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재미있는 사람입니까? [문화 전반]

행복은 우리를 벗어나 있는지도
글 입력 2024.04.27 15: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우리는 재미있는 사람일까요


 

한국인은 재미있는 사람일까? 국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사람의 개성을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개 “그렇다”는 답을 내놓을 것이다. 매일같이 재치 있는 밈(meme)이 생산되고, 맛있는 음식 조합이 쉴 새 없이 등장하며 전경 좋고 분위기가 근사한 가게는 즐비하다. 한국인은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선수들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행복한 사람인가? 이 질문에는 대다수가 입을 모아 곧바로 대답할 것이다. 이 모든 재미난 것들에 모순되게도 한국인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자신의 일인데도 불우한 사실을 고백하는, 의연한 얼굴들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이런 의문이 든다. 한국에서의 삶은 재미있고,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데 우리는 어째서 행복하지 않을까? 재미와 행복의 상관관계가 잘못된 것인가? 우리의 재미와 행복 중 어느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온갖 자극과 아름다움으로 얼룩진 우리의 표상을 되돌아보며, 이제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왔다.

 

 

 

H 언니의 한 마디 


 

한국인의 재미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은 외국에서 놀러 온 친구의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어에 능수능란하고 한국 문화에 익숙하며 외국인이라면 알기 어려운 미묘한 뉘앙스까지 통달한 H 언니와 한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이었다. 외국인이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종류의 요리도 아니고 깻잎무침과 마늘장아찌, 가지무침, 그리고 시골 된장국이 오른 식탁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한국인과 독일인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나오자, 우리가 생각하는 독일인의 이미지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한국인들은 대개 독일인들이 재미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말하자 H 언니는 도리어 이렇게 답했다. “아냐. 오히려 내가 봤을 때 한국인들이 재미가 없어. 독일인들에 비해 훨씬 재미없어.”

 

“한국인은 재미있다”라는 명제에 지금껏 한 번도 반기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으로서 순간 외국어를 들은 듯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한국인과 독일인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두 나라의 지리적 간극만큼 상이할 것이다. 각자가 자주 선택하는 개그의 소재나 웃음을 유발하는 지점의 미묘한 차이도 분명 존재할 테고. 더불어 각자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도 작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이 재미없는 사람들이라니?

 

비록 며칠 간의 해외여행을 제하면 외국에서 생활해 본 경험은 전무하지만 “한국인만큼 재미있는 사람들이 어딨어?”라고 생각하곤 했다. 한국과 외국에서의 삶을 비교할 때, ‘심심한 천국’과는 대조적으로 ‘재밌는 지옥’이라 표현되고, 실제로 한국에서의 삶은 즐거운 요소로 가득하다. 새롭고 독특한 컨셉의 팝업 스토어와 시선을 현혹하는 전시가 줄지어 개최되고, 길거리에는 맛집과 카페, 온갖 놀거리가 즐비하며 유행은 기발하고 절묘한 웃음으로 가득 차 있다. 도리어 해외에 나가 있는 친구들의 SNS를 통해 외국에서의 삶을 엿보면서, 참으로 한가롭고 심심해보이는 곳이라고 생각하던 터라 언니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H 언니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난해한 말을 되뇌는 한편으로 그 문장에는 우리 사회의 병리가 담겨있다고 느꼈다. 여행으로 한국을 잠시 방문한 외국인이라면 유명하다는 명소나 맛집, 놀거리는 진작 꿰고 있을 텐데, 이미 그러한 재미를 느껴본 입장에서 “한국인들은 재미가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닐 터였다.

 

그날의 짧은 대화에서 떠올린 질문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국인이 재미있는 사람이건 아니건, ‘한국인이 추구하는 재미’라는 것을 둘러싸고 우리가 나눠보아야 할 분명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담은 오늘날의 세태를 모조리 지적하며 깎아내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화려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깨닫게 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한국인의 재미란 어떤 성격을 지녔고, 그 속에서 잊혀진 행복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어떠한지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한국인의 재미, 그 이면의 행복 추구에 대하여 


 

구태여 늘어놓지 않아도 한국인들이 재미있는 것에 미쳐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대표적으로 검색창에 지역명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따라 나오는 연관검색어로 증명된다. 대개 ‘가볼만한 곳’, ‘핫플’, ‘놀거리’ 등의 대표 수식어가 해당 지역을 설명하며, 심지어는 그것이 과열되어 특정 지역에 ‘OO 맛집이 있는 곳’이라는 별명까지 붙이곤 한다. 특정 지역에 존재하는 맛집만을 소개하는 SNS 계정은 즐비하고, 혹은 식당, 카페, 혹은 도서관만 집중적으로 파는 컨셉의 계정도 상당하다.

