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여러 모양과 망각의 기쁨 [도서/문학]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의 <연인>
글 입력 2023.08.1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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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1914~1996)의 <연인>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지만어둡고 우울하고 폭력적인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록이기도 하다. 핑크빛 커버 디자인에 "연인"이라는 제목에 로맨틱한 러브스토리를 상상하고 소설을 읽기 시작한 독자들은 나와 같이 아름답지만 절망적인 감정에 빠졌을 것이다.

 

열다섯 살. 프랑스 식민지령 베트남에 사는 프랑스 소녀. 배에서 우연히 만난 부유한 중국인 남자와 연인이 된다. 그녀의 엄마는 가난으로 사납고 광기가 어려있고, 엄마의 유일한 편애를 받는 큰 오빠는 도박과 마약중독이고, 작은 오빠는 큰 오빠의 폭력에 힘없이 당한다.

 

부유한 연인은 그녀에게 육체의 쾌락을 안겨다 주었지만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그녀의 가족들은 딸의 연인이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지만 딸이 가져다주는 그의 돈은 마다하지 않는다. 부유한 연인은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도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일 년 반 뒤, 때가 되자 그녀는 미련 없이 그를 떠난다.

 

열다섯 살 소녀는 반세기 뒤에 부유한 중국인 남자와의 연애를 회상하며 글을 남긴다. 1984년 발표된 <연인>은 지금까지 많은 사랑은 소설이고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 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뒤라스는 책의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이한 상황이다. 가난한 어린 소녀의 섹스. 연인에게 받는 돈. 그것을 묵인하는 가족.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 소설을 무력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의 무엇이 사람들을 매혹시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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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인> (1992), 장 자크 아노 감독

 


"난 전통적인 의미의 기억 되살리기는 관심 없어요. 우리는 구미 대로 자료를 파내는 보관소가 아니니까요. 더구나 기억을 잃는 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만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의 80퍼센트가 기억 저편으로 물러나 있지 않는다면, 사는 게 참을 수 없어질 거예요. 망각의 구멍이야말로 진정한 기억이죠. 우리를 회상과 맹목적인 고통이 압박에서 구해주는.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잊어요."  

 

<뒤라스의 말 - 중단된 열정,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마음산책 출판)

 

 

<연인>은 뒤라스가 말로 풀어낸 이야기를 당시 연인이었던 얀이 기록하여 완성되었다. 소설의 서술은 시간순을 따르지 않고 뒤라스의 감정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연애를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뒤라스가 기억하는 그 시간들에 대한 감각이다.

 

가난하고 폭력적인 어린 시절. 그녀의 기억의 대부분은 망각의 모래의 틈으로 빠져나가고 기억하고 싶은, 또는 기억할 수밖에 없는 감각들이 남아 소설을 완성했을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망각의 구멍이야 말고 진정한 기억이다.

 

어떤 감정으로 그 시절을 마주하는가.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열다섯에 겪은 감정에 대해 반세기가 지난 후 노인이 된 뒤라스가 세상에 풀어놓는다. 뒤라스가 물처럼 흘려놓은 그 시간들에 대한 기억과 감각이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연인>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은 텍스트를 통해 열다섯 뒤라스의 의식의 흐름에 빠진다. 소설의 주인공이 된 우리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고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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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인> (1992), 장 자크 아노 감독

 

 

"그 이야기는 다른 모든 사랑, 선언되고 제도화된 모든 사랑을 뛰어넘어요. 사랑에 이름을 붙이고 사랑을 그 근본적이고 신성한 어둠에서 끄집어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언어는 모든 열정을 죽이고, 제한하고, 축소해요."

 

<뒤라스의 말 - 중단된 열정,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마음산책 출판)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삶에는 많은 연인들이 존재했다. 그중 가장 큰 스캔들은 38살 연하였던 얀과의 연애다. 얀은 뒤라스의 오랜 팬이었고 5년 동안 계속해서 팬 레터를 보내다가 뒤라스가 66살이었을 때 둘은 연인이 된다. 얀의 나이는 28살이었고, 동성애자였다. 얀은 뒤라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을 지키면서 그녀를 돌보았다.

 

사랑은 여러 모양을 띈다. 정형화되어 있거나 규정지을 수 없다. <연인> 속 열다섯 소녀와 연상의 중국인 남자와의 사랑도, 66세의 뒤라스와 동성애자였던 28살의 얀의 사랑도. 그녀가 용기 있게 그 시절을 꺼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믿는 사랑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열다섯 그녀는 연인을 사랑했고, 그가 사랑하는 그녀의 육체, 그가 가져다주는 쾌락과 희열, 그 나이 또래 소녀들과는 다른 자신의 아우라, 그녀의 삶 자체를 사랑했다.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50여 년이 지난 후 가난하고 어두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될 수 없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삶 그 자체다.

 

 

 

에디터 명함 최은지.jpg

 

 

[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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