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언어를 초월하는 언어, 인형극 - '키 씨어터'

글 입력 2023.09.2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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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_ 포스터.png

 

 

지난 9월 9일부터 10일까지 광진어린이공연장에서 특별한 공연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온 키 씨어터(The Key Theater)의 인형극 <아낌없이 주는 나무(When All Was Green)>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를 모티프로 한 이 인형극은 대사 없이 아름다운 음악과 인형의 움직임만으로 50분간 관객을 몰입시킨다. 한국 제목으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원제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영어 제목은 인형극으로 만들며 ‘The Giving Tree’에서 ‘When All Was Green’이 되었다. 직역하자면 모든 것이 푸르렀을 때. 나뭇잎이 아직 무성하고 노인은 어렸던 시절을 의미한다. 원제가 대가 없이 모든 걸 내어주는 나무의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새로운 제목은 나무와 소년 사이 흘러가는 시간과 변해가는 관계에 방점을 찍는다.

 

키 씨어터는 이 작품으로 11년간 세계 곳곳에서 관객을 만나며 2023 크로아티아 인풋 국제인형극축제 최우수작품상, 2022 모스타르 FLUM 국제인형극축제 최우수작품상 등 다수의 국제 인형극축제에서 수상했다. 세상이 변하는 동안에도 퇴색되지 않는 이야기에는 어떤 힘이 깃들어 있을까. 이틀간의 한국 공연 중 첫날 공연을 마친 키 씨어터의 두 사람, Dikla Katz(이하 ‘디클라’), Avi Zlicha(이하 ‘아비’)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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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씨어터의 Avi Zlicha(왼쪽), Dikla Katz(오른쪽)

 

 

반갑습니다. 2022년 10월 키우피우 오브제극 축제 이후 1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 공연을 하시는 중인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디클라(Dikla): 지금까지 <아낌없이 주는 나무(When All Was Green)>를 서른 개 넘는 나라에서 공연했는데, 그중 한국은 유독 자주 방문했던 나라예요.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예요. 그래서인지 친숙한 느낌이에요. 한국에 오는 건 늘 즐거운 경험입니다.


아비(Avi): 저도 마찬가지에요. 특히 오늘 공연을 한 극장은 최근에 지어진 곳이라 공연을 하기에 기술적인 부분에서 굉장히 편리했습니다. 극장과 객석 사이가 멀지 않아서 관객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환경도 좋았어요.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인형극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아비(Avi):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짧고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겹겹이 쌓인 여러 레이어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한 가지 이야기를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았죠.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순환 구조도 매력적이었어요. 봄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여름, 가을로 흘러가고, 소년은 노인이 되죠. 


디클라(Dikla): 저는 사실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나무에게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한쪽은 주기만 하고 다른 한쪽은 받기만 하니까요. 그래서 이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말이 나왔을 때 원작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었어요. 특히 나무가 겪는 불공평한 일에 관해서요.

 

 

그럼 키 씨어터는 이 작품을 만들며 무엇에 새롭게 초점을 맞추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고 싶어요.


디클라(Dikla): 깊게 들여다보니 이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며 하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작품에서 어른이 된 소년이 했던 여러 가지 선택을 떠올려 보세요.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하고, 모든 선택에는 각각의 결과가 뒤따라요. 때로 어떤 선택은 모든 걸 잃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죠. 인형극을 만들며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모두 알다시피, 이 작품이 행복하게 끝난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는 것과 함께, 그 결과를 바로잡을 기회도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희 작품 마지막에는 베어내고 남은 나무둥치에서 작은 싹이 돋아나는 걸 볼 수 있죠. 


아비(Avi): 용서와 관용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인간은 살면서 여러 실수를 하고 해를 끼치기도 하는데 나무는 그걸 용서해 주잖아요. 우리도 다른 누군가를 그렇게 용서하는 태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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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과 무대 세트도 인상적이었어요. 모두 버려진 책으로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아비(Avi): 맞아요. 버려진 책 100권을 재활용해 인형과 무대 세트를 만들었습니다. 나무처럼 보이는 부분도 종이를 겹겹이 쌓아 만든 거예요. 이스라엘에서는 사람들이 안 쓰는 물건을 벤치 위에 올려두는 관습이 있어요. 나중에 그 물건이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우리는 그 벤치를 ‘The giving bench’라고 불러요. 저희도 그런 식으로 벤치에 놓여 있던 100권을 모았습니다. 


나무가 종이가 되고 그 종이로 다시 이 세트를 만들었으니 저희 무대 세트에도 작품의 주제인 ‘삶의 순환’이 담겨 있는 셈이죠.

 

 

인형을 다루는 인형사는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는지도 궁금합니다. 배우와 비슷하면서도 다를 것 같아요.


디클라(Dikla): 일단 저는 인형이 느끼는 감정과 저 사이 연결고리가 없으면 무대 위에서 인형을 다루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숨 쉬는 방식까지 신경을 써요. 예를 들어 낯선 아저씨가 도끼로 나무를 자르려 할 때 소년이 겁을 먹고 나무 위로 올라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는 정말 그 소년처럼 심호흡을 합니다. 인물이 느껴야 하는 것들을 저도 함께 느껴야 해요. 그러다 보면 인형이 제 일부분처럼 느껴집니다. 


