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재형 재난 속 인물 - 밤의 여행자들 [도서]

글 입력 2023.12.2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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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에서 요나는 다크 투어리즘 관련 관광 상품을 기획하여 판매하는 여성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잘릴 위기에 처하자 인기가 없는 재난 여행 상품인 “무이”로 떠난다.

 

“무이”는 현재형 재난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그러나 무이의 원주민들은 “재난을 인식하지 못한”다. 무이 사람들은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전까지 무이를 “아무것도 없을 뿐”이라 생각했다. 반면에 폴은 재난을 “인식하면서 조장”했다. 두 부족으로 원주민을 나뉘어 똑같은 프로그램을 체험하게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원주민으로 연기했던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져 있다. 원주민으로 꾸민 환경은 잘 짜인 인위적인 자연이다.

 

자본가들은 현재 무이의 상태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활발하지 않은 화산이나 불편한 교통편과 같은 ‘애매한 재난’으로 상품 가치가 없자 폴은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위해 새로운 재난을 계획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가올 재난의 ‘희생자’로 꾸민다. 무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 인위적으로 생길 싱크홀의 무대일 뿐이다. 이 계획에 동참하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이 계획 전반을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오히려 원주민들은 그 “분업화”된 재난 계획 속에서 무고하게 죽을 희생양이 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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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는 소설에서 ‘재난’을 계속 정의한다. 재난이 발생하지 않는 도시는 없으며 재난을 우울증으로 비유하여 늘 잠재하는 것(12)이라고 말하고 재난의 범위를 넓힌다. 동시에 재난을 ‘과거형’과 ‘현재형’으로 나누어 현재형 재난이 일어나는 공간인 ‘무이’를 더 주목한다.

 

 

“사람들은 과거형이 된 재난 앞에서 한없이 반듯해지고 용감해진다. 그러나 현재형 재난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것이 재난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해도 방관하거나, 인식하면서도 조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싱크홀은 저편 사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175쪽)


 

요나는 사람들이 이미 지난, “과거형” 재난을 목격할 때 “충격→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내 삶에 대한 감사→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61)을 느낀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현재형 재난은 다르다. 현재형 재난을 인식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하인리히 법칙을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의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작고 작은 수백 가지 징조가 미리 보인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재난의 발생에 주목한 것일 뿐, 재난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규칙이 있을 리 없다. 재난은 그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어느 날 발밑이 갑자기 폭삭 무너지는 것처럼 우연이라기엔 억울하고 운명이라기엔 서글픈, 그런 일. 그런데 그런 일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122쪽)


 

요나는 무이와 폴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다. 요나가 주로 취하는 태도는 “인식해도 방관”하는 것에 가깝다. 재난의 희생자들에게 재난은 갑작스러운 것이다. 우연과 운명 둘 중 어떤 것도 죽음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폴은 인위적인 재난을 만들어 내려고 계획했고 요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홍수, 태풍, 그리고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요나에게 “항상 일이었을 뿐”이었고, 오히려 “가장 큰 재난은 자신의 감정”(186)이라 말한다. 무의식적으로 자기는 “악어”의 당사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면서도(199) “직접적이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183) 가만히 있기를 선택했다.

 

요나는 주변에 “휩쓸리는” 인물에 가깝다. 항의하기보다는 피해자 위치에서 맞서야만 하는 상황을 회피하고 연대를 거부한다. 특히 상사의 성추행을 불쾌하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세 번이나 그의 행동을 참고 넘어갔다”는 것을 더 납득하지 못하고 자신의 망설임을 다른 피해자가 이해(20)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시위하는 피해자들을 보며 얼굴을 가리는 등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태도는 무이에 가서도 계속 보인다.

 

요나가 인위적인 재난의 기획자로 휘말리는 이유도 열차가 분리되면서 무리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고한 죽음을 목격하고 황당한 계획을 들으면서도 누군가가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려 접근하자 오히려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자기가 얻을 이점을 생각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142)는 서술이나,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사건 이후 여행 프로그램을 짜는 것뿐이라는 자위 혹은 변명”(183)과 같은 문장은 요나의 진실로부터 거리 두기를 보여준다.

 

요나는 재난을 기획하는 사람에서 그 계획에 휩쓸려 “악어”가 되어버린다. 그는 고객센터에 전화로 항의하지만, “본인 사망”(195)으로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답을 받는다. 이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 겹친다. 그러나 요나는 자업자득과도 같은 상황에서 나름 벗어나려 한다. 요나는 럭에게 비밀을 발설하고(206) 럭을 살렸다.

 

‘작가’는 요나가 죽은 소식을 듣고 “이야기는 이미 그의 대본보다 앞서 나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204)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작가’가 생각한 “극적인 이야기”가 더 극적으로 이어진 것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작가’가 만든 사연은 필요 없이, 그저 맹그로브 숲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위적으로 죽음의 이유를 부여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서사를 부여하기를 시킨 사람들까지 죽고, 사연은 필요 없었던 원주민들이 살아남았다.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들이 겪은 재난은 다시 관광 상품이 되었다. 싱크홀의 원인이 되려던 탑이 쓰나미로 무너진 것조차 상품화된 재난의 분위기에 일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나는 결국 ‘작가’가 쓴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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