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푸른 광장을 찾아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1.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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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에게 혼란의 시대가 찾아오고 서로의 이념 대립으로 인해 어느 한 곳에서도 나의 이념과 존재를 부정당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고 또 어떠한 삶을 살아갈까.


최인훈 작가의 소설 「광장」은 이념의 갈등과 분단 상황에서 겪는 혼돈의 장과 그러한 장을 살아온 한 청년의 고독과 고뇌를 보여준다. 따라서 소설을 읽으며 내가 이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보았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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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준’이라는 인물


 

「광장」의 감상 포인트는 주인공 이명준의 변화이다. 대개의 소설이 주인공의 변화와 성장을 기대하고 주요하게 보긴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느 소설과는 달리 「광장」의 주인공의 변화 이외에도 인물 자체의 캐릭터성과 결말에 이르러서 인물이 내리는 결단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따라서 명준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명준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북에 있는 부친과 별개로 서울에 남아 철학과를 다녔다. 명준은 철학과 학생의 임무를 다하는 듯 매우 철학적인 사고와 이념을 갖고 매 순간 사유한다. 가끔가다 사상가나 철학자, 신화적 인물을 통해 비유하곤 하는데, 예를 들어 정 선생과 그의 모친에 대한 비유를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그리스 노예 에테’로 하고, 물질 사이에 걸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택하는 사람에 대한 비유를 ‘갈릴레이’와 ‘뉴턴’으로 한다.


소설 초반의 명준은 메마른 삶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고자 한 인물이다. 그 외에도 명준은 날카로운 통찰력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했다는 생각은, 이긴 사람의 느낌이다.”, “정책에 대해서는 방법론의 창시자조차도 반드시는 정확하달 수 없습니다. 하물며 계승자인 경우에는, 어느 누구도 해석권을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인물만의 날카롭고 독보적인 시선이 드러나는 문장은 소설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 있다.


그러한 명준의 갈등과 변화는 사랑과 이데올로기로부터 발생한다.

 

 


‘윤애’와 ‘은혜’


 

명준에게는 두 명의 연인이 있다. 바로 윤애와 은혜다. 윤애는 영미의 친구이자 남한에서 만난 여인이고, 은혜는 발레단 단원으로 명준이 월북한 이후 북한에서 만난 여인이다. 이 둘은 명준에게 같은 듯 다른 의미를 가진 주요한 인물이다.


윤애는 명준에게 처음 사랑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인물이자 자신의 벽을 쉽게 허물지 않았던 인물이다. 명준의 접촉을 매번 밀어내기 바빴던 윤애에게 흥미로운 것은 명준의 ‘밀실’, 즉 개인적인 공간인 ‘방’이었다. 그러나 명준은 그곳은 책만 존재하는 재미없는 방일뿐이라며 그러한 윤애의 흥미를 외면한다.


명준은 윤애와 정반대의 가치관을 가졌는데, 그는 몸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자신과 윤애가 ‘사람’이 되고, 마음의 교류가 가능해진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때 그가 사랑에 있어 추구했던 몸의 관계는 명준에게 육체적인 교감을 넘어 ‘사람’으로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명준은 윤애와의 관계에 불만을 느끼게 되고, 그녀에게 육체적인 교감을 갈구하고 애원한다.


윤애와의 연애는 명준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충만하지 못한 관계였다. 그렇기에 명준은 자신이 윤애를 두고 월북하는 배(이상적인 사회의 북을 기대하며)에 탑승하는 것에 주저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은혜는 명준에게 가치관이 맞는 상대이자 자신이 추구하는 몸의 관계에 있어 거부한 적이 없는 순탄한 연인이다. 그렇기에 명준은 윤애와 떨어지는 것에 대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과 달리, 은혜가 발레단을 위해 모스크바에 가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 그러한 명준의 강력한 제지에 은혜는 수긍하는 듯하나, 명준 몰래 모스크바로 출항하게 된다. 이에 명준은 큰 배신감을 느끼는데, 이는 그가 악인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이때의 명준은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독자에게 강한 역변의 모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

 

 


‘광장’과 ‘밀실(방)’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단어는 단연 ‘광장’과 ‘밀실’이라고 할 수 있다. 광장은 집단적인 삶으로, 밀실은 개인적인 삶으로 상정된다. 명준에게는 그러한 개인적인 공간인 밀실의 훼손이 들이닥친다.


“나의 방문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튼튼하리라고 믿었던 나의 문이 노크도 없이 무례하게 젖혀지고, 흙발로 들이닥친 불한당이 그를 함부로 때렸다. 내 방인데.”


남한에서 부친이 평양방송을 통해 비방과 공격 방송을 한다는 이유로 취조실에서 고문을 받았을 때 명준은 내밀한 방의 강제적인 해체를 느낀다. 이는 명준을 불안으로 내모는 요소로 작용한다.


명준이 몸의 관계를 원하게 된 이유도 이와 맞닿아있을 거라 짐작된다. 당시의 명준은 개인의 공간이 무너지고, 또 광장으로 섣불리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즉 편안을 주는 공간의 상실은 그를 위태롭게 만들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명준은 아늑한 품을 원했을 것이다. 소설 초반에 그는 자신에게 들어맞는 안락한 공간에 심리적 안정감을 느꼈고, 이것을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느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명준은 남과 북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않게 된다. 남한에서 광장의 부재로 인한 밀실의 상실을 겪은 뒤 상처를 얻고 월북하지만, 북한에서 개인의 밀실이 존재하지 않는 광장의 참혹함을 보게 된다. 당의 독재로 인해 개인은 배제되고 부정당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는 이념과 의견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게 명준은 중립국으로 향한다.

 

 

 

푸른 광장,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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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준은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를 탄다. 하지만 명준은 바다에서 갈매기 두 마리를 본 뒤 바다로 투신한다.


결말까지 이르고 난 뒤 등장하는 ‘바다’는 여러 가지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어두운 그림자만 존재하던 광장과 달리 “바다에는, 배 그림자도 없다”라고 표현한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이 바다는 암담한 광장과 대비되는 존재로, 명준이 원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즉 바다는 ‘푸른 광장’이 된다.


또한, 소설에서 은혜의 뱃속을 바다로 표현하고, 딸을 물고기로 비유한 것을 보았을 때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자 삶의 태초의 느낌을 자아낸다. 따라서 명준이 바다로 투신을 하는 결말은 명준이 원했던 세상과 추구했던 순수한 이념으로서의 회귀로 느껴진다.


남북 사이에서의 분열로 인한 이념의 혼란과 개인적 공간의 훼손에 의한 상처로 고통받던 상황에서 바다로 떨어지는 것은 추락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러한 추락을 통해 이상 세계로 진입하는 아이러니함이 담겨있다.


“그의 몸과 물결은 하나가 된다.”

 

밀실과 광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내밀한 삶의 경계와 해체를 보여준 「광장」. 명준은 사랑에 있어,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있어 고난과 절망을 겪고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그는 결국 중립국조차 향하지 않고 바다로 투신한다. 자신만의 푸른 광장, 두 마리의 갈매기로 상징되는 죽은 은혜와 딸이 있는 바다로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푸른 광장은 어디일까. 결말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러한 푸른 광장은 혼돈의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여전히 그 정답은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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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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