아비(Avi): 저도 비슷해요. 감정이 먼저 생겨나야 동작이 이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나무가 소년을 안아주는 장면이 있다면, 안아주는 행위를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때 나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먼저 상상하고 느끼는 거죠. 인형극이지만 그래야만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해지는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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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 공연 1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비(Avi): 미얀마의 한 고아원에서 했던 공연이 기억에 남습니다. 네 살부터 스물한 살까지 300여 명의 아이가 있는 곳이었어요. 인형극 자체를 처음 보는 관객이 많았는데, 저희가 공연을 시작하자 이들의 눈이 놀라움으로 빛나던 순간이 생생해요. 절대 잊히지 않을 풍경이었죠.


디클라(Dikla): 저는 2016년 폴란드 카토비체에서의 공연을 꼽고 싶어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점령했던 지역이고, 제 할머니가 태어난 리투아니아와도 가까운 지역이에요. 저희 할머니는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으셨어요. 그 공연을 하며 할머니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한때 폐허와 아픈 기억으로 가득했던 이곳에 손녀인 제가 돌아와 공연을 했다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공연 마지막 부분 할아버지가 된 소년이 관객을 향해 인사하는 장면에서는 거의 울 뻔했죠.


아비(Avi): 그 공연은 폴란드의 카토비체 국제인형극축제에서 선보인 건데, 당시 어린이 관객들의 투표로 저희 작품이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공연이었습니다. 

 

 

솔직하고 반응도 빠른 어린이 관객들과 함께하다 보면 여러 에피소드가 생겨날 것 같아요.


아비(Avi): 한번은 노르웨이에서 공연을 마치고 거기 관객 중 한 분의 집에 초대를 받았어요. 인형극을 봤던 다섯 살 관객이 제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더라고요. 제가 작품에서 나무를 베라고 시키는 남자 역할도 하잖아요. 제가 노르웨이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라서 집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만큼 저희 공연이 생생했다는 의미니까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나중에 설명을 잘 해서 집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무대와 객석이 가까울 때면, 아이들이 공연을 보다가 입 밖으로 소리 내서 던지는 질문이 들리곤 해요. 주로 어른이 된 소년이 나무를 베는 장면에서 둘은 친구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을 많이 합니다. 어느 나라건 공통적인 질문이 나오는 게 흥미롭고, 솔직한 반응이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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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공연을 11년 동안 하며 많은 게 변하는 와중에도 계속 지켜온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디클라(Dikla): 한쪽이 어느 한쪽을 착취하지 않는, 평등한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연과 사람, 부모와 자식, 여성과 남성, 친구 사이 등 모든 관계가 마찬가지예요. 이것이 제가 작품을 계속하며 지키고 싶은 핵심 메시지입니다.

 

아비(Avi): 저는 결말 부분에 베어나간 나무둥치에서 싹이 올라오는 장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장면 하나에 여러 겹의 레이어가 있다고 봐요. 우리에게는 여전히 최후의 희망이 있고, 서로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어요.

 

 

1998년부터 키 씨어터를 만들고 인형극 작업을 하고 계신데요, 인형극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디클라(Dikla): 인형극은 대사 없이 은유적인 방법으로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에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언어로 직접 표현할 때는 내 주장이 너무 강하게 들려서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번역이 될 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요. 인형극이라면 더 많은 사람에게 저희 이야기를 부담 없이 들려드릴 수 있습니다.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나 애매한 부분까지도요.


아비(Avi): 실제 배우와 함께하는 공연이라면 작/연출이 배우와 맺는 관계가 공연에 큰 영향을 미쳐요. 제가 통제하지 못하는 변수가 많죠. 하지만 인형극이라면 제가 공연 전체를 컨트롤하기가 좀 더 쉽습니다. 인형과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인형사) 사이 마치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관계도 굉장히 흥미로워요. 공연하는 매 순간 인형과 인형사는 함께 움직이며 둘 사이에는 특별한 연결고리가 생겨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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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씨어터는 앞으로 어떤 공연을 만들고 싶나요? 구상 중인 다음 작품이 있으면 살짝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디클라(Dikla):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세 번째 작품 역시 대사가 없는 비언어극이 될 예정입니다. 본래 살고 있던 나라에서 쫓겨났거나 도망치게 되어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민자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비(Avi): 이민자가 나오는 다음 작품의 경우 1년 전 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생각하게 된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제 아버지도 돌아가셨지만 자식인 제가 있으니 기억 속에서는 계속 살아가고 계신 거잖아요. 지금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의논하며 의견을 조율해가는 단계입니다. 


디클라(Dikla): 새로운 작품 역시 종이를 활용할 예정인데, 특별히 이번에는 한지를 활용해보고 싶어서 사 두었어요. 여기서 영감을 받아 한지로 인형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또 한국에서의 공연 계획이 있나요?


아비(Avi): 지금 정해진 일정은 아직 없어요. 기회가 된다면 또 다시 한국에서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디클라(Dikla): 특히 제주도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한번 갈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함께 한국에 왔던 아들이 아파서 못 갔거든요. 다음번 한국 공연을 제주도에서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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