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애매하게 슬플 때 듣는 것 [음악]

드뷔시의 달빛
글 입력 2024.01.06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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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모호한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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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삶이 지루해 죽을 것 같다는, 좀 사치스러운 생각을 한다. 딱 나 한 사람 앉을 만큼의 수레에 실려 일직선의 선로를 털털털 하고 내려가고 있는데, 둘러보면 이곳저곳 즐거운 인생 투성이다.


이때 부러움보다는 스스로 행복을 일굴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된 듯한 무기력함이 문제다. 어떠한 경치 곁에서도 안녕할 수 없을 때면 나는 내가 미워진다.


또 가끔은, 지극히 사소한 이유로 씁쓸해지기도 한다.


최근 동물에게 말을 걸었을 때, 동물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간에 그건 인간의 말을 진정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만약에 개한테 손! 해서 개가 손을 준다면, 인간을 지켜보며 쌓인 정보에 기반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거다. 또는 훈련을 통해서 그렇게 학습이 되었기 때문이거나.


고양이를 키우는 나에게는 다소 청승맞은 이야기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죽었다가 깨도 우리 집 고양이와는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애견인, 애묘인, 그리고 기타 다른 동물 친구들과 함께하며 사랑을 주는 분들에 비해 나는 내 고양이와 이쁜 내 새끼, 귀여운 내 새끼 하는 관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력이 낮은 나에게는 고양이를 돌보는 게 은근히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우리 집 고양이를 향한 내 사랑은 무한한 사랑이 아닌 기계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화장실을 치워주고, 밥과 물을 갈아주고. 귀 안쪽, 눈꼽을 닦아주고. 보채면 달래고 또 놀아주고... 언제는 들은 척도 안 하는 뒷통수에다 대고 이렇게 핀잔을 준 적도 있었다. 나는 너랑 맨날 놀아주는데, 너는 언제 나 심심할 때 한 번 놀아준 적 있냐고...


그럼에도 이 사실이 섭섭한 거로 보아, 나는 역시 내 고양이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신경 쓸 거리가 없어도, 해줄 것 다 해주고 나서도 괜히 잘 있나 돌아보고 싶은 존재.


고양이가 그것 때문에 섭섭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뒤통수에다 대고 말해봤다. 그래, 솔직히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소통도 빅데이터에 기반해서 이루어지거나 형식적이기 그지없는 경우도 많지 않겠냐고.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소통할 수 없다는 게 뭐 대수냐고.

 

 

 

드뷔시의 달빛


 

짚이는 데 없는 슬픔을 느낄 때면, 음악도 모호한 것을 찾게 된다. 가사가 있는 곡은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하는 것 같아 싫고, 고요한 곡이 좋다. 가장 좋아하는 건 피아노 곡이다.

 

 

 

 

피아노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피아노를 연주하던 때가 떠오른다.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피아노 선생님의 말씀도 기억한다. 비눗방울 쥐듯, 손을 둥글게 하고 연주하라는 말.

 

피아노를 치며, 손안의 비눗방울을 상상하려 애썼다. 중요한 건 손을 둥글게 쥐는 동작이 아닌, 가볍고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손에 닿는 건 분명 딱딱한 건반이었다. 그것을 비눗방울로 바꾸어 생각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채로 피아노를 연주하던 그때 내 모습이, 애매모호한 속마음과 부딪혀 보고자 하는 내 모습과 겹치는 것 같기도 하다.

   

 

[안세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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