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 속에는 나무가 자란다 - 수마나 로이 [도서]

글 입력 2024.02.25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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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운동장에는 유명한 나무가 하나 있다. 우리들은 그 나무를 정령의 나무라고 불렀다. 한 국어 선생님이 붙인 이름이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그 나무에 정령이 살고 있다고 했다. 공부가 잘 안되거나, 뭔가 힘들거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괴로울 때면 그 나무를 찾아가서 속풀이를 해보라고 하셨다. 나무에 별명을 붙이는 신기한 사람. 그렇게 생각했던 우리도 어느새 그걸 정령의 나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책은 나무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편협하고 차별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관점은 우리 인간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까지 도달한다. 우리는 나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나무의 열매와 꽃, 줄기, 수액까지 착취해 왔다. 수마나 로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착취해 오지는 않았는지 묻고 있다. 나무의 목소리와 나무의 생각, 나무의 역사까지도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혹은 듣지 못했다는 식으로 착취했다고 말이다.
 

 

우리 집 마당에는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를 키운다.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 아버지는 그 나무를 베어내자고 몇 번을 말했지만 할아버지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노인의 똥고집을 시전했고 그 효과는 굉장했다. 나름 근거는 있었다. 자고로 사람 사는 집은 터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자리 잡은 나무를 함부로 처리하면 기운이 상해서 팔자가 꼬인다고 했다. 그렇게 잘 버텼던 녀석도 지금은 가지가 숭덩숭덩 잘려 나가서 휑한 몰골이다. 헐벗었다고 해서 수치심을 느낄 일은 없지만 겨울이 되 나뭇잎도 다 져버리니 숱이 심히 없어졌다.


정령의 나무나 우리 집 감나무가 그랬듯이, 사람들은 유독 나무라는 식물을 수호신으로 여길 때가 많다. 가끔은 광적이라고 불러도 무색할 정도의 믿음을 보인다. 동네 입구에 자리 잡은 몇백년 된 나무를 베어 내려다 동네 사람 다 뛰쳐나오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몇 세기가 넘는 시간을 살아온 나무를 보면 그런 믿음도 이해가 간다. 목이 꺾이겠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치켜 들어도 그 끝이 안 보인다. 자연의 위대함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나무라면 어떤 영이라던가 하는 것이 깃들어 있어도 이상할 게 하나 없다 싶다.


 
수마나 로이는 자국에 존재하는 계급과 명예 살인, 성차별과 폭력 문제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간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탐구한 인도의 가장 독창적인 현대 시인이다. '식물-되기'의 욕망은 로이의 시와 소설 작품 전반에서 드러나는 창작의 동기이자 이상향이다. '나무가 되고 싶다'라는 이 낯선 욕망은 수마나 로이 특유의 은유적 상상력이 더해져,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데려가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나무를 만나게 한다.
 

 

나무는 한 번 뿌리를 내린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평생을 산다. 주변의 땅이 썩어 문드러져도 더 깊게 뿌리를 내릴 뿐 주변의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일은 없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어지간한 바람에는 꿈쩍도 안 할 정도가 된다. 나무 한 번 밀어 보겠다고 부딪혀봐야 비효율적인 다이어트만 하는 꼴이다. 발길질 한 번 해볼까 싶다면 미리 근처의 정형외과 번호와 영업시간부터 알아보는 게 좋다. 돌을 던져도 아마 개미 주둥이로 깨문 정도의 흠집만 남을 테고 그마저도 금방 아물어 흔적조차 못 찾는다. 이런 굳건함에 우리가 의지하고 싶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움직여야 살아있는 것이라는 관점은 대단히 배타적이다. - 책 중 발췌

 


나무의 시간은 평등하다. 나무에게는 비교라는 개념이 없다. 그러니 차별도 없다. 나무에게 중요한 건 스스로가 자라는 것 뿐이다. 주변의 나무가 더 높고 크게 자랐다고 해서 의기소침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더디게 자라는 나무를 비웃지 않는다. 묵묵히 스스로의 성장에만 집중한다. 그러는 와중에도 남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숲에서 위를 바라보면 나뭇가지가 곂치지 않게 자라는 덕분에 햇빛이 들어온다고 했다. 위에서 잎을 가리면 광합성을 못 해 나무가 죽어버리니 제들끼리 알아서 피해 간다. 남을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서는 게 아닌, 자신이 더 높게 솟아 위를 얻어내는 것. 이럴 때면 나도 나무의 무리에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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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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