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파랑새'는 '행복'인가? - 붉은 파랑새

행복을 좇아 여정을 떠났지만, 사실 여정 자체가 행복이다.
글 입력 2023.08.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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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 이야기는 행복은 사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붉은 파랑새>는 산울림소극장의 극단 ‘뭉쳐’가 원작 <파랑새> 이야기의 20년 후를 상상하여 재창작한 작품이다. 원작 <파랑새>에서는 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찾아 여정을 떠났지만 사실 자신들이 기르던 비둘기가 파랑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면 20년 후의 틸틸과 미틸은 어떤 모습일까. 어른이 된 틸틸은 다시 파랑새를 찾으러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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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 미틸이 도시 속에서 안주하는 삶을 선택한 반면, 틸틸은 방황하는 현실의 삶을 살면서 여전히 파랑새를 꿈꾼다. 그러던 중 틸틸은 요술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늙어서 붉게 물든 파랑새를 만난다. 붉은 파랑새는 틸틸에게 새로운 파랑새를 찾아 떠나자고 말한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내가 파랑새란 걸 믿어줘.” 

 

– 붉은 파랑새

 

 

여행 도중 틸틸은 계속 자신과 함께하는 붉은 파랑새가 진짜 파랑새가 맞는지 의문을 가진다. 만나는 모든 이마다 붉은 파랑새를 파랑새로 봐주지 않자, 틸틸은 점점 파랑새를 믿지 못하게 된다.

 

결국 틸틸은 허상뿐인 새장에 홀려서 진짜 파랑새를 떠나보내고, 빈 새장만을 응시한다. 환상의 세상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와서 틸틸은 어른인 미틸과 만나는데, 도시에서 함께 살자는 미틸의 제안을 거절한다. 미틸은 틸틸이 답답할 법도 한데 틸틸에게 잔소리하지 않고 틸틸의 선택을 존중한다.

 

현실 속에서도 파랑새를 찾아 떠날 거라는 틸틸의 태도는, 다소 환상적이고 아직 철없는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무모함이 있어야 하는 것이 삶이다. 틸틸이 다시 파랑새를 찾아 떠난다는 점에서, 꺾이지 않는 무모한 마음이 전해진다.

 

과거와 마주하는 것은 때로는 힘들고,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지만, 때로는 과거를 마주해서 그 환상성을 다시 느껴서 절망하고 현실을 마주볼 수 있게 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결국 끝나지 않았던 파랑새를 찾는 여정은, 틸틸이 여정 시작부터 찾았지만 외면한 파랑새와, 그런 파랑새가 이미 떠나갔을 때 마주한 허구 속 현실을 인지하고 다시 어딘가로 떠나가는 것이다.

 

다시 파랑새를 찾아 떠나간다는 틸틸의 모습은 다소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희망차다. 행복을 파랑새로 정의하기엔, 행복은 우리의 삶에 피어있는 잡초와 들꽃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그러나 형태를 바꾸고 소멸하기도 하며 남아 있는 데 말이다. 파랑새는 너무 잘 보여서, 그것만을 좇는 삶은 척박한 것이라는 걸, 틸틸은 언제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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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마주하고 현실 속에서 안주하며 살아가는 미틸과 꿈을 좇는 틸틸. 우리는 이들을 보며 쓰디쓴 미소를 지을 수도 있고, 각자 자신만의 파랑새는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파랑새는 하나의 대상이 되어서, “나의 파랑새는 무언가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파랑새 같은 걸 찾아 쫓지 않을 수도 있다. 찾고 나선? 계속 옆에 묶어둘 것인가? 아님 다시 날려 보내줄 것인가? 새의 본질은 자유다. 우리는 자유롭고 싶어서 새를 동경하지만 될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한 자유는 굳이 새를 쫓아가지 않더라도, 길가에 핀 들꽃과 부는 산들바람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파랑새를 찾아 떠나고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된 틸틸은 파랑새와 함께 파랑새 찾기를 하게 된다. 틸틸의 파랑새 찾기는 붉은 ‘파랑새’와 함께 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아무도 붉은 파랑새가 파랑새라고 바라봐 주지 않지만 파랑새는 붉더라도 파랑새이다. 파랑새의 깃털은 붉은 색과 파란색이 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파랑새가 주장하는 것이 맞을까? 파랑새는 진짜 파랑새일까? 그렇다면 아무도 파랑새를 파랑새라고 보지 않을 때 파랑새의 의미가 있을까? 파랑새라는 상징성이 우리에게 주는 진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원작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는 행복을 찾아 떠나지만, 사실 가장 가까운 곳에 행복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산울림 소극장의 <붉은 파랑새>는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행복만을 좇다가 일상 속 작은 파랑새들을 놓칠 수 있다. 붉은 파랑새들을 말이다. 붉은 파랑새는 겉보기에 파랑새 같지 않아서 놓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파랑새는 어쩌면 찾을 필요가 없다. 동시에 우리는 ‘파랑새’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그들을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에디터 심선용.jpeg

 

 

[심선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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