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도서/문학]

내가 시를 읽는 법
글 입력 2024.01.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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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장르에서 '시'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갈래였다.

 

나는 각 구로 이어진 행과 연의 사이에서 의미를 찾는 것에 급급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라는 생각으로 한 줄을 읽는 것에만 자그마치 몇 분이라는 시간을 쏟고 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런 행위의 연속에서 시집을 덮고 다시 도전하는 것을 반복했다. 긴 과정 속에서 내가 가장 처음으로 매력을 느꼈던 시는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이다.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그 여름의 끝, 이성복

  

 

이성복 시인은 시는 몸에서 바로 꺼내서 머리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빨리 써야 한다고 말했다. 생각에 의지하면 이미 늦은 것이라는 그의 말에 깊이 통감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바로 꺼내서 보여준 따끈따끈한 작품들을 냉철하게 머리로만 이해하려 하니 어려웠던 거구나. 어쩌면 '시'에 '이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한 문장, 한 단어마다 즉각적으로 이해하려는 행위는 필요하지 않다. 시선이 닿았을 때 내 마음을 울리는 순간을 만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테니. 결국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구절은 그런 것들이다. 눈과 마음을 거쳐 비로소 머리에 남아있게 된다.

 

이 과정을 거쳐 지금의 나에게 남아있는 또 한 편의 시를 소개하고 끝마치려 한다.


 

나를 두고 왔다.

 

앉아서 일어날 줄 모르는 나를 두고 오는 수밖에 없었지만 그때 보고 있던 게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이라서

 

어디 갔는지도 모른다. 어디 갔는지도 모르면서 여름이 오고

 

여름엔 장미가 피었다 지기도 하니까 붉어지는 데 집중하다 떨어진 장미를 집어 들고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이

 

장미는 다 어디로 갔다.

 

남겨두기 위해서라면 한 번쯤 비유를 끌어다 쓰는 수밖에 없었고 결국 모여 있던 아이들이 빠져나간 후에 남은 의자처럼

 

찾아가지만 않는다면

 

거기 그대로 앉아 있을 것이다.

 

공원에 많은 긴 형태의 의자, 임승유


 

[김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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