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스카에서도 빛난 '오펜하이머' 차근차근 씹어보기 [영화]

오스카 7관왕 <오펜하이머>를 기념하며
글 입력 2024.03.1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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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7관왕 석권


 

'드디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오스카를 수상했구나!' 명성과 실력을 모두 손에 쥔 그가 마침내 <오펜하이머>라는 핵폭탄을 투하시키며 96번째 전쟁의 승리자가 됐을 때, 대부분의 반응이 이러했으리라. 누가 봐도 이상하리만치 오스카와 인연이 없어서 나온 말일 테다.

 

자식도 늦둥이가 제일 예쁘다 했던가. 그가 만든 영화의 이름으로 된 상이 7개나 되는 만큼 이번 시상식은 그에게 가장 예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최고격 되는 작품상을 더불어 감독상, 남우주연상(킬리언 머피), 남우조연상(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촬영상(호이트 반 호이테마), 편집상(제니퍼 레임), 음악상(러드윅 고렌슨)까지. 그야말로 받을 수 있는 상이란 상은 모조리 받은 만큼 앞으로 세간에는 <오펜하이머>가 놀란 감독의 대표작으로 불릴 듯 싶다.

 

이를 기념하며 영화의 배경과 매력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오스카를 정복할 수 있었던 그 매력을 말이다.

 

 

 

역사적 배경


 

1939년, 독일의 과학자들이 원자의 분열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찰나,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다. 당시 독일은 영토에 대한 불만과 엄청난 전쟁배상금 때문에 불합리하다고 스스로 느꼈다. 기존의 로카르노 조약을 히틀러가 부인하고 이탈리아에는 무솔리니가 등장하며 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과 뮌헨 협정, 독일 폴란드 전쟁이 벌어지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안일한 대응으로 영미 연합군만이 나치와 제대로 맞서고 있었다.

 

이 시기,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 온 과학자들은 독일보다 원자폭탄을 빨리 만들어야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인슈타인은 당시 대통령인 루스벨트에게 이를 알리고 그리하여 고용된 13만 명이 미국 전역에서 비밀리에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중 로스앨러모스에는 오펜하이머를 필두로 여러 과학자들이 모인다. 당시 프로젝트에 든 비용은 약 22억 달러로 현재 약 330억 달러에 육박한다. 그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가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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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윈스턴 처칠과 더불어 영미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나치의 패색이 짙어지고 1945년에는 나치가 생각보다 일찍 무너지게 돼 맨해튼 프로젝트의 필요성이 낮아지던 와중, 트루먼 대통령은 진주만 공습을 명령한다.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투하되면서 일본 또한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미국은 경제 대공황을 타개하고 정보통신,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기술이 발전하게 됐는데, 그 가운데 서 있던 인물이 바로 오펜하이머다. 타임지는 오펜하이머를 “현대판 프로메테우스가 올림포스산으로 돌격해서 인간을 위해 제우스의 벼락을 훔쳐 왔다”고 평하는 등 오펜하이머는 세계적으로 유명 인사가 된다.

 

그러나 정작 오펜하이머는 앞으로의 폭탄 개발을 반대하는데, 반대로 미국은 수소폭탄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텔러와 공산당 혐오에 가까웠던 트루먼 대통령을 필두로 냉전체제 속에서 스탈린의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폭탄 완성에 집중한다.

 

 

 

영화 이야기


 

플롯의 마술사라는 별명답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번에도 놀라운 구조를 선보였다. 보통 전기 영화의 경우, 대부분은 두 가지의 방식 중 하나를 택한다. 하나는 시간대를 따라가는 직선적인 방식, 하나는 역방향으로 인생을 되짚어보는 회고 방식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회고 방식이긴 하나, 현재에서 과거를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스트로스라는 인물을 등장시키며, 기존의 시간선 사이에 새로운 시간대를 보여준다. 즉, 현재 → 스트로스의 과거 → 오펜하이머의 과거인 셈이다.

 

게다가 영화상에서 사건들도 위 화살표대로 순차에 맞게 흘러가는 것이 아닌, 때마다 상황에 맞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플롯을 채택해 얻을 수 있었던 이점은 역시 여러 사건들마다 집중 조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로 나뉜다. 오펜하이머를 둘러싼 숱한 오해와 누명, 맨해튼 프로젝트를 대하는 오펜하이머의 자세가 그렇다. 두 이야기 모두 오펜하이머의 파멸을 끝으로 하지만, 두 사건과 관련된 다른 주변 인물들을 클로즈업하며, 청문회 장면에서 오펜하이머를 향한 여러 평가들을 관중들이 듣게 하기에 영화가 플롯만큼이나 다면적이고 입체적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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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와 그를 둘러싼 이야기를 비유하는 여러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영화의 초중반쯤에는 블랙홀을 연구 중인 오펜하이머가 동료에게 그 별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변의 별들을 빨아들이며 그걸로 인해 주위의 빛이 사라진다’는 얘기였는데, 이 대사가 꽤 집중 있게 묘사된다. 그 이유는 이것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암시하고 있어서이다. 첫째로는 오펜하이머가 폭탄 연구(별)에 몰두하면서 주변에게로부터 자신의 안위(빛)를 챙기지 못한 점, 둘째로는 과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한 장소(별)로 모여들고 그 성공으로 인해 세상은 암흑으로 잠들 위험이 있다는 점.

