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극이 범람하는 시대에, ‘삼삼함’을 곱씹고 싶다면 - 겨우, 서른 [드라마/예능]

글 입력 2024.04.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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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는 일이 쉽지 않다. 최소 10부작 정도 되는 호흡이 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드라마는 많지만, 선뜻 시작하는 게 망설여진다. 드라마는 끝맺기도 어렵다. 조금 보다가 그만두어서, 엔딩을 모르는 드라마만 수두룩하다. 초반 이야기 전개에 흥미를 느껴 보기 시작하다가, 중반부터 지루해진다. 지금까지 드라마와 함께한 시간을 생각하며 꾸역꾸역 끝까지 볼 때도 있지만, 요즘같이 시간이 귀할 땐 흥미를 잃으면 바로 하차해 버린다.


그래도 개중에는 결국 끝까지 보게 되는 드라마도 있다. 흥미를 잃어서 잠시 내버려두다가도, OTT 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시청 기록에 남아있는 걸 보면 전개가 궁금해져 클릭하게 되는 그런 드라마. 나에겐 넷플릭스 시리즈 <겨우, 서른>이 그랬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이 드라마는 ‘삼삼하다.’ 자극적이면서도 빠른 전개, 절정에 다다랐을 때 중요한 정보는 쏙 뺀 채 끝내버리는, 그래서 다음 화를 어쩔 수 없이 클릭하게 만드는 드라마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정말 지루할 것 같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길. <겨우, 서른>은 인위적으로 따뜻하고, 훈훈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지도 않고, 자극적인 소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드라마 자체의 전개 속도가 느리고, 주인공들이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는 방식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 드라마는 중국의 가장 화려한 도시, 상하이에서 살아가는 서른 살 여자 세 명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다. 무려 43부작에 달하는 긴 드라마다. 한 회당 주인공 세 명 각각의 에피소드가 산발적으로 펼쳐질뿐더러, 중심 사건 하나를 두고 사건을 해결해 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기에 금방 흥미를 잃고 지쳐버리기 쉽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시청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자극적인 내용을 빠른 속도로 전개하는 드라마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참 흔치 않은 드라마다.


지루하긴 하지만, 그래도 난 이 드라마가 좋다. 자극적이고 짧은 드라마는 인생에 단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극적인 순간들이 끝없이 펼쳐져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너무나 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이 별다른 개연성 없이 끝없이 이어진다. 우리의 평범한 삶과 같이.

 

세 등장인물 중 가장 성숙하고, 성공한 삶을 사는 건 구자였다. 구자의 결혼생활은 완벽했고, 모두가 꿈꾸는 상하이의 고급 아파트에 입주해 살아가고 있었다. 구자는 능력 있고, 성숙했으며 자신의 가정을 잘 일궈오고 있었다. 구자의 가정 역시 화목했다. 그런 구자가 ‘겨우, 서른’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반면 구자의 친구인 샤오친은 서른 살이라고 하기에는 미숙했다. 사소한 일 하나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고, 샤오친의 부모는 딸의 삶에 일일이 개입했다. 샤오친의 가정은 위태로웠다. 그의 남편이었던 천위는 아내와 대화하지 않았고, 샤오친은 남편과 불화 아닌 불화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초반의 상황을 완전히 뒤엎는다. 완벽할 줄 알았던 구자의 가정에도 문제가 있었고, 남편의 외도에 성숙하고 완벽할 줄 알았던 구자는 무너져 내렸다. 발전이 없을 것 같았던 샤오친은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바꾸어 나가며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이혼했던 전 남편과의 문제도 해결하고 재결합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영원한 건 없고, 모든 것들은 변한다.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시련은 찾아오고, 부족한 사람이 평생 부족하게 살라는 법도 없다. 누가 더 잘났고, 못났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끝없이 변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인 것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야기는 더욱 심오해진다. 세 여자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다양한 시련을 마주하는 데, 이들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시련을 극복해 나가면서 점점 더 성장해 가고, 이들의 우정은 더 깊어진다.


결국 이 드라마는 '겨우, 서른'인 세 여자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린다. 갑작스러운 전개 없이,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한 단계, 한 단계씩 변화하는 그런 모습들을.


드라마 <겨우, 서른>은 등장인물들이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는 방식조차 현실적이다.


구자의 남편인 쉬환산이 외도하며 구자를 속일 때마다, 그의 외도 상대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속시원한 전개가 나오길 바랐다. 둘의 관계가 틀어지던지, 구자가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과 같은. 구자를 속이고 상처 준 사람들이 소위 '참교육'을 당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자극적이고 속시원한 ‘사이다’는 이 드라마에 없다.


구자의 친구인 민니와 샤오친은 쉬환산의 외도를 목격했다. 구자보다 외도 사실을 먼저 알고 있었는데, 이들은 구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고민한다. 구자가 이미 쉬한산의 외도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편의 외도 소식을 절친한 친구들을 통해 듣게 될 때 구자가 그들을 예전처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결국 구자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큰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시원시원한 '참교육'은 없다. 구자는 상처를 받고 무너졌으며, 감정적으로 행동하기도 하고, 자책을 하기도 한다. 결국 이혼을 하기로 결심하지만 쉬환산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10년을 함께한 동반자로서 응원하지만, '부부'로서의 관계를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쉬환산과 함께했던 10년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결심한 이유는 지금 이혼을 하지 않으면 과거의 행복을 되찾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앞으로의 시간들이 괴로울 것이기 때문이라고.


정말 삼삼하다. 그리고 현실적이다. 주인공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절대 악'으로 묘사되고, 주인공이 ‘각성’해 이들을 참교육하는 전개, 시청자들이 원하는 '사이다'는 매우 자극적이며 현실적이지 않다. 우리의 현실, 삶은 그렇다. 잔잔하고 삼삼하다. 나를 괴롭히고 상처 주는 사람들이 꼭 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며,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 더 나아가서 복수를 하는 일은 나를 파괴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도 결국 나의 삶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바라던 전개가 아니어서 아쉽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잠시, 결국 이 삼삼한 이야기가 우리의 삶이고, 그걸 곱씹게 만드는 게 이 드라마의 묘미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43부작을 곱씹으며 ‘겨우, 서른밖에 되지 않은’ 세 여자의 고난, 사랑, 우정, 성장을 함께하다 보면 ‘삶’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마지막화, 세 여자는 드라마가 처음 시작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헤쳐 나간다. 그동안 겪었던 고난을 이겨낸 힘을 지니고. 구자, 샤오친, 민니는 무수히 많은 삶의 시련들을 앞으로의 삶에서 마주하고, 고민하고, 절망하고, 가끔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게 우리의 삶이고, 그들은 이제 ‘겨우 서른’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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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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