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riter] 우상 숭배

글 입력 2024.01.3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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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
 

 

운비는 늘 말한다. 그렇지만 귀신 보는 애가 보이는 것만 믿는다니, 나에겐 퍽 우스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네가 보는 걸 난 못 보는데, 그럼 난 네 믿음은 평생 못 본다는 거잖아.

 

우리 엄마는 어릴 때부터 미신 타령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갓난아기 때, 온 병원을 돌아다녀도 열이 떨어지지 않자, 종국에는 무당인 외숙모에게 갔는데, 내 몸이 싹 나았다고 한다. 그 뒤로 외숙모의 말을 법처럼 여겼다고.

 

나를 본 외숙모는 내가 귀신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허한 몸이라고 했단다. 그리고 돈이 없어 애를 거의 방치하고 있는 무당을 소개시켜 줬고, 그 무당의 자식인 운비를 만나게 했다. 지금은 내 매니저까지 하면서, 평생 내 액땜용으로 살아가게 된 운비. 내 직업이 아이돌이 된 것도, 오히려 나쁜 게 대놓고 헛짓거리 못하게 사람들의 선망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외숙모의 말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외숙모는, 아직 갓난아이였던 두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셈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운비는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애였다. 내 액땜용으로 사는 것에 만족했다. 언젠가 운비에게 믿는 신이 있냐고 물어봤는데, 따로 숭배하는 대상은 없다고 했다. 믿는 건 자기 자신뿐이라고. 내 기가 하도 허해서 조금만 따로 둬도 들러붙는 악귀, 이상한 영혼, 잡것들 때문에 스스로 단련하기도 바쁘다고 했다.

 

나는 나를 오롯이 지켜주는 운비가 좋았다. 가끔 그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 애는 걔가 늘 하는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엔 관심이 없었다. 나보다 보는 게 훨씬 많은 세상에 살아서 그럴까, 눈에 보이는 감정보다는 늘 다른 것을 보는 것 같았다. 운비의 눈 너머에 보이는 게 무엇인지 난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걸 믿었다. 운비를 믿으니까, 그 아이의 눈에 비친 것도 믿는다.

 

운비는 나를 믿음이든, 물리적으로든 지켜주는 나의 우상이니까.

 

 

“운비야. 나 오늘은 피곤해서, 집에서 혼자 쉴래.”

“너 그러다 또 영혼 들어온다? 피곤할 때 더 조심해야 돼. 너 맨날 거짓말하잖아.”

“야, 오늘은 진짜 그냥 자면 될 것 같아. 뭐가 이상하면 연락할게. 너도 좀 쉬어.”

 

 

운비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흘겼지만, 난 운비가 좀 쉬었으면 했다. 운비는 계속 나 때문에 일을 하니까. 피곤한 것도 맞고, 좀 기가 허한 느낌이 나는 것도 맞지만. 뭐, 거짓말은 아니니까.

  

차에서 내리는데 문득 궁금함에 물었다.

 

 

“야. 넌 나 무대하는 거 보면 안 멋있냐?”

“뭐?”

“나 팬도 많고, 인기도 많은 아이돌이잖아. 다 나 멋있다고 난리인데, 넌 나 보면서 그런 생각 안 하냐고.”

“뭐래, 너 무대 할 때도 영령들 찾느라 바빠 죽겠는데.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 기 허하면 꼭 부르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운비에 난 좀 심통이 났다. 나름 이래봬도 난 누군가의 우상인데, 쟤한테는 그냥 일이라는 게. 쟤를 귀찮게 하고, 힘들게 한다는 게 스스로도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서 거짓말했다. 기가 허한 거 알았는데, 괜히 집에 들어가서 보일러도 안 켜고 눕고, 꼭 피워야 하는 향도 안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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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난 병원에 누워 있었고, 옆에는 가라앉은 표정의 운비가 있었다.

 

  
“……운비야.”
 

 

내 부름에도 운비는 내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읊조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혼자 두지 말걸. 보이는 게 없어서 그냥 뒀더니, 너 허한 틈 사이에 숨어 있었나 보더라.”
 

 

운비의 깊은 한숨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걱정시키고 싶은 건 아니었다. 아프기도 싫었다. 그렇지만 운비에게 그냥 짐짝이 되는 건 더 싫었다.

 

 

“너 몸 허한 거 느껴졌지? 도대체 왜 말을 안 해? 이러다 너 진짜 영혼 잃어.”

“난 너 좀 쉬라고.”

“내가 왜 쉬어. 너 옆에 영혼들 막는 게 내 일이야. 네가 이러면 오히려 더 성가셔져, 알잖아.”

 

 

맞다. 다 알지만, 나는 어쩐지 조금 억울했다. 그럼 난 어떻게 해도 너한테 짐밖에 안 되는 거잖아.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아무리 많은 사람에게 우상이 되어도, 나는 평생 너를 힘들게 하는 존재인 거잖아. 그게 억울해서.

 

 

“알아. 근데 너 내가 왜 이러는지 알잖아.”

“왜 이러는데?”

“내가, 너한테 비참해지는 게 싫으니까.”

 

 

홧김에 뱉은 말이었는데, 말하면서 더 비참해졌다. 그에 운비는 되려 그게 뭐가 중요하냐는 듯 물었다.

 

 

“그게 중요해? 어차피 그런 건 보이지도 않잖아. 눈에도 안 보이는 자존심 챙길 바에, 눈에 보이는 안전을 챙기는 게더 낫지 않...”

“나한텐 똑같아. 마음이나, 귀신이나 둘 다 안 보이는 건 똑같다고. 그래서 마음도 중요해.”

 

 

내 눈에는 안 보이더라도, 네가 보이는 것들까지 난 믿을 마음이 있어. 너만이 날 지켜주니까, 너만이 날 보호해 주는 우상이니까. 그러니까.

 

  
“운비야, 너도 나 좀 숭배해 줘.”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도 내 마음으로 너를 지킬 수 있게.

 

내가 너의 우상이 되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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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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