 

이를 통해 영화는 오펜하이머와 과학자들이 좇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고하며 관객에게 앞으로의 전개에 대해 미리 생각할 여지를 주게 만든다.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느껴지는 불안감의 원인은 이 기민한 비유에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 대망의 하이라이트인 원자폭탄 임상 실험 장면에서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과 오펜하이머의 대화도 그러하다. 그로브스는 폭탄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확률에 불안해하며 그 확률이 0이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때,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학창 시절부터 그토록 좋아하던 이론의 가능성을 얕잡아보듯 ‘어차피 이론은 여기까지’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이 대화는 사건은 이미 걷잡을 수 없고 오펜하이머가 자신의 이러한 자만심으로 인해 자신을 파멸로 불러일으킬 것임을 관객에게 미리 알리는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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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오펜하이머는 어릴 적 이론은 빠삭하지만, 실험은 잘하지 못했다고 나온다. 이는 오펜하이머가 핵폭탄 ‘실험’에서 어떠한 영향을 초래할지 미리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삶에도 비극이라는 변화를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점에서, 겉보기에는 핵폭탄 실험이 성공했으나 오펜하이머에게만큼은 또다시 자신의 ‘인생 실험’과 인생‘을’ 실험하는 과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이 만든 복잡한 플롯 안에서 자유자재로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미리 삽입하거나 은유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내는 놀란의 용기와 재치는 매우 놀랍다, 흡사 보물 찾기처럼 또 다른 의도된 장면은 무엇인지 찾고 싶을 만큼 깊은 농도를 지닌 영화다.

 

 

 

눈여겨 볼 장면 3가지


 

1. “(제 안에서도 분열이) 시작된 것 같아요.” 아인슈타인과의 대화에서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만든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스트로스는 대화 내용을 듣지 못해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에게 자신의 욕을 했다고 판단했고 이후, 스트로스는 이날의 모욕감을 갚아주기 위해 오펜하이머를 구멍 속으로 빠뜨리려 한다.


그렇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오펜하이머가 자기반성을 시작한 순간, 죗값을 받을 운명의 수레바퀴 또한 함께 굴러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 장면은 영화 초반부에 스트로스 시점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은 둘이 무슨 대화를 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영화 마지막에 들어서야 들을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스토리의 시발점에 해당하는 장면을 영화의 끝맺음으로 장식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오펜하이머가 스스로 잘못을 깨달음과 동시에 죗값을 받고, 죗값을 치름과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또다시 깨닫는, 그의 삶과 닮아있어 이 영화가 구조적으로도 완벽한 오펜하이머 전기 영화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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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 애인이던 진 태틀록과 결혼 후에도 몰래 만남을 이어가던 오펜하이머는 태틀록의 죽음을 듣고 큰 충격에 빠진다. 위 장면은 그런 오펜하이머를 부인인 캐서린이 달래며 폭탄 제조에 얼른 집중이나 하라고 외치는 신이다.

 

태틀록은 오펜하이머가 두 번의 청혼에도 마음을 사지 못했던 존재다. 천재성으로 세상 모든 것이 술술 풀리던 그가 유일하게 미련을 갖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태틀록은 핵폭탄 같다. 원자의 분열로 발생하는 핵폭탄처럼 태틀록은 오펜하이머를 분열시켰기 때문이다. 미래에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인 태틀록과 외도했었다는 사실 때문에 스파이로 오해받는 점과 외도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진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캐서린이 매우 선하고 오펜하이머를 사랑하는 인물임이 느껴진다. 위 장면처럼 미래에도 오펜하이머 곁에 있는 모습은 분열되는 오펜하이머를 재결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애처가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또 이를 계기로 폭탄을 개발하기로 더욱 단단히 마음을 먹는 오펜하이머를 생각하면 영화의 터닝포인트이기도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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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전쟁을 끝내겠다는 일념 아래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한 오펜하이머는 비로소 활짝 웃는다. 성조기를 배경으로 한 채. 이처럼 미국의 과학발전을 일궈낸 희망이자 영웅 그 자체인 오펜하이머지만, 미래에 그의 가슴은 성조기에 찔리고 만다. 플래시백으로 연출되는 영화상, 관객은 그의 결말을 알고 영화를 관람하기에 그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차마 같이 즐길 수 없다.

 

 

[유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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