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묘하고 의문스러운 세계 - 가정교사들

글 입력 2023.09.05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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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한국 소설에 빠져 있다가 오랜만에 외국 소설을 읽었다. 외국 소설의 경우 번역체이다 보니 그것을 읽는 속도가 한국 소설에 비해 느린 편이다. <가정교사들>은 아주 짧은 책인데도 읽는 속도가 꽤 더뎠다. 책 내용을 당최 알 수가 없고, 앞에서 말하는 것과 뒤에서 말하는 것이 다른 등 그 내용이 뒤죽박죽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옮긴이의 말을 읽은 뒤에야 내가 잘못 읽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정교사들>의 문체와 분위기, 그리고 작품 곳곳을 채우는 요소들은 동화를 읽는 듯한 인상을 흠뻑 풍긴다. 하지만 천천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아름다운 결말이나 교훈은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잔혹 동화’에 가깝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엇갈리는 정보들과 무너진 경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무엇이 현실이고 꿈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의 영역에 혹은 상상력의 공간에 진입한다.
 


<가정교사들> 속 가정교사인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혹은 영화에서 봐 온) 가정교사와는 차이가 있다. ‘가정교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옷을 단정히 입고, 바른 말을 하며, 똑똑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책 속 가정교사들은 좀 다르다. 이들이 존재하며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아이들 앞에서 옷을 벗고 알몸을 드러내기도 한다. 밤에는 철창을 열고 들어온 남자를 쫓아가 육체적인 행위를 벌이다 돌아오기도 한다. 얌전하고 정숙함과는 거리가 멀고 자유롭고 유랑적인 느낌도 든다. 그러나 이들이 온전히 자유로운가?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은 오스퇴르 씨와 오스퇴르 부인의 집에 살고 있는, 어느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작품 속 가정교사들은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온 가정교사의 이미지나 여성의 이미지를 완전히 해방시키고 있다. 이성적인 측면에서 남성을 ‘탐하는’ 입장으로, 여성을 ‘탐해지는’ 입장으로 보는 경우가 다수다. 반면 이 작품에서는 가정교사들이 남성과 결합되는 것을 (남성이) ‘잡아먹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수동적이고 부끄러워 해야 하고, 수줍음 많아야 하는 여성의 이미지와 완전히 먼 그들의 모습을 나는 꽤나 인상적이게 보았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 온 소설에 비해 결말이 다소 두루뭉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교사들을 감시하던 노인이 더 이상 그들을 보지 않게 되고, 그들은 ‘설명할 수 없는 초조함’을 느끼고, ‘그들이 사라지는 것 같’음을 느낀다. 이 결말은 두루뭉술하고 오묘하면서도 흥미로웠다. 노인의 관찰이 멈추면서 사라지는 것 같음을 느꼈다는 것은 그렇다면 이들은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존재가 증명되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어느 철학자는 세상에 어떤 물건이 존재하는 것은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있음으로 인해 증명되는 것이라 말했다. 가령 책상 위에 물이 든 컵이 있다고 해 보자. 이것은 내가 그것을 보고 있음으로써 존재하고, 그것이 증명된다. 그렇다면 내가 이것을 보고 있지 않을 때. 그리고 그 누구도 그것을 보고 있지 않을 때 물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신이 그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여전히 존재한다.


<가정교사들>은 신적인 이야기를 하는 소설을 아니기에, 그 개념까지 닿아 있지는 않다. 그들이 해 온 행위와 벌인 연극들은 다 누군가에 의해 관찰되기에, 그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일으켰던 것인가? 하는 의문이 오래 들었다.


처음에는 가정교사들의 행위가 의뭉스럽고 작품은 어렵게 느껴졌는데, 그렇게 만들어내는 의문들과 모호함, 혹은 기묘함까지도 이 작품의 어떤 하나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이 작품은 정호연, 릴리로즈 뎁 주연으로 영화화가 확정되었다고 한다. 영화로 제작되면서 어떻게 각색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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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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