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예술 없는 인간은 마치 햄 없는 김밥 같아

문화예술이 뭐길래, 이렇게 즐거운 걸까.
글 입력 2023.10.18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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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펼쳐보면 각각의 시대는 당시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고민했던 서로 다른 논제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여도 당시에는 큰 파장을 일으키거나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 그 논제는 곧 사회가 당시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고스란히 반영하기 마련이다.

 

중세에는 종교에 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양차 대전이 끝난 직후엔 인간의 인권과 존엄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런 이야기들은 해당 시대를 정의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된다.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어떤 키워드 속에서 해석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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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사회는 발전에 열광한다. 듣도 보도 못한 수많은 기술이 등장했고 인류의 적이라고 여겨진 여러 병을 차례로 이겨내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지능은 인간이 쌓아 올린 정교한 게임을 차례로 풀어나갔고, 무엇이든 척척 대답하는 질문형 인공지능은 이미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상용화되었다.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의 시기다.

 

하지만 무언가 앞으로 달려 나가기만 할 때 항상 반反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 마련이다. 이 재빠른 발전의 시기는 인류에게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다시금 제시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범주를 하나씩 공략하고 있는 이 시기에, 무엇이 가장 인간다운 것인가?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

 

결론부터 말하면 뻔한 이야기가 될까 두렵지만, 나는 인간의 인간다움을 결정짓는 바로 그 요인이 문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와 예술은, 인간이 ‘인간이기에’ 행하는 행위라는 점 때문이다.

 

문화 예술은 인간이 가진 것 중 가장 무의미하고 생존과 무관하다. 설사 동굴 벽에 그린 벽화가 사냥감을 잡기 위한 의지를 북돋아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림 자체가 목숨을 살려주거나 오늘 굶어야 하는 끼니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한 해의 시작이나 마무리를 축하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전통적 행위도 직접적으로 생명을 구해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인류를 정의할 때 문화예술을 쏙 빼놓으면, 그건 마치 김밥에 가장 중요한 재료가 빠진 느낌이다. (무슨 재료일지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지었다는 셰익스피어의 문학 없이, 많은 걸작을 만들어 낸 르네상스 시대의 세 명의 화가 없이, 오늘날 우리가 즐기고 향유하는 일상 속 문화 없이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전쟁과 기술과 수학만으로도 인류사를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마치 심장이 없는 깡통 로봇 같은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것일까? 단지 문화예술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추상적인 이유에 감명받아서 진심으로 문화예술을 즐길 리는 만무하다. 내가 생각할 때, 내가 문화 예술과 가깝게 지내는 이유는 그것이 가지는 다양성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것을 마주치면 살아 있는 감정을 느낀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의 일부를 발견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 나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아는 것은 그 자체로 즐겁다.

 

때로는 그 다양함 사이에서 나와 같은 특징, 나와 같은 생각을 찾아낼 때도 있다. 그런 순간은 ‘다름’을 인식한 순간만큼이나 즐겁게 다가온다. ‘이토록 다양한 생각 속에서도 나와 통하는 감정이 있다니’하고 감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러모로, 다양함은 언제나 내게 살아 있는 여러 감정을 쥐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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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연하게도 문화 예술은 다양함과는 떼래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제각기 다른 감상을 느낀다. 같은 축제에 가더라도,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각자 경험과 기억, 혹은 취향의 영향을 받아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진다. 그리고 다양함을 느끼는 감상자들 혹은 향유자들까지 포함이 되었을 때 비로소 문화예술이 완성된다.

 

작품을 만든 작가는 한 명인데, 그것을 해석하는 수많은 사람은 수많은 사람의 방식대로 자신의 이해를 돋구어 나가는 사실은 너무나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이 놀라운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문화 예술을 접하고 느낀 생각을 꾸준히 글로 적고 있다.

 

책, 여행, 기억, 경험, 전시 등 많은 것들이 나만의 감정을 담아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나의 감상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새로운 것’이고 ‘다양한 것’일 사실을 떠올리면 글을 쓰는 순간이 즐겁다.

 

*

 

가끔은 친구들이 나의 글을 통해 새로운 문화 예술을 접하고, 그 후기를 남겨주기도 한다. ‘네가 추천한 것 좋더라’라던지 ‘너는 이 영화를 이런 방식으로 해석한 게 흥미롭다’와 같은 이야기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글이 실제로 나만의 색채를 가지고 그들에게 가닿았다는 사실에 무거운 보람을 느낀다.

 

누구든 다양할 수밖에 없는 무대는 누구나 특별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차이를 발견하며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데다, 나의 별것 아닌 감상으로서 특별한 누군가가 될 수 있는 풍경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문화와 예술, 그리고 내가 즐긴 문화 예술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이미 나의 일상 속 행복을 담당하는 큰 부분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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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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