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님에게 쓰는 편지

글 입력 2024.04.1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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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바람이 그치고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창 밖으론 앙상한 가지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창 안으론 온기가 만연합니다. 몇 해째 마주하는 계절의 변화이지요. 꽃이 피고 떨어지다가, 잎사귀가 달리고 열매가 맺는 것 입니다. 그 동안에 저는 움을 틔우려 학교를 다니고 또 공부랍시고 책을 읽었습니다. 이제는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세상물정, 벗어던지고픈 가면을 쓴 사람마음을 아는가 합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수난이 희미해지니 고생도 하지 않고 투정을 부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아실 테지요, 남의 환심을 사기위한 솔직함이 가장 무겁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떨쳐내기에 여력이 부족하다는 것을요.


이제는 인생의 시곗바늘이 일출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어스름이 걷히길 아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날이 몹시도 추워 몸은 한껏 웅크러 들고 입에선 연기가 폴폴 날립니다. 그러나 그것도 잊은 채 창가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어...” 하는 탄식을 흘리면서 바라보았습니다. 어찌도 맑은 눈동자인지. 현실을 잊거나 부정하지 않은 채 열심히 모습을 보니 저도 가슴 한켠 에서 뜨끈하게 피가 도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순간이 영원하길 기도할 때면 극성맞은 불안감도 제 존재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지긋지긋 한 것은 끝나지 않는 것일까요? 가지런한 책상과 책장이 놓인 방, 마음 맞는 친구와 어울리는 것. 수채화폭에 담긴 그림 같이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무얼 바라며 버텨야 할지모르겠습니다. 선택에 대한 회의는 커져 갑니다. 남탓 하기엔 양심이 찌르르 한데 그 화살이 저를 향하기엔 정신이상자가 될 것만 같습니다.

 

제가 아무리 자신을 확신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무턱대고 미래를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은 과거는 묻을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도 근심하지 마십시오. 해가 뜨고 밝아져 세상이 훤히 보일 때 혹 길을 잘못 걷고 있더라도 모른 척 하시길 바랍니다. 닿지도 않는 곳에서 보낸 충고는 당장에 들을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불안으로 당신의 불만을 막으려 이토록 도전하는 것입니다.


대신 제가 바다 같기를 기도해주셨으면 합니다. 뭍 가까이에서 파도가 되어 부서지는 바다, 쉬이 들여다보지 못할 깊고 어두운 심해가 있는 바다가 되기를요. 아침이면 에메랄드처럼 빛나다가 점심엔 하늘같이 파랗고. 이내 붉게 물들어 모든 것을 잠식하는 바다라면 좋겠습니다.

 

그대여,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이라 합니다. 저는 저의 꿈을 듣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꿈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리고 숙연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위대해 지지는 못해도 행복해 질 수는 있으니까요.”라고.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거짓인지. 잠에 들어 꾸는 찰나의 꿈에서 깨어날 때도 가슴이 철렁하는데 혹여 평생 꿔오던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면 끔찍하겠지요. 당신이 꿈에서 깨진 않았을까, 꿈에서 깨어나 향할 곳 없이 절망을 하고 있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당신 앞 소녀의 꿈을 깨우지 마십시오. 영원히 꿈 속에서 현실은 낭만으로 간직한 채 살아가야 합니다.


소중한 것을 너무 늦게 알아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로인해 후회하지 마십시오. 그 탄식소리가 이곳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낮에는 앞만 보느라 못 봤던 주위의 소중한 것들을 땅거미가 질 때 쯤 알아채면 이미 늦은 것 입니다. 신념을 지키길 바랍니다. 나이 대신 겁을 집어먹지 말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되 견고한 기둥을 따라 흔들려야 합니다. 신념이란 창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나 휘두르지 않고 휘두를 방향을 아는 것이 옳은 신념입니다. 부디 그 마음만은 녹슬게 놔두지 마십시오.

 

시간은 억갑 처럼 구는가 하면 눈 돌릴 틈에 지나가 버리니 누구하나 정 안 붙입니다. 다만 한결같기에 저를 여기까지 이끌었고 먼 훗날들을 바라보게 합니다. 자신이 모두를 변화시키는 것을 모르고 혼자서만 고고할 뿐입니다. 오늘도 시간과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를 하며 당신에게 가는 길입니다.


그 때는 늙어서 이날들은 몇 조각 남지 않았겠지요. 기억들이 살갗에서 마음으로 온전히 흡수되었기에 그렇습니다.

 

당신에게 전할 말을 고심하는 동안 해는 잠들어 달과 함께 길고 어두운 밤을 보낼 작정입니다. 당신에게 이 글을 전할 방법도 모색해야겠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동 틀 무렵에 서 있겠지요. 해가 지려고 할 때 저 또한 지는 해와 같길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2018. 11. 2

 

 

[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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