 

이와 같이, 누군가가 소개한 것을 따라서 재미를 좇으려는 방식은 ‘유행’과 ‘추천’이라는 두 키워드로 설명된다.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콘텐츠 제작자들은 새로이 등장하여 진화하고 사라져가는 트렌드를 포착하고,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요소를 발굴해낸다. 그리고 사진 또는 영상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달아 해당 유행을 수용하도록 추천한다. 그리고 그것은 ‘리뷰’라는 이름표를 달고 세상에 전해진다.

 

그렇게 발행된 리뷰는 콘텐츠의 수용자들에게 날아든다. 수용자들은 유행 선구자들의 리뷰를 수용한 뒤, 자신도 그들을 따라 그곳에 가고 싶거나 무언가를 구매하고 싶다는 모방 소비의 충동을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 그러한 콘텐츠는 단지 무언가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콘텐츠 생산자가 콘텐츠 수용자들과 공통된 공감대를 바탕으로 애정을 쌓을 수 있게 한다. 그 결과 콘텐츠 생산자에 대한 일종의 팬덤이 형성되기까지 하는 등, 오늘날에 이러한 종류의 추천 콘텐츠의 힘은 거대한 자본만큼이나 막강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리뷰어와 비(非)리뷰어가 소통하면서 유행이라는 이름 아래 거대한 재미의 양상이 형성된다.

 

이와 같은 유행의 선동에는 빅데이터 알고리즘의 역할도 큰 몫을 한다.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통한 추천은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에 적합한 방식이다. 또한 알고리즘의 특성 상, 사용자가 흥미를 느끼는 정보의 방향에 적합한 것만 선택적으로 제공하므로, 알고리즘의 추천에 익숙한 사용자일수록 그의 내면세계는 몇 종류의 콘텐츠로 압축되며 그 폭은 갈수록 좁아진다.

 

이와 같이 누군가의 리뷰나 알고리즘으로 추천된 유행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유혹해온다. 특정한 물건, 장소, 혹은 의견만을 담은 콘텐츠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것은 은연중에 콘텐츠 수용자의 정신을 지배하고 내면에서 온갖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한다. 행사 종료 기간이 지나기 전에 이곳에 꼭 가야만 할 것 같은 조급함, 이따위 것도 유행이라며 손가락질하는 분노, 혹은 본인만 ‘뭘 좀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소외감 등의 감정이 자극된다.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발현되는 감정의 종류는 다를지언정 리뷰와 알고리즘을 통한 추천 기능은, 유행이라는 단 하나의 풍조가 너무나 강력하게 사회를 뒤덮고 있으며, 개인의 선호와 무관하게 그것이 보편적으로 선호되는 것이라고 믿게끔 만든다.

 

그 결과, 여러 양상의 재미(예컨대 새롭게 고안된 여러 음식) 가운데 일부(마라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만 유행이라는 이름 하에 수많은 사람들에게로 공유된다. SNS에서 리뷰된 재미, 혹은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받은 재미를 탐색하는 것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그렇게 누군가의 판단에 의해 선별된 재미만을 선택지에 두게 된다. 어딘가를 방문하거나 구매하기 전에 반드시 누군가의 리뷰를 읽고 검색창을 탐색하는 것이 일상인 우리는, 그렇게 먼저 방문한 사람의 긍정적인 평가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인들의 보편적인 재미 탐색 방법이다.

