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홀로 마주한 토론토 [토론토 여행기- ep.1] [여행]

글 입력 2024.03.2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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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나는 캐나다 토론토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장 14시간에 달하는 장기 비행. 기내식 두 번, 무한도전 두 편, 약간의 낮잠, 추억의 케이팝 음악 몇 곡으로 하루 반나절을 보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쓸데없는 고찰은 덤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비행이 끝나고, 비행기는 토론토 피어슨 국제 공항에 착륙했다. 토론토 현지 시각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던 시각과 엇비슷했다.


똑같은 하루를 두 번 살게 됐군.


그렇게 토론토에서의 일주일이 시작됐다.

 

 

 

나, 토론토 갈 수 있을까?



토론토가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는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 캐나다 토론토였나. 이유는 단순했다. 고등학교 친구가 토론토에서 워킹홀리데이(워홀)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자기 삶을 꾸려가는 지구 반대편에 나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워홀 준비에 한창이던 시절, 나는 학점을 챙기고, 내 ‘스펙’에 도움이 될 만한 이런저런 대외 활동을 하고, 나보다 치열하게 사는 동기들과 나를 비교하며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성공적인 취업을 위해 지금보다 더 열심히, 독하게, ‘생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채찍질하면서도, 한 가지 목표에만 매몰돼 편협한 기준으로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과 의미 없는 시간을 구분하며 나의 세상을 스스로 좁히고 있다는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 나는 토론토에 혼자 가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런데 토론토행 두어 달 전, 토론토 여행이 전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나에게 번아웃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 시기를 ‘사망년’이라고도 부른다. 솔직히, 말만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이제까지 잘 다녀오던 대학, 뭐가 그렇게 힘들겠나 하고. 하지만 정말 힘들었다. 새롭게 선택한 복수전공은 나에게 너무 어려웠고, 살면서 처음 맡은 조직의 리더 자리는 버거웠고, 일은 끊이질 않았으며, ‘사람이 제일 문제’라는 것을 알게 해준 이상한 사람들이 내 일상을 무너뜨렸다. 조금씩 지쳐오던 나는 ‘내 안에 내가 없다’고 느낄 만큼 소진됐고, 그 결과 일상 속 사소한 걱정과 불안에 잠식돼 버렸다.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지하철을 타는 일마저 힘이 들던 때였다. 14시간씩이나 비행기를 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감행했다. 번아웃으로 인한 상실감과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타개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벗어나, 머나먼 낯선 세상에 나를 철저히 혼자 떨어뜨림으로써. 

 

 

 

친절과 불친절 사이, 토론토에 온 걸 환영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름 까다롭다는 입국심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라도 생길까 두려워 죄인처럼 서 있는데, 근엄한 심사관이 내 이름을 불렀다. ‘Sumin?’ 

‘왜 부르지?’ 싶어 그를 똑바로 쳐다봤는데, 그가 딱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Welcome to Toronto(토론토에 온 걸 환영해)” 


토론토 대중교통을 타기 위해선 프레스토(presto) 카드를 구입해야 한다. 공항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프레스토 카드를 파는 키오스크를 찾았다. 입력한 카드 정보가 잘못됐다고 하질 않나, 간단한 교통카드 구입도 초보 여행자는 버벅거렸다.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살 수도 있었겠지만, 친구가 프레스토 카드를 준다고 하길래 환승 한 번 가능한 일회용 카드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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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평생을 길치로 살아온 내가 실수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을까. 처음 타야 할 버스는 맞게 탔는데, 이후 환승해야 할 버스를 잘못 탔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바로 내렸다. 문제는, 내가 공항에서 구입한 일회용 프레스토 카드는 이제 쓸 수가 없다. 토론토 버스는 현금을 받지 않았다. 나는 프레스토 카드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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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걷다 보면 지하철 역사 하나는 나오겠지 싶어 거리를 쭉 걸어봤다. 고개를 기웃기웃, 두리번거리면서. 캐리어를 끌고 두리번거리는 내가 누가 봐도 난처한 관광객처럼 보였나 보다. 토론토 중년 여성 두 분이 저 멀리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Do you need help? (도움이 필요하니?)”


프레스토 카드를 사고 싶다고 말하자, 토론토의 잡화점인 ‘shoppers drug store’에서 살 수 있다고 알려주시곤, 그곳이 조금만 걸어가면 있다고, 본인들도 마침 그쪽으로 걷는 중이니 함께 걷자고 했다. 그렇게 이상한 동행이 시작됐다. 그분들은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주셨고, 토론토에서 좋은 여행 하라는 말과 함께 떠났다. 한국의 ‘올리브영’ 같았던 그곳을 구경하다가, 목적이었던 프레스토 카드를 포기하고 우버를 타고 숙소로 갔다. 친구가 준다는 무료 프레스토 카드를 받지 않으면 왠지 손해보는 것 같았거든.


택시비가 훨씬 비싼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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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토론토 시청 건물이 있는 다운타운을 둘러보기로 했다. 지하철에서 내린 후 시청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노란 옷을 입고 있는 남자 셋이 거리가 떠나가라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상한 사람들인가 싶어 경계하며 걸어가는 도중, 무리 중 한 명이 감당하기 힘든 에너지를 발산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 모자 진짜 이쁘다!!! 너한테 잘 어울려!”


가까이 보니 그 노란 재킷엔 ‘amnesty(국제앰네스티, 국제 인권 단체)’라 쓰여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활동가들이었구나. 그들 뒤에 있는 건물은 국제앰네스티 사무실 건물이었다. 그제야 그들이 지닌 밝고 낙천적인 에너지가 이해됐다. 더 나은 미래를 굳게 믿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내가 만난 활동가들은 모두 해맑았다. 도네이션을 권하는 그들에게 나는 토론토 관광객이며, 캐나다 계좌가 없어 후원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내가 3년째 꾸준히 후원하는 단체인데, 그거라도 말해줄 걸 그랬나. 그들은 또 해맑게 웃으며 알겠다고,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언제부터 여행을 시작했는지, 앞으로 어디를 갈 계획인지 물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이 또 (심하게) 해맑게 말했다.


“수민! 다운타운에는 미친 사람들(crazy people)이 많아. 밤에는 조심해!”


crazy people이라고? 다운타운 거리에 있는 약물 중독자나 노숙인들을 말하는 듯했으나, 그들이 너무 해맑게 말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들이 한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이가 약물에 중독된 듯 버스에서 난동을 피운 걸 보면.


나에게 선의를 베푼 토론토 중년 여성분들과, 조심하라고 미리 경고해 준 앰네스티 활동가부터 식당과 가게에서 만난 직원들, 숙소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룸메이트들까지. 토론토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해외여행 시 으레 걱정하는 흔한 인종차별 하나 겪지 않았다. 역시 다인종, 다문화 국가답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다. 친절한 사람들만 있을까. 불친절한 사람도 만났다.


6일 차 아침, 토론토 대저택 카사 로마를 가기 위해 스트릿카를 타야 했다. 이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정류장을 헤매고 있었다. 길을 건너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는데 건너야 하는 것 같아서 길을 건넜다. 분명 보행자 신호였다. 신호가 바뀌기까지 6초 정도 남았었고, 6초 안에 길을 건널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거리에 보행자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내가 길을 다 건너기 직전 차량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차량은 급정거했고,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나에게 f로 시작하는 욕설을 내뱉었다. 먼 타지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욕을 먹다니.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지만 잘못은 운전자에게 있었다. 욕 먹은 것도 억울하지만, 그곳에서 운전자를 함께 욕해줄 사람이 없는 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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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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