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능의 괴리감 [예능]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판매하는 공급자와 이를 알아차리는 소비자
글 입력 2023.09.2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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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도 가끔씩 식사를 할 때 뉴스를 보거나 과거에 다같이 봤던 드라마를 보긴 한다. 그러나 TV가 제공하는 컨텐츠는 이보다 많음에도 이를 소비하는 비율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 자리를 대체하여 새로운 미디어 시장을 이용할 수 있다. 유튜브 혹은 OTT 서비스를 사용하는 편이 흔하다.

 

유튜브와 같은 영상 매체는 기존의 텔레비전을 거의 대체할 수준에 와버렸다. 여전히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반박하기에는 미디어 매체의 발전은 TV보다 다른 매체가 앞서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과거부터 이어져 오던 양식에서 어떤 점이 바뀌었는지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TV의 시대를 앗아간 미디어 플랫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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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의 고객을 여러 미디어 매체가 빼앗을 수 있었던 이유는 참신함과 새로움이었다. 몇 개의 채널만 존재하며 동일한 시간대에 동일한 프로그램이 나오는 단조로움은 아무래도 지루해질 수 있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다른 미디어를 접해보면 얼마나 다양한 것들이 존재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된다.

 

이런 사실은 특히 새로운 영역에 자주 접근하는 젊은 층-소위 말하는 ‘MZ세대’-에게 접근성이 뛰어났다. 이들은 자신이 보는 것을 적극적으로 퍼다 나르며 재생산하는데에도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확산과 재가공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었다.


과거의 장점은 분명 무언가를 유명해지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유명함이 지속되도록 하는 원료는 계속 동일할 수 없다. 한정된 창의력과 인력은 결국 새로운 자원을 찾도록 유도한다. 그 자원 중 하나가 바로 ‘자극’이다. 새로움은 기존의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하던 인재들의 능력 분출이었다면, 지금은 지금껏 접하지 못하던 억제된 원초적 감각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보단 자극적인 소재는 만들기도 쉽고 반응도 좋다. 대부분의 인간을 타겟으로 삼을 수 있고, 노력 대비 성과도 뛰어나다는 점은 본래의 플랫폼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의 영역을 만든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점차 파이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를 제재할 수단이 있는가? 있더라도 이를 피해가면 그만이다. 아니면 커져버린 종양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상태일 수 있다. 온 몸이 암으로 뒤덮인 사람에게 항암치료를 할 경우 그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암으로 존재했던 부분이 사라지는 대신 공백이 남아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가 되어버린 매체들은 이를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매체로 유튜브를 꼽을 수 있다. 현재 모든 미디어는 유튜브를 거쳐야 한다. 가장 파급력이 높은 매체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질적 컨텐츠 자체도 많다. 특히 예능은 그런 차원에서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게 된다. 예능을 제작하는 제작자는 사람을 소재로 무언가를 생산할 때 인간의 자율성보다 인간의 자극적 상상력을 믿는다. 출연진의 능력보다 본인들의 각본과 성공을 위한 자극적 요소가 가미된 신화를 믿는다는 것이다.

 

 

 

예능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비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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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TV에 나오던 예능은 원초적인 재미 - 폭력, 자극, 감정 - 를 위해 여러 컨텐츠를 시도했다. 이는 방송에 출연하는 예능인들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지금은 최대한 피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조작되고 불쾌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를 철저히 숨겨야 한다. 이를 숨긴 채로 교묘하게 퍼지는 예능은 이를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한다. 이런 배경에 의해 나중에서야 작품의 아막기 거두어질 때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어째서 이런 문화가 아직까지 남아있으며 이런 문화를 소비했다는 사실에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찾아오게 된다.


사실 이런 경험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었지만, 이런 문제는 결국 여러가지 문제가 혼재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전에는 채널을 돌리다가 장면 하나가 시청자를 사로잡는 방식의 경쟁이었다. 영상의 매 순간이 룰렛을 돌리던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반면 지금은 모두를 가판대 위에 세워 놓은 후 원하는 것만 노출시켜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이른바 섬네일이라 하는 표지와 제목은 어떻게든 한번만 맛을 보도록 유도해야 하고, 그 안에는 맛을 본 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자극적인 내용물로 채워놓아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유혹하면 다시 그 제품이자 영상을 찾도록 만들게 할 수 있다.


상품성이 짙어지는 매체들을 우리는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가 과연 존재할까? 그 매체를 소비하는 우리는 중독되어 계속해서 손을 대지만, 그 의미는 퇴색되어 남아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소비할 것을 예상하여 판매하는 세일즈맨들만 남아서 열심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상품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수준이 아닐까.

 

 

 

건강하지 않은 예능을 구분하려는 노력


 

최소한의 대책이라면 본인이 의식하는 수 밖에 없다. 의식의 힘은 강력하기에 이를 멀어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 내가 어디까지가 적절한 선인지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훈련시켜야 한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경계선은 주위의 현인들도 지혜를 줄 수 없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 있던 ‘바보 상자’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데 손 안의 그 영상 매체는 어떻게 통제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럴 때 일수록 각자만의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 상황 속에서 스스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큰 이점을 얻을 것이 분명하긴 하다. 이전부터 어디에도 적응할 수 있었던 자주적인 사람들이야 말로 이런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이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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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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