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리 에스터 '붕괴' 3부작 [영화]

글 입력 2023.07.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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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미드소마>로 천재 감독의 반열에 오른 아리 에스터가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돌아왔다. 아리 에스터의 전작들을 함께 제작해 왔던 A24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었고, 179분이라는 엄청난 러닝 타임과 예측 불가능한 예고편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품었다.


놀랍게도 세 작품 모두 아리 에스터 감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전>은 아리 에스터의 가족과, <미드소마>는 아리 에스터의 전 연인과 관련되어 있고,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아리 에스터가 말하길) ‘가장 아리 에스터다운’ 영화라고 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보며 그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아리 에스터의 세 작품을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더욱 쉬운 이해를 위해 영화를 관람하신 뒤 이 글을 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악마의 희생양이 된 가족, <유전> 


 

[크기변환]유전.jpg

 

 

2018년 최고의 공포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던 영화 <유전>은 ‘불편한 가족’의 진수를 보여준다.

 

영화는 ‘애니’의 엄마인 ‘엘렌’의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애니의 아들인 ‘피터’는 친구들의 파티에 가는 것을 애니에게 허락받기 위해 여동생인 ‘찰리’를 데려가게 되고, 땅콩 알레르기가 있던 찰리는 파티에서 먹은 케이크로 인해 호흡 곤란 증상을 보인다. 병원에 가기 위해 찰리를 차에 태워 급하게 이동하던 중 피터의 급조작으로 인해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던 찰리는 죽음을 맞는다. 공허한 마음을 달랠 틈도 없이 딸까지 잃게 된 애니는 절망에 빠지고, 이 사건 뒤로 애니와 피터의 관계는 심히 나빠진다.


관객인 우리는 남아있는 세 인물(애니, 스티브, 피터)을 보며 단절된 가족 관계가 주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찰리가 죽던 순간의 장면을 미니어처로 조형하는 애니와 그것을 피터가 보면 어쩌냐고 다그치는 남편 스티브의 모습, 세 가족이 식사하던 도중 예민함이 극에 달한 피터와 애니가 말다툼하는 장면, 피터를 낳고 싶지 않았다는 속마음이 반영된 애니의 꿈 등이 그것이다.

 

대개 ‘공포’ 장르에서는 죽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서로를 지키려는 가족이 등장하곤 한다.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서운 영화”로 유명한 <컨저링>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악령에 씐 가족을 구하기 위해 퇴마사를 불러 악령을 퇴치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플롯이다. <유전>은 시작부터 이와 반대되는 방향을 택한다.


애니의 엄마인 엘렌은 사실 악마를 숭배하는 종교 집단의 수장과도 같은 인물이었고, 악마가 정착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인 ‘남성의 몸’을 구하기 위해 애니의 아들인 피터를 그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결국 애니의 가족은 이미 오래전부터 ‘운명’처럼 정해진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악마와 그를 따르는 종교 집단에 의해 한 가족의 내부에 균열이 발생하고, 서서히 붕괴되어 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관객들은 불쾌함과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어제의 연인이 오늘의 제물, <미드소마> 


 

[크기변환]미드소마.jpg

 

 

<유전>이 개봉한 지 1년이 지난 2019년, 아리 에스터 감독은 <미드소마>를 선보였다. 영화 내내 가족의 붕괴를 보여주었던 <유전>과 달리 <미드소마>는 아예 초반부터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죽는다. 큰 상실감에 빠진 주인공 ‘대니’는 남자친구인 ‘크리스티안’과 함께 스웨덴의 하지 축제(미드소마)에 초대되어 ‘호르가’ 마을에 방문한다. 시간이 한낮에 멈춰버린 것처럼 밝은 마을과 순백의 옷을 입은 마을 주민들은 어딘가 기괴한 느낌을 선사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 볼 점은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관계이다. 대니는 크리스티안에게 의지하는 반면, 크리스티안은 대니와 헤어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은 가족을 잃은 대니를 버릴 수 없었고, 두 인물은 마치 억지로 만남을 지속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아슬아슬했던 둘의 관계는 호르가 마을에 도착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악화된다. 그 때문에 대니와 크리스티안은 함께 있는 시간보다 따로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고, 관객들은 이질적인 공간에서 분리된 둘을 보며 미약하게나마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90년에 한 번, 9일간 열리는 이 하지 축제에서는 9명의 제물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고, 호르가 마을 사람들은 견고하지 못한 대니와 크리스티안의 관계를 이용해 대니가 크리스티안을 아홉 제물 중 하나로 지목하게 했다.

 

한두 명씩 사라지는 일행들 사이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곤 서로밖에 없어야 할 대니와 크리스티안이 서서히 멀어지고, 결국 크리스티안을 죽음으로 내모는 장본인이 대니라는 지점은 연인이었던 두 사람의 관계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너무 과한 사랑은 독, <보 이즈 어프레이드> 


 

[크기변환]보 이즈 어프레이드.jpg

 

 

7월 5일에 개봉한, 아리 에스터의 따끈따끈한 신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 역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편집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 ‘보’는 집착적인 사랑을 보이는 어머니 ‘모나’ 밑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자랐다. 영화는 약 3시간 내내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장면들을 연이어 보여주며 관객들을 보의 머릿속으로 초대한다.


태어나고 있는 보의 시점을 보여주는 처음,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물에 빠져 죽는 보를 보여주는 끝은 결국 어머니의 뱃속에서 시작해 어머니의 뱃속에서 끝난다는 것을 상징한다. 보는 태어난 후로 죽을 때까지 모나의 과도한 보호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또, 영화 속에서 보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벗겨져 마치 어머니인 모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과하게 의존적인 보의 내면과 충돌하며 아이러니를 느끼게 해준다.


어머니의 통제 아래에서 그녀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오며 자라온 보는 결국 모나가 짜놓은 판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앞서 이야기한 두 편의 영화처럼 가장 가까이에서 신뢰해야 할 관계가 무너진 것이다.

 

*


세 작품 모두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천천히 조여오는 공포나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내용과 결말로 인해 난해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그 때문에 이 영화들은 특히 보거나, 보지 말라고 선뜻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조심스레 이야기해 보자면, 모든 장면이 분명한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세 작품이 '뒤엉켜 있는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조금이라도 시간을 가져서 해석하고 톺아보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세 작품 모두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에디터 김지현.jpg

 

 

[김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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