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거야? [문화 전반]

밈으로 보는 사회 #2
글 입력 2023.12.2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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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자고 일어났는데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거야?

 

 

올해 초반, 이 질문을 부모님께 하고 반응을 캡처해서 올리는 것이 SNS에서 유행이었다.

 

다양한 재치 있는 답변과 때로는 먹먹해지게 하는 감동적인 답변들이 잇달았다. 나 역시 궁금했지만, 따로 산 지 오래되어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면 부모님을 놀라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묻지 않기로 했던 기억이 있다.

 

혼자서는 많이 생각해 봤다. 내 자식이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무서울 듯. 벌레 무서워한다. 대다수의 부모님의 답변과 달랐던 것은 내가 아무래도 자식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질문의 모티프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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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에서 그레고르는 어느 날 커다란 갑충이 된다.

 

집의 생계를 책임지던 사실상 가장에서, 능력을 상실한 징그러운 모습이 된 그를 가족들은 서서히 배격한다.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에서 정해진 시간에 최소한의 먹이만을 공급받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급격히 침체한 가정의 분위기는 그레고르가 사과에 맞아 죽고 나서야 비로소 나아진다.

 

그레고르의 모습은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가장으로 보이기도 했고,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히키코모리 자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기 모습이 너무 비참하고 더러워 보여, 가족 앞에 당당히 나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가족에게 내가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린 어디서도 안식을 찾을 수 없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다만 그러한 예시와 작중 그레고르의 차이는 '의사소통'의 가능성이다. 작중의 그레고르와 달리 우린 대화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 그것이 열려있는 한 이와 같이 극단적인 소외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극 중 장치로서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을 상정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 또한 말이 되긴 한다는 생각 역시도 들었다. 몇 년에 걸친 서서히 이루어지는 냉대(冷對)를 묘사하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친구가 부모님에게 따뜻한 답변을 받은 것에 대해 안심이 된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이길래, 우릴 이렇게 애틋하게 구속하는 걸까? 대부분은 혈연으로 구성된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다를 바 없다. '가족'과 ''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돌아올, 돌아와야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지나친 확대해석이라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20대 사이에서 이 질문이 유행하는 것이 사회적 '불안감'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룬 것에 비해 남들은 너무 앞서나간다. 비교와 과시를 양익으로 하여 먹고 사는 SNS에는 늘 행복한 장면과 비싼 술, 차들이 올라온다.

 

그와 반대로 고용 안정성과 결혼, 출생률은 역대 최저를 갱신하는 시점이다. 가진 것도, 해낸 것도 뭐 하나 없이 지나가는 청춘을 바라보며, 우린 모두 불안하고 피곤한 것이다.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우린 자꾸만 돌아올 곳을 쳐다본다.

 

다 괜찮다고,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포용해 줄 수 있는 돌아올 곳이 우리에게 집이라는 이름으로, 확인받고 싶은 질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은 대학에 진학하길 포기하고 사는 지역마저 바뀌어, 난생 처음 무적(無籍)이 된 것에 혼란을 느끼며 방황하던 어린 날의 나였다. 지금에서야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일임을 너무 잘 알지만, 19년 인생 중 12년을 사회가 정해준 '내 자리'가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마치 축객령과 같이 느껴졌더랬다.

 

잘 앉아 있지도 않아 먼지만 가득했다지만, 그래도 내 자리로 여겼던 자습실에 더이상 내 명패가 없는 것을 보았던 내 표정이 너무 안쓰럽고 궁금하다. 나도 그레고르의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막막함과 불안함에 술만 마셨다. 술은 아주 값싼 마취제였다. 그렇게 싸돌아다니다 또 하루 막연히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간 스무살의 어느 밤에 나를 기다리며 파에서 졸고 있던건 당장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 우리 아버지였다. 내가 정신적으로만 온전하다면 언제고 다시 기회가 생길 거라며, 부모님은 그저 기약 없이 기다리기를 선택하셨다고 한다.

 

그 시기의 '그레고르'를 따뜻하게 포용해 주고 기다려준 가정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질문을 우리 부모님에게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충분한 대답을 들었기에. 그리고 이젠 내가 누군가 돌아올 '집'이 되어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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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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