 

 

 

우리가 재미있지만 행복하지 않은 이유


 

결과적으로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재미는 타인의 리뷰, 즉 타인의 경험에 기대어 자기의 경험을 꾸려나가는 방식이다. 마치 나무의 견고한 굵은 가지에서 잔가지들이 솟아나듯이 재미의 폭을 확장시켜나간다. 이렇게 결과가 보장된 재미를 추구하려는 것은 개인이 직접 피부로 부딪히며 경험하며 새로운 모양의 재미를 찾아나가기 보다는 이미 보물이 발굴되어 관광명소로 멀끔히 다듬어진 곳에 찾아가 유리창 건너 재미를 들여다보는 방식에 가깝다. 재미있는 것을 찾으려 온갖 검색을 거듭하는 두 손은 사실상 이미 정복이 완료된 세계지도를 들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타인의 경험을 뒤따라 재미의 여정을 밟아나가는 방식에는 우리의 소극성이 녹아들어 있다. 오롯이 자기만의 개척을 경험하지 못하니, 어느 곳을 가거나 무언가를 구매하고 나서 어떠한 지점에서 재미를 느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평이 좋은 가게를 무지성으로 찾아갈 경우, 자기만의 방식으로 음식을 조합하고, 특정한 음식의 맛에 집중하며 음미할 기회가 사라진다. 진정으로 필요를 느끼고 고심하여 구매한 제품을 받아들었을 때의 즐거움은 희미해진다. 결국, 이러한 방식의 재미 추구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경험을 쌓고, 거기에서 나름의 재미를 발굴해내는 식의 즐거움 탐색이 불가하다.

 

이와 같이 타인에게 의존하여 재미를 구하는 습관에는 이유가 있다. 단지 더욱 확실한 행복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늘 확실하고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 그게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가능성이 높은 성공의 행복을 쟁취하길 바라는 것이다. 곡선으로 날아와 예민하게 느껴야 곰곰이 생각해야 인식할 수 있는 종류의 얄궂은 것 말고, 직선으로 날아와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는 종류의 행복이다. 행복이라는 경험에서마저 분명한 것을 바라는 우리의 특성이 유행과 추천, 리뷰의 굴레를 만들었다.

 

자로 토지를 측량하고 저울로 무게를 달듯이 우리는 행복을 잰다. 타인의 추천과 평가를 근거로, 외관, 디자인, 화려한 플레이팅 등 겉으로 보고 평가할 수 있는 것에 사로잡혀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말이다. 두 가게를 사이에 두고 유리창 너머로 엿보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행복의 양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고 무게추가 기우는 곳에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대체 무엇이 분명한 행복이란 것인가? 우리 마음속 재미와 행복의 기준도, 그것을 판단하는 타인의 평가도 그 무엇 하나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 없는데, 스스로에게 질문하여 진심에서 우러나온 자기 확신이란 단 하나도 없는데, 대체 그 무엇이 분명하고 직선이냐는 것이다. 그저 우리는 외줄 위를 위태위태 걸어 나가면서 양손에 매달린 두 가지 선택지 모두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은 모두 놓아버리고 자기의 몸을 감싸 안고 걸어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분명한 해결책일 텐데도.

 

 

 

우리의 행복에 마음을 내어놓는 방법

 

글의 마지막에 이르러 H 언니의 말을 되새겨본다. 재미있다는 것은 타인이 나에게 내리는 판단이고 행복하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다. 어쩌면 우리가 재미를 위해 누군가의 리뷰를 찾고, 알고리즘의 추천을 선택하는 것은 안전한 선택을 하기 위함일 것이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여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것보다는, 함께하는 사람이 괜찮다고 생각할 만한 것을 제안해서 그를 만족시키는 편이 훨씬 안심이 되니까. 나의 선택에 내가 만족하는지, 그리고 행복을 느끼는지에 관해 무심한 태도를 보이는 우리의 습관이 이러한 특징의 재미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H 언니의 말은 이런 뜻일지도 모른다. ‘한국인이 재미가 없다’는 말 속에는, ‘한국인은 자기 스스로를 충족시키는 재미를 찾을 줄 모른다’는 속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놀 줄 모른다는 식의 가벼운 핀잔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를 벗어난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통찰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재미있어지는 방법은 무엇일까? 리뷰와 추천의 긍정적인 측면을 받아들이되,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만족을 느끼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재미를 찾는 일에도 이렇게 고심해야 하나 가벼운 짜증이 일지만, 결국 나의 곁에 오래 남는 것은 내면의 나뿐임을 기억하며 오늘의 깨달음을 가슴 깊이 담아내고 싶다.

 

 

 

서지원.jpg

 

 

[서지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