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심이란 무엇인가 [도서/문학]

<파수꾼> 각본집
글 입력 2023.10.0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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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현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인 <파수꾼>의 각본집이 개봉 12년 만에 출간되었다. 파수꾼은 서투르고 미숙한 청소년들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은 영화이다. 영화는 희망적인 메시지나 미래의 낙관적인 전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와 과거를 계속 반복적으로 오가며 폐허처럼 남아있는 씁쓸함을 보여줄 뿐이다. 우리에게 씁쓸함은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된다.

 

*본 글은 <파수꾼(2011)>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파수꾼 스틸컷4.jpeg

 

 

기태의 죽음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기태의 아버지는 기태의 죽음의 이유를 찾아 나서는데, 책상 서랍 안, 기태가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발견한다. 사진 속에서는 기태(이제훈)와 희준(박정민), 동윤(서준영)이 환하게 웃고 있다.

 

 

 

누가 최고야?


 

과거의 기태는 학교의 짱이다. 서열 1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열 1위에게도 공허함이 있다. 학교의 노는 무리의 아이들이 비뚤어진데에는 다 그 공허함과 무언가의 부재가 있기 마련이다.

 

기태는 다소 폭력적이고 뒤틀린 방법으로 희준이를 아꼈지만, 결국 희준이와 동윤이가 자신을 떠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삶을 포기한다. 10대 청소년에게 친구가 삶의 전부일 수 있다. 특히 기태같은 아이들에게는 그렇다. 희준이는 기태에게 “난 너를 진짜 친구라고 생각한 적 없어. 다른 애들도 다 마찬가지야. 얘네도 너를 진짜 친구라고 생각 안 해.” 라고 말한다.

 

 

파수꾼 스틸컷 희준.jpeg

<파수꾼(2011)> 스틸컷

 

 

우리가 소중히 하던 관계는 결국, 알 수 없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언제 우리가 단단해졌는지도 모르지만, 단단해져 있을수록, 부서졌을 때, 아픈 법이다. 그렇게 기태는 부서지고, 피해자인 것만 같았던 동윤이와 희준이는 남아있다. 그들은 기태를 부순 만큼, 아프게 나아갈 것이다. 이는, 회복이 아니다. 흉터도 아니다. 그저 그냥 기태가 남아있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위치로 나오지도 않고, 성장하지도 않는 이 영화는 그저 남아있는 파편으로부터 과거를 돌이켜본다.

 

 

 

처음부터 잘못된 건 없었어. 너만 없었으면 돼. 


 

기태에겐 동윤이와 희준이밖에 없었는데, 그들이 기태에게 한 말은 모질고 가혹하다. 연약하고 부서질 것 같은 기태와, 알고 보면 속이 단단했던 희준. 가장 현실 속에 있을 법한 동윤. 사실 기태가 희준이에게 가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태에게도 감정 이입하게 된다.

 

누구에게 감정 이입이 될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기태에게 가장 몰입이 되었다. 나는 사실 힘들다고, 부서질 것 같다고. 그걸 알아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그런 친구들로부터 부정당하는 것은 결국 기태가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 있어서 슬프다. 그러나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기태의 아버지는 사건의 실체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사실 기태의 자살 원인은 확실히 명시되지 않는다. 우리는 명확히 무엇 때문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찾아나가고 싶어 하지만 사실 그것을 명확히 찾아낼 수 없다.

 

기태의 뒤틀린 우정. 마음과 진심. 그리고 친구들.

 

 

파수꾼 스틸컷 기태.jpeg

<파수꾼(2011)> 스틸컷

 

 

기태 -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응?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동윤 - 아니. 잘못된 건 없어.

잘못된 건 너지… 그냥 너만 없었으면 됐어.

 

 

장난이라도 모든 말에는 진심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래 마음에 더 큰 진심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동윤이는 그러한 진심이 담겼지만, 진짜 진심이 아닌 말을 내뱉으면서, 기태를 산산 조각낸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누구에게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네가 날 친구로 생각해 본 적, 한 번이라도 있어?


 

기태에게 세상의 전부는 친구였고, 기태의 친구는 희준과 동윤뿐이었다. 무언가는 그 사람의 전부다. 요즘 이 말이 좋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사람에게는 그것만이 전부라는 게 얼마나 소중하게 다가오는가. 그러나 이것은 누군가를 매우 산산조각내 버릴 수도 있다.

 

누군가는 누군가를 애정하지만, 그 방식이 뒤틀려 애정으로 다가가지 않을 수 있다. 끔찍하기도 하다고 느낄 수 있기 마련이다. 사랑과 우정의 방식은 그렇게 각자 쩔쩔매면서 꼬여버려 전달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진심이 아닌 말을 진심처럼 내뱉으며 관계를 산산조각 내버리기도 한다. 

 

 

파수꾼 각본집 표지 복사본.jpeg

 

 

<파수꾼> 각본집을 통해 파편화된 조각들을 천천히 되돌아보고, 원래의 시나리오에서 사라진 부분과 영화에서 바뀐 대사들을 통해, 각본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변화한 부분들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파수꾼>에 대한 윤성현 감독과 이제훈 배우, 박정민 배우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나온 각본집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이 영화를 생각했을 때, 변화한 것들, 다시 그때로 돌아가 하라고 하면 하지 못할 것들로 인해 이 영화가 얼마나 절실하고 간절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배우 이제훈은 처음에 파수꾼 각본을 읽고 EBS 청소년 드라마 같다고 생각해서, 이 각본이 가지는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기를 하면서, 점점 기태에게 몰입하게 되었고, <파수꾼>은 그렇게 모두의 진심이 꾹꾹 담긴 영화로 남았다. 

 

윤성현 감독 또한, 영화를 만들어 가면서, 대사를 바꾸고, 행동하고 연기하는 배우들로 인해서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더 잘 되었다고 한다. 자신이 만들어 낸 캐릭터를 배우들이 생생하게 만들어 냄으로써 그걸 보고 느끼면서 대사를 바꾸고, 영화는 그렇게 다 같이 만들어진다는 점이 얽히고설킨 파수꾼의 인간관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성현 감독은 보기에는 평온한 호수면서, 밑에서는 소용돌이가 일고 있는 영화, 그것이 삶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면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잖아요. 사람은 결코 단순하지 않은, 복잡하게 살아 숨 쉬는 존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 윤성현 감독


 

왜 그랬을지 모르지만, 그땐 치열하게 임했던 때가 있다. 박정민 배우는 흥행에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그냥 모두가 간절했다고 말했다. 그런 때가 있다. 영화를 찍어본 경험이 있다면, 이 영화가 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그렇게 간절한지 모르지만,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경우가 있다. 정말.. 열심히 말이다. 그러니까 그건, 촬영장에서 열심히 진심을 쏟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최선이기도 하다. 정의 내릴 수 없는 소중함은 그냥이라는 단어로, 간절하고 절실해진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이 영화가 대체 뭐라고! <파수꾼>이 나의 인생을 바꿔줄 거라는 기대도 전혀 없었고, 그냥 또래 친구들하고 영화 한 편 찍는다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던 노릇인데 왜 그렇게까지 다들 치열하게 임했을까요? 현장에 있는 모두가 그냥, 너무 간절했어요.”

 

- 박정민 배우

 

 

능숙하지 못한 신인 배우, 신인 감독, 촬영 스태프, 그들이 만들어 내는 영화는 때론, 엄청난 연출과 연기와 완결성이 아니어서 더 빛나고 서투른 무언가로 느껴지기도 한다.

 

 

 

에디터 심선용.jpeg

 

 

[심선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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