판을 계획하며 신령님이 곁에 있는 것처럼 보이려 애쓴다. 이제껏 신령님을 위해, 그리고 다른 이들을 위해 살아오다가 칼 위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주인공은 홀가분하게 큰 산을 넘은 것처럼 보인다. [반려빚]은 제목처럼 빚이 반려자가 되어 자신을 따라다닌다. 곁을 잃고 빚만 남았지만 빚을 갚으면서도 곁을 떠난 이를 그리워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빚을 다 갚기 전에 곁이 채워져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상반되는 분위기에서 [언캐니 밸리]는 곁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그려낸다. 스토커 행동을 하는 왜소증 남자가 그의 시선으로 한 여자와 청한동 사람들을 표현하고 염산테러 사건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며 상상할 여지를 계속해서 만든다. 독자는 실제 사건과 그의 시선으로 본 사건 사이의 간극을 점진적으로 느끼면서 찝찝하고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곁에 머물고 곁을 내어주고 곁의 진실을 알게 되고 곁을 맴도는 이야기를 읽으며 곁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사전에 의하면 어떤 대상의 옆, 또는 공간적ㆍ심리적으로 가까운 데 그리고 가까이에서 보살펴 주거나 도와줄 만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따스한 의미는 할머니, 보리차차, 레인코트, 주호, 희주, 곽, 현철, 정현, 문수, 여자를 지나 목적지인 자기 자신에 닿게 된다.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을 지켜주고 싶어한다고 해석하면 이 소설들을 다르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기태 작가의 작가노트에 적힌 글을 인용하며 마친다. '나의 소설을 읽고 나의 입력값을 초월하여 당신의 출력값을 내는 일. 이는 나의 성취이자 당신의 성취로, 두 사람이 각자의 특별함을 함께 얻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