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상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란 [영화]

글 입력 2023.09.23 16:0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common.jpeg

 

 

“그때 흘러나온 곡이 ‘블루문’이었어요. ‘블루문’ 아세요? 아직도 기억나요.”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에 가는 비행기를 탔을 뿐인데, 재스민의 추억 여행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무언가에 심취한 듯 이야기를 늘어놓는 재스민과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옆자리 승객.

 

짐을 찾는 순간까지도 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재스민을 뒤로한 채 황급히 자리를 뜬다.

 

 

 

아직도 뉴욕에 살고 있어


 

common-6.jpeg

 

 

재스민은 부유한 사업가 할과의 결혼으로 뉴욕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명품과 끊이지 않는 파티, 남편의 사랑과 아들의 자랑이 그녀의 삶을 채워 나갔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남편의 외도로 하루아침에 뒤바뀐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돈과 사랑, 명예를 모두 잃고 동생 진저의 집인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 재스민의 온몸을 휘감은 명품은 잠시 모른 척해 주자.

 

상황이 바뀌어도 재스민의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진저의 집에 신세를 지러 온 입장임에도 동생의 생활에 이런저런 핀잔과 잔소리를 늘어놓고 자신이 할 일은 의미 있고 대단한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 그녀가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의 현실을 깨달을 때면 반복적으로 뉴욕에서의 생활을 언급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녀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여성일 뿐. 현실에서 회피하고자 하는 그녀의 몸부림은 그녀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내 이상은 허항된 꿈이 아니야


 

common-3.jpeg

 

 

그녀에게 뉴욕은 이상향 그 자체의 공간이다. 재스민은 그 이상향을 경험해 보았기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삶을 살고 있었기에 달콤함을 쉽게 잊을 수 없다.

 

그녀는 뉴욕에서의 삶이 본인에게 걸맞은 자리라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꿈을 품는다. 그러고는 할을 처음 만났을 때 흘러나왔던 ‘블루문’과 당시의 추억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다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그녀는 결국 이상을 좇아 비현실 속에 살게 된다. 재스민은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드와이트라는 남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지만 언젠가는 이루어질 이야기들이며 약간의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결국 드와이트는 그녀의 거짓말을 모두 알게 되고 재스민은 어느 한 곳에도 몸과 마음을 둘 수 없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 ‘블루문’은 함께이다.

 

 

 

영원하지 않은 블루문



common-2.jpeg

 

 

결국, 비참한 현실에서 재스민을 구원해 줄 사람은 현재를 살아가는 ‘재스민’ 본인이다.

 

그녀는 과거의 자신이 영웅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끊임없이 ‘블루문’을 부르고 뉴욕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며 그 안의 재스민에게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주인 없는 이상향은 더 이상 응답하지 않는다. ‘이상’은 더 만족스러운 삶을 꿈꾸게 하는 긍정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에 삶이 잠식되는 순간, 이상은 본질을 잃게 된다. 이상은 우리를 괴롭히는 거대한 힘이 되어 현재의 시간을 단 1분도 견디지 못하게 한다.

 

재스민은 이상을 갖는 것만큼 헛된 이상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그 버리지 못한 이상이 나를 치장하는 장신구가 될지라도, 마지막에는 재스민의 겨드랑이를 흥건하게 적신 땀처럼 처량한 모습으로 나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우리는 쉽게 재스민을 미워할 수 없다. 이상에 쉽게 빠지고 과거에 집착하는 재스민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재스민은 인간이 보이지 않는 허상 앞에서 이토록 나약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 그렇기에 재스민의 태도에 화가 나다가도 마음 한 편으로는 그녀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재스민이 본인의 힘으로 뉴욕이 아닌 어딘가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그렇게 다시 만난 재스민이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이상을 꿈꾸고 있다면 그때는 자리를 뜨지 않고 그녀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주겠다.

 

 

 

이연재-3.jpg

 

 

[이연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