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명나게 털어보는 놀음 한판 - 오마이갓 [공연]

근심 걱정 모두 날려보자
글 입력 2023.08.1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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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연희'를 들어본 적 있는가? 전통 연희란 굿, 판소리, 탈춤, 꼭두각시놀이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로서 더 먼 고대 사회의 제의로까지 소급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장르를 의미한다. 그리고 공연 '<오마이갓>을 주관한 '연희그룹 연화'는 전통 연희를 복원하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희를 즐기고 또 공연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선사하는 단체다.

 

'<오마이갓>'은 전통 연희를 계승하고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시대의 고민과 질문을 담아내는 창작 연희를 표방하고 있다. 가장 절실하고 힘든 순간에 내뱉게 되는 오마이갓의 '갓'은 과연 누구인가. 하느님도, 부처님도 그 어떠한 신도 아니라면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찾는 '신'은 결국은 우리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오마이갓>'은 '신'바람나는 굿 한판을 통해 매일의 근심과 걱정을 잠시 떨쳐 내볼 것을 제안한다.

 

경기 서울 굿의 음악과 움직임 그리고 극적인 요소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총 여섯 번의 신명 나는 무대로, 공연을 찾은 이들의 길운을 간절히  빌어주는 '<오마이갓>'을 만난 감상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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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의 무대


 

부정문풀이

길운과 복을 비는 신을 불러내기 전에, 온갖 부정과 액운을 털어내는 의식으로 깜깜한 무대에서 무구 소리만 들리며 공연이 시작된다. 암흑에 눈이 익숙해질 즈음 시작되는 군무와 작은 소리가 반복되는 무대는 다소 주술적이다. 어두운 무대 연출과 반복되는 선율이 맞물려 상당히 비현실적이다라는 느낌과 함께 어딘가를 향해 주문을 외는 듯한 느낌도 준다.

 

극은 경기굿에 자주 사용되는 터벌림 장단을 사용하며 이어지는데, 조용한 시작과는 달리 무대가 이어질수록 꽹과리와 박의 존재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강렬한 꽹과리 소리와 함께 일정한 박자마다 울리는 박의 소리가 길운과 복을 받아들이기 위해 잡귀를 털어내는 의식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슬금슬금

두 번째 무대 역시 차분하게 시작된다. 타악기 중 금속으로 만들어진 악기와 관악기만으로 이루어진 무대인데 특히 금속으로 만들어진 악기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징, 꽹과리, 그리고 정주(놋쇠로 만든 종과 같은 악기)가 만들어 내는 소리가 무대 전반에 걸쳐 반복되고 점차 고조된다. 

 

쇠악기를 통해서는 신을 청하는 모습을, 관악기를 통해서는 그 부름에 답하며 다가가는 신의 모습을 표현한다. 금속과 금속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파열음이 점차 커지며 더 격렬하고 간절하게 신을 청한다. 피리와 나각으로 표현되는 선율 역시 쇠악기와 함께 고조되다가 가장 절정인 순간 쇠악기는 그 소리를 감추고 피리 소리만 연주된다. 마침내 간절히 청하던 신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한탄뒤풀이

'가갸거겨구규...'로 이어지는 자음과 모음 구절의 반복 사이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와 같은 한탄과 바람이 섞여 있다. 큰 의미 없는 구절이 반복되는 것이 어쩌면 굿이라는 행위의 일부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탄뒤풀이'는 지금까지의 무대보다는 조금은 가볍고 또 친근하다. 

 

굿판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 때문에 이때까지 느꼈던 다소 겁나는 분위기가 한풀 꺾이고, 공연자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한탄과 바람이 담겨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탄을 날려버려 주겠다는 공연자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서일까. 어느 쪽이든 이제 더 이상 굿이 어렵고 무섭지만은 않다.


아, 불사

아뿔사를 연상하게 하는 언어유희로 시작하는 이번 무대는 서울 • 중부 지역의 재수굿에서 불사신을 모시는 불사거리의 구조와 형식을 차용했다. 불사굿은 반드시 산 사람의 길복을 비는 굿에서만 행해진다고 한다. '<오마이갓>'의 아, 불사 역시 길복을 청하는 신이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간절히 복을 청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에 응하는 불사의 모습을 표현한다. 

 

오방간다와 난리굿

그동안의 무대와는 다르게 오방간다와 난리굿 사이에는 무대가 점멸하는 구간이 없다. '오방간다' 무대부터는 적극적으로 관객과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동안은 공연자들이 일방적으로 길복을 비는 주술적인 무대를 꾸며왔다면 오방간다부터는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더 큰 '신'바람을 일으켜 길복을 적극적으로 가져다준다. 

 

각각 소원성취, 승진이나 합격, 액운, 조상신, 성공과 긍정의 뜻을 가지는 다섯 가지 색깔(빨강, 파랑, 초록, 노랑, 하양) 깃발을 통해 그날 공연을 보러온 관객의 운을 점치고 결과에 따라 다른 소리와 움직임을 보여준다. 공연자들이 그 어느 무대보다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개인적인 이야기마저 무대에 녹아드는 난리굿에 이르면, 이제는 관객은 처음 '부정문풀이' 무대가 시작했을 때와는 다르게 심리적인 경계가 녹아버린다. 더 이상 그들의 춤과 노래를 관조하는 입장이 아니라 무대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그냥 겁이 나던 굿판의 일부가 되어 그 누구보다도 신명 나는 순간을 보내고 나면 더 이상 '굿'이라는 행위가 무섭지 않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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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굿'


 

대부분의 사람들은 '굿'이라 하면 무당, 액운을 떨쳐내기 위한 제사의식 정도만 떠올리리라 생각한다. 또 다소 무섭다는 느낌까지 받을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굿을 그런 식으로 활용하기도 했거니와 워낙 사용되는 소품과 몸짓이 크고 강렬하다 보니 나 또한 그랬으니까. 

 

그러나 이번 '<오마이갓>' 무대를 통해 꼭 굿이 나쁜 일을 피하기 위한 의식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복과 행운을 청하며 굿 판을 벌이는 사람도 굿판을 구경하는 사람도 모두 만사형통하고 길운만 있기를 바라는 굿도 존재한다. 그러니까 굿이 왠지 모르게 무섭고 보고 있으면 겁이 나는 그런 의식으로만 남을 필요가 없는 거다. 결국 액운을 떨치는 의식도 나쁜 일을 피하고 좋은 일이 다가오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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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국악, 그중에서도 굿이라는 장르에 거부감없이 녹아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공연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즐거워 보여 관객의 입장에서 문화예술을 지탱하는 힘은 무엇인가도 새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잊히기 쉬운 전통 국악을 계승하며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연화'가 앞으로 걸어 나갈 길에 대한 기대와 함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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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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