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안부를 물을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추모의 방법
글 입력 2023.07.3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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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추모의 방법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상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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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나이로 스무 살을 절반쯤 살고 있던 여름날, 고등학생 때 좋아했던 뮤지션의 비보를 들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현재 진행형은 아닌 상태였고 근황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뜻밖의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물 건너온 이야기라서 뭐가 잘못되지 않았을까 했는데 아니었다. 쉽게 믿을 수 없었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가만히 기다리면 아무렇지 않게 돌아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삶에 한계가 그어질 수 있다는 현실을 경험했다. 죽음을 상실과 이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앞으로 길게 뻗어나가고 있던 길이 갑자기 없어졌다. 앞으로의 무언가가 없다니, 하루아침에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다니. 끝이 어딘지 모를 만큼 뻗어있던 길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누구도 무엇도 나의 납득을 기다려 주거나 이해해 줄 수 없었다. 그 사람을 잃는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커다란 빈자리가 생겼다. 그 사람의 노래를 몇 년이나 들었다. 유난히 좋아했던 노래가 있고 유난히 맴돌던 가사가 있었다. 다시 꺼내 들을 용기가 없어서 한참을 잊고 지내다가 너무 생각나면 그때 한 번 꺼내 들었다. 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세 번 정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게나 좋아했는데 잃은 순간부터 모든 게 추모가 되는 것 같아서 얘기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마주하지 않으면 서러운 기분도 따라오지 않으니까 그렇게 했다. 떠올리는 횟수가 줄어들고 입 밖으로 내는 일이 없어졌다. 기억 저편에 묻어둔 건 아닌데 덮어놓고 지내다 보니 열어 보지 않게 되었다.

 

긴 긴 세월을 그렇게 지냈는데 작년에 불쑥,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마음이 결국 고개를 들었다. 우연히 소셜미디어에서 과거 동료 뮤지션이 기일에 추모하는 글을 남길 걸 봤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고.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모두가 익숙하게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 마음은 유튜브 알고리즘에도 반영되어서 어느 날 우연히 생전의 공연 영상을 보게 되었다. 자신이 없어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미 실수로 클릭해서 재생되고 있는 화면을 굳이 뒤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연히 오래간만에 봤는데 슬프거나 아쉽거나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어떤 생각도 들기 전에 반가움이 찾아왔다. 오래간만에 봐서 오는 반가운 마음이 제일 컸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기일을 챙겼다. 아는 사람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남기고, 음악을 듣고, 사람들은 당연한 듯 그 사람의 이야기를 꺼냈다. 의도하지 않았을 텐데 알아서 공감하고 거기서 위로를 찾았다. 아직도 그때처럼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는 사람인데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무서워했던 건지.

 

어느샌가 따라잡고 뛰어넘었고, 우러러보다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제는 그 사람이 존재했음을 현재진행형으로 한다. 더는 근황을 알 수 없고 들을 수 없지만 안녕을 묻는다.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남겨진 사람들이 아니라 함께했던 사람들이란 걸 깨달았기에.


그리고 나이가 늘어나지 않는 생일이 돌아온다. 올해는 축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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