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요정처럼 생각하기 by 로렌 차일드

요정은 사람일 수도 상황일 수도
글 입력 2023.12.03 08:4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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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서자마자 환함에 눈이 부신다. 분홍색 배경에 아기자기한 캐릭터들. ‘오우, 이 밝음은 무엇? 여긴 내 스타일이 아니군’ 확신에 찬 눈빛으로 둘러본다.

 

로렌 차일드와 상상친구들, 고얀이와 강아지, 책 속의 책, 명작의 재탄생, 요정처럼 생각하기 섹션으로 나눠져 있는데 어느 작품을 보든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아무도 웃지 않는다. ‘입을 그리긴 그린 건가? 작가가 귀찮아서 점 찍고 넘어갔나?’ 말도 안 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며 진지하게 감상한다.

 

어라, 신기하게도 그림 속 인물의 감정이 바로 느껴지는 듯하다. 작가는 전체적인 색감, 움직임, 눈으로 각 사람의 감정 상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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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코로나 시기에 친언니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언니, 이제 마스크 쓰고 다녀야 한대! 입을 가리고 있으면 어떻게 웃는지 알지? 표정을 볼 수가 없잖아.”

 

“입이 아니라 눈으로 웃는 거야.” (손으로 얼굴 반을 가리고 내게 웃어본다)

 

“언니는 웃으면 반달눈이 되니까 바로 알지만 나는 입만 웃는걸. 내가 웃으면 아무도 모를 거야.”

 

“아냐, 너도 웃어. 넌 눈동자가 웃으니까 알 거야.” 

 

“그런가? 근데 언니 가리니까 더 예쁘다! 마스크 쓰면 좋을 것 같아!” (퍽)

 

로렌 차일드 작품의 현실판 같은 우리의 대화를 상기하면서 작가는 눈으로 특히 눈동자로 놀람을, 호기심을, 집중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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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그림마다 개성이 있지만, 나는 명작의 재탄생 섹션의 <메리 포핀스>가 제일 좋다. '교사의 말'에서 좋은 교사는 어떠해야 함을 설명하며 “절대 화내지 않으면서도 몹시 단호한 쾌활한 성격”인 메리 포핀스를 예로 든다. (p.92) 이것을 보고 메리에게 꽂혀있던 와중에 그녀를 다시 만나 몹시 기쁘다.

 

내 머릿속 그녀의 이미지와 그림 속 이미지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좋다. 더 슬림하고 동양미가 가미된 듯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좋다. 메리와 메리를 재탄생시킨 로렌에게 마음속으로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를 보낸다. (‘훌륭한, 환상적인’ 이란 뜻으로 1964년 영화 <메리 포핀스>에서 처음 쓰였고 내가 지난 10년 동안 중얼거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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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재탄생에 <공주님과 완두콩>이나 <비밀의 정원>도 있지만 유독 <메리 포핀스>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녀는 내 친언니 같다. 우아하고 지혜롭다. 입이 아닌 눈으로 웃는다는 것을 알려준 언니는 내가 지금까지 봤던 모든 여자를 통틀어 가장 닮고 싶은 여자이다. 때에 맞게 필요한 말을 하고 때론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다. 뚝딱거리는 내가 사람답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은 언니의 기름칠 덕분이다.

 

“언니,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돈을 얼마나 버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해.”

“그걸 아는데 언니는 왜 그렇게 써?” (퍽)


“왜 계속 답장이 없지?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확실하게 말하면 될 것을!”

“그 사람은 답을 하고 있네. 답장이 없는 게 그 사람의 답이야.”


“사방이 막힌 것 같아.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어.”

“하늘은 봤니? 위를 보도록 해.”


“네가 내 동생이니까 가깝게 지내지 안 그러면 너랑 친하게 지내지 않았을 거야.”

“흠, 내가 너무 치명적이야?”

“넌 독특해. 나랑 달라.”

“그렇구나. 난 언니가 날 멀리해도 좋아했을 것 같아. 언니가 종종 이해는 안 되는데, 좋아.”

“그런데 너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

“이해가 안 돼. 무슨 뜻이야?”

“네가 친구한테 쓰는 마음을 보면 한결같아. 너 같은 친구가 있다면 든든할 거야.”

“언니는 소중해, 이미 내 친구야! 내가 안아줄까?” (퍽)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전시장 끝으로 가면 크리스마스 그림을 볼 수 있다. 그곳에 전시 주제에 대한 설명이 있다. “'요정처럼 생각하기'는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며 친절한 일을 베풀면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클라리스 빈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다. 로렌 차일드는 이웃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는 클라리스 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아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이웃들이 우리들의 행복한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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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요정은 메리 포핀스이자 언니이다. 그림처럼 가족이 함께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면 좋겠지만 뿔뿔이 흩어진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상상에 불과하다. 멀리 있어 만날 수는 없지만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생각만으로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음의 또 다른 말은 행복이 아닐까. 

 

보고 싶다.

 

 

p.s. 기회가 된다면 유료 도슨트, 특히 박혜랑 도슨트님의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한 안내를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에디터로서 제 색깔을 더욱 담아낼 수 있도록 가르쳐 준 <요정처럼 생각하기>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전시야말로 저에게 요정이었습니다.

 

 

 

김윤 에디터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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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에델바이스
    • 에디터님의 글을 읽으니 '나에게 요정이란 무엇이며, 누구일까?' 생각해보게 되네요.
      우선 에디터님의 리뷰가 요정 같았습니다 :)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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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yoan
    • 2023.12.23 23:56:38
    • |
    • 신고
    • 에델바이스감사합니다. 에델바이스님의 댓글이 요정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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