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에게 필요한 현대 예술 한 스푼 [미술/전시]

국립 현대 미술관 <김구림> 展
글 입력 2023.09.2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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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이유를 들며 답하겠지만, 아마 주된 감상은 ‘어려움’ 혹은 ‘난해함’ 일 것이다.

 

작품을 보자마자 한눈에 ‘아, 이건 풀밭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구나’ 혹은 ‘아, 이건 별이 많은 밤하늘을 그린 거구나’ 하며 어떤 대상을 그렸는지 의심할 여지 없이 알 수 있었던 재현의 시대가 저물고, 인류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욱 완벽한 재현의 도구를 만들어 냈다.

 

그 정체는 바로 사진기로, 사진기가 어떤 화가의 손기술보다도 완벽한 현실을 담아내기 시작하자 미술계는 자연스럽게 ‘재현’의 가치에 목매달고 있을 필요와 가치가 없어졌다.

 

그렇기에 현대 예술은 항상 의미를 찾는다. 작가 고유의 생각과 색채를 듬뿍 담아낸 독창성이야말로 가장 온전하고, 가장 예술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독창성은 필연적으로 구체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쉽사리 어렵다는 평가를 받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김구림> 전시는 이러한 추상적 현대 미술을 이해하고 경험할 좋은 기회다.

 

김구림은 무려 1950년대부터 실험 미술을 시도해 온 전위적인 한국 현대 예술 작가로, 현상적인 미술, 비디오 아트, 회화와 퍼포먼스 등 수많은 분야에서 자신의 행보를 이어왔다. 

 

전시관을 먼저 들어서면 보이는 것은 다양한 회화 작품이나 간단한 물체 몇 개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그는 전쟁의 참상을, 비닐을 태워 그을린 자국으로 표현했다. 사각형의 캔버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기존의 회화와 달리 다양한 물질과 재료를 활용한 그의 작품은 일정 부분 이상 입체성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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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기대어 놓인 빗자루와 삽은 물질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새것을 가져다 마치 오래된 것처럼 탁한 채색을 덮어두었다. 과연 무엇이 대상의 본질이며, 무엇이 진실인가? 관람객들은 이러한 질문에 맞추어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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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에서 물질로>는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 중 하나였다. 얼음 세 개를 전시장 안에 두고 그 위에 천을 덮는다. 얼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고 관람객은 녹아가는 얼음, 혹은 녹아버린 얼음을 목격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대상은 주로 ‘영원불멸’해 보인다. 보통 특정한 프레임 안에서 존재하며, 갑자기 철로 만든 조각상이 마모되거나 유화로 그린 그림이 문드러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김구림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단순명료한 메시지를 실제 전시장 안에서 녹아가는 물질로 표현했다. 그의 얼음은 자연의 섭리를 생각나게끔 하고, 또 순간적인 ‘현상’이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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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구림> 展은 전시 시작 전에 시행착오가 많았던 전시이기도 하다. 김구림은 자신의 대표적인 실험 작품 중 하나인 <현상에서 흔적으로>(1970)를 재현하려고 했다. 이는 고리타분한 미술계를 비판하며 흰 천으로 경복궁 내부에 있던 현대 미술관의 외관을 덮어버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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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림의 <현상에서 흔적으로>(1970)를 설명하는 영상 일부

 

 

김구림은 이를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재현하고자 했지만, 미술관 측은 국립 현대 미술관 건물이 가진 역사적 가치와 행정 절차 이유로 해당 작품의 재현을 거절하였다.

 

김구림 본인은 해당 사실에 대해 실망감을 느낀 모양이다. 실험미술의 대가인 그는 ‘하나도 실험적인 것을 하지 못했다’며 직접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정해진 범위 내의, 얌전한 작품만 허락하는 한국 미술 및 행정계의 엄격성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된 사안이었다.

 

안타깝게 시행되지 못한 작품이 존재하지만, 김구림의 작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김구림> 展은 그의 작품 세계를 경험하기에 참 적절한 전시였다.

 

여전히 대중적으로 현대 미술이란 어려운 영역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번 가을 한국의 실험미술을 개척한 김구림의 작품을 관람하며 현대 미술의 영역에 한층 더 가까워지는 것은 어떨까.

 

국립현대미술관의 사이트 내부에서 무료로 도슨트 음성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으니 이를 활용 해보는 것도 좋겠다.

 

<김구림> 전시는 지난달 25일부터 시작되었으며, 2024년 2월 12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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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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