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플롯은 어떻게 재단되는가 [영화]

글 입력 2023.10.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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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은 사건의 짜임새를 뜻한다.

 

의도하는 효과에 따라 사건의 전후 관계를 배열하고 조직하기에 소위 우리는 플롯을 ‘짠다’고 비유하곤 한다. 이런 점에 있어 플롯의 원리는 의복을 가공하는 원리와 닮아 있다.

 

의복은 때와 장소, 상황에 적합하거나 추구하는 이미지에 부합하도록 제작된다. 명확히 구상된 도안대로 씨실과 날실은 직조되고, 각종 직물이 절단되고 접합되며 의복은 완성된다.

 

영화 ‘아웃핏’은 정확히 그러한 내부의 치열한 설계를 톺아보는 작품이다.

 

 

아웃핏1.jpeg

 

 

1956년 한겨울, 영국 출신의 명장 ‘레오나르도’는 시카고의 한 도로변에서 비서 ‘메이블린’과 수제 양복점을 경영 중이다. 관성적으로 묵묵히 양복을 수작업하는 그는 고객의 조롱, 꼼꼼하지 못한 비서의 잔실수에도 차분하게 응수하는, 신사다움의 교본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러한 그의 견고한 평정심을 위태롭게 할 만한 사건이 발생한다. 여느 때처럼 야근에 열중하던 중, 지역 마피아 갱단 두목의 아들 ‘리치’가 경쟁 갱단 ‘라퐁텐’으로부터 총상당한 뒤, 부하 ‘프란시스’에 의해 실려 양복점으로 급히 피신했기 때문. 과거 자신의 첫 손님이던 두목 ‘보일’의 청으로 양복점을 대수롭지 않게 그들의 비밀 아지트로 내주었던 레오나르도는 점차 심각성을 감지하게 된다.

 

리치와 프란시스로부터 전해들은 전말은 이러했다. 조직 내 언더커버가 있고, 그가 FBI와 협력 중임을 증명할 녹음 테이프를 세계 마피아 중재 집단인 ‘아웃핏’으로부터 건네받은 뒤, 이를 두고 라퐁텐과 총격전을 벌이게 된 것. 평소 자신을 업신여겼던 리치지만 레오나르도는 그를 정성스레 간호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때 평소 직업적 특성으로 관찰력이 뛰어났던 레오나르도는 리치의 열등감과 프란시스의 취약점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해 둘을 이간질한다. 친밀한 대화들로 레오나르도에 대한 라포가 형성된 리치는 이에 회유돼 프란시스에게 시비를 걸다 사망한다. 설상가상으로 레오나르도는 프란시스의 협박에 못이겨 시체 은닉에 가담하게 된다.

 

이후 두목 보일이 양복점을 방문해 리치를 찾으며 사태는 더 악화된다. 인질이 된 레오나르도는 프란시스의 압력으로 리치가 외출했다며 둘러대지만, 보일은 아들의 행방에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추궁한다. 위기의식을 느낀 프란시스는 리치의 애인이기도 한 메이블린을 끌어들여 보일이 그녀를 의심하게끔 거짓으로 증언한다.

 

이때 평소 메이블린을 딸처럼 여겼던 레오나르도는 그녀의 편에 서며 보일에게 과거 딸을 잃은 이력을 고백하며 그를 회유한다. 이에 레오나르도의 순발력 있는 연기가 더해지자 보일은 의심을 거두고 아들을 찾아 밖으로 나선다.

 

작전은 통했지만, 복병 프란시스가 양복점에 남으며 둘을 살해하려 하자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여태껏 파악하고 계획한 것들을 차근차근 들려주며 그를 설득한다. 파리에서의 새 삶을 위해 금전이 필요했던 메이블린이 밀고자이며, 그녀를 통해 라퐁텐에게 보일의 위치를 전해 사살하면 프란시스가 곧 조직의 1인자가 될 수 있다는 달콤한 제안에 프란시스는 쉬이 수락하고 만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예상을 뛰어넘는 범상찮은 지략가였다. 실은 프란시스와 라퐁텐 무리 전체를 소탕하기 위한 교묘한 일타쌍피 전술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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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반에는 ‘아웃핏'의 실체가 곧 레오나르도이며, 모든 것이 그의 철저한 설계였음이 밝혀진다. 그러나 유일한 변수, 사망한 줄 알았던 프란시스가 깨어나며 레오나르도는 격조 있는 양복 이면에 숨겨진 자신의 실체를 털어놓는다.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과거 청부 살인자였던 그는 감수할 수 없는 명령에 불복했고 은신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작은 가게를 얻었지만 이내 조직에 발각되며 딸과 아내를 잃고 시카고로 이주한 것이었다.  양복 소매를 걷은 레오나르도는 문신으로 도배된 자신의 신체를 보이며 프란시스를 잔혹하게 살해한다.

 

극중 딸을 잃은 과거, 애정을 내비치는 유일한 인물이 메이블린임을 감안할 때 이 모든 설계의 종착에는 그녀에게 안온한 삶을 보장해주고픈 레오나르도의 바람이 있을 테다.

 

그는 언제부터 이러한 빅픽처를 구상한 것일까. 어쩌면 첫 손님으로 보일을 맞닥뜨렸을 때부터일지 모른다. 자신의 영혼과 가족을 몰살시킨 ‘폭력’에 대한 반감이 가장 극심했을 시기였으므로. 그에게 메이블린은 죽은 딸을 투영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대상이었을 테고, 야만과 무력으로 도사린 시카고, 특히 그녀의 비밀 애인인 리치는 거슬리는 존재였을 터.

 

동일한 옷감이라도 치수와 밑그림,  장인의 숙련도에 따라 전혀 다른 유형의 의복이 탄생하듯, 극중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쥔 재료들을 바탕으로 품을 들여 이미지를 대변하는 양복을 제작한다. 더불어 그와 같은 방식으로 플롯을 직조해 자신만의 연극을 창조해냈다. 그 극에서만큼은 선인과 악인, 성자와 마피아의 구분이 무용하다. 고상한 양복에 가려진 적나라한 문신들이 증명하듯. 그저 철저히 의도된 '인물', 그리고 그를 위한 촘촘한